서울대 생명과학부 김빛내리(42) 교수는 7~8년 전만 해도 재계약을 걱정하던 무명의 과학자였다. 계약직 교수였던 그가 몇 년 전 어느 날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국내에 몇 안 되는 국가과학자로 지정됐고 호암상(2009), 로레알·유네스코 세계여성생명과학자상(2008), 과학기술부 젊은과학자상(2007)도 받았다. 모두 마이크로RNA(리보핵산) 연구로 받은 영광의 ‘훈장’이다. 김 교수는 오랜 시간 마이크로RNA 연구에 집중해 왔다.
마이크로RNA는 1997년 외국에서 처음 발견됐다. 세포 안에 있으며 가느다란 띠 모양으로 약 5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의 극히 짧은 염기 사슬이다. 그것이 처음 발견됐을 때만 해도 그 기능은 완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김 교수를 비롯한 세계 생명공학계 과학자들이 앞다퉈 그 정체 밝히기에 뛰어들었다.
연구 경쟁은 지금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김 교수는 연이어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쏟아내며 마이크로RNA의 대표 과학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 노벨 과학상에 근접한 한국인 과학자 중 한 사람으로도 꼽힌다. 최근에는 생명공학계의 최고 학술지인 미국의 셀(Cell) 편집위원에 위촉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최근 또 하나의 ‘히트작’을 발표했다. 마이크로RNA의 ‘출생의 비밀’을 밝혀낸 것이다. 같은 연구실에서 일하는 허인화 박사, 대학원생 박종은씨와 함께 일군 수확이다. 학계에서는 마이크로RNA의 생성 과정을 밝히고, 그 응용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획기적인 성과라고 평가했다.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14일자에 실렸다.
연구 내용은 이렇다. 염기가 한 가닥으로 죽 연결된 사슬(마이크로RNA의 원료 역할을 하는 전구체)을 가위 역할을 하는 효소가 적당한 길이와 위치를 찾아 자르고, 그렇게 잘려진 사슬이 마이크로RNA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다이서(Dicer)라는 ‘가위 효소’가 염기 사슬의 양 말단 중 5번으로 이름 붙여진 말단을 알아내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5번 말단은 인산과 산소로 이뤄져 있는데 이를 다이서가 인식하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가위 효소는 5번 말단을 인식한 뒤 끝에서부터 염기 수를 세어 21~23번째 염기 범위 안에서 사슬을 자른다. 이는 마이크로RNA의 염기 수와 일치하는 곳이다. 가위 효소는 매번 그렇게 5번 말단에서부터 일정한 길이만큼을 잘라 낸다. 연구팀은 가위 효소에서 5번 말단을 알아채는 부분을 인위적으로 망가뜨려 봤다. 그러자 ‘망가진 가위 효소’가 잘라 내 만든 마이크로RNA는 양이 줄어들거나 기형이 돼 버렸다. 마이크로RNA가 잘못 만들어지면 암이나 당뇨 등 각종 질환에 걸린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 성과는 급부상하고 있는 마이크로RNA의 응용에 결정적 기여를 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유전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인공 마이크로RNA를 만들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유전자가 강하게 활동해 일어나는 질환이 있다면 그 유전자를 억제하는 마이크로RNA를 설계해 세포에 넣어 치료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서울대학교 연구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