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안내

연구

연구성과

연구성과

국문과 이종묵 교수, 펴 내

2010. 11. 26.

조선시대 선비는 다섯 수레의 책을 어떻게 담았나
이익·채제공 등이 남긴 지혜, 세상을 호령하던 옛글의 힘


'진짜 산수는 그림과 비슷하기를 바라고,산수 그림은 진짜와 비슷하기를 바란다. 진짜와 비슷하다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귀히 여긴 것이요, 그림과 비슷하다는 것은 기교를 숭상한 것이다. 하늘의 자연스러움이야 원래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법이지만,사람의 기교 또한 하늘보다 나은 점이 있지 않겠는가. '

18세기의 산문작가였던 조귀명(1693~1737)이 쓴 글이다.

조귀명은 이 글에서"공경대부의 집 벽에는 대부분 산간의 촌락이나 들판의 별장에 은둔하면서 고기 잡고 나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눈으로 보면 즐겁지만 직접 살아보면 근심스러운 법이니,어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꼬집는다.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는 이종묵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옛글에서 뽑아낸 삶의 지혜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옛글은 잊고 있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라고 말한다. 빛바랜 사진첩은 유년의 추억을 불러올 뿐이지만 옛글은 우리 몸속에 수백 년 유전돼온 조선 선비의 삶과 풍경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저자는"옛글을 읽노라면 도심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도 아름다운 옛 풍광을 즐길 수 있고,남들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다른 세상을 차지할 수 있으니 옛글이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세상을 호령할 수 있게 한다"고 예찬한다.

책에는 방안에 누워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상상으로 천하의 빼어난 경치를 감상했던 성호 이익, 집 이름을 '지식의 바다'라고 하고 그 안에 들어앉아 책을 읽으며 동서고금의 진리를 깨달았던 이종휘, 비바람에 배가 표류하는 상황에서도 천하의 장관을 보겠다며 여행을 감행한 김종수, 북풍한설에도 마음에 맞는 벚과 좋은 경치를 즐기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던 김조순 등의 풍류가 담겨 있다.

낙숫물 너머 아이의 머릿니를 잡는 여인의 모습에서 인생의 지극한 즐거움을 깨달았던 유언호,감사의 마음으로 맛있다고 외치면 가난한 날의 거친 밥도 꿀꺽꿀꺽 넘어간다던 서유구,비록 게딱지집에 사는 것이 괴롭다고 해도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치르는 것보다는 낫지 않으냐며 좁은 집을 탓하지 않았던 임숙영 등의 글에선 달관에 이르는 삶의 지혜를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다. 내 몸을 위해 어찌 말 못하는 생물을 잡아먹겠느냐며 지렁이탕을 먹지 않았던 채제공의 생태적 지혜와 다섯수레의 책을 가슴에 담기 위해 하루도 책을 거르지 않았던 장혼의 책사랑도 끔찍하다.

세상의 공평한 도리는 백발뿐이라며 나이듦을 겸허히 받아들인 이하곤의 자연스러움도 배워야할 지혜다. 그뿐이랴. 정조 때의 사람 박윤묵의 인왕산 계곡물 예찬은 한 여름 더위마저 가시게 해준다.

"산을 찢을 듯,골짜기를 뒤집을 듯,벼랑을 치고 바위를 굴리면서 흐르니 마치 만 마리 말들이 다투어 뛰어오르는 듯하고 우레가 폭발하는 듯하다. 그 기세는 막을 수가 없고 그 깊이는 헤아릴 수가 없으며, 그 가운데는 눈비가 퍼붓는 듯 자욱하고 넘실거린다. 때때로 날리는 포말이 옷을 적시면 서늘한 기운이 뼛속까지 들어와 혼이 맑아지고 정신이 시원해지며 마음이 편안하고 뜻이 통쾌해진다. 호탕하여 조물주와 더불어 이 세상 바깥으로 노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