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박한 텔로미어 DNA로부터 텔로미어 진화를 이끌어낸 원동력을 규명함 -
[연구필요성]
텔로미어는 진핵생물에서 DNA를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구조물 중 하나로, 텔로미어가 손상되면 세포노화가 일어나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텔로미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보니 서로 다른 종에서도 쉽게 바뀌지 않으며, 실제로 모든 척추동물은 TTAGGG라는 동일한 텔로미어 DNA를 지닌다는 것이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텔로미어 DNA가 효모와 식물 등에서 조금씩 바뀌며 진화했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는데, 이런 진화가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또 효모와 식물이 아닌 동물에서는 텔로미어 DNA의 진화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연구성과/기대효과]
충남대학교와 공동연구(연구책임자 김준 교수/공동교신저자)를 통해 선형동물에서 이러한 텔로미어 DNA 진화가 최소 3회 일어났음을 밝혀내, 동물에서도 텔로미어가 자주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밝혀냄
한국 선형동물을 대상으로 게놈 프로젝트(genome project)를 진행해 이중 A 타입(TTAGAC) 선형동물이 G 타입(TTAGGC) 조상에서 진화했음을 규명하였으며, 이 조상에서는 A 타입 DNA 조각이 훨씬 투박한 형태로 쓰이고 있었을 가능성을 확인
마치 뗀석기라는 도끼를 개발하고 난 뒤 소재를 철로 바꾸고 가다듬어 더 완성된 도끼를 활용하게 된 것처럼, A 타입 텔로미어가 투박한 형태로 쓰이다가 점차 완성된 형태의 텔로미어로 기능하게 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함
이는 텔로미어 진화라는 쉽게 관찰하기 어려운 고대의 진화 현상을 동물의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엄밀하게 밝힌 최초의 연구이며, 이는 유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학술지인 Genome Research 2023년 11월호에 발표됨
[연구결과]
Telomeric repeat evolution in the phylum Nematoda revealed by high-quality genome assemblies and subtelomere structures
Jiseon Lim, Wonjoo Kim, Jun Kim, and Junho Lee
텔로미어는 진핵생물의 DNA 끝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진핵생물은 실처럼 이어진 선형(linear) DNA를 지니고 있는데, 실처럼 생겼다 보니 DNA 양 끝이 노출돼 쉽게 손상될 수 있다는 문제점 등을 지니고 있다. 텔로미어는 이 DNA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DNA의 양 끝이 노출되지 않도록 꽁꽁 감싸 보호하는 것이다.
텔로미어 DNA와 결합 단백질이 결합해 형성되는 구조물로, 선형 DNA 끝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텔로미어 DNA와 그 텔로미어 DNA에 결합하는 단백질로 구성된다. 이러한 결합 단백질은 텔로미어 DNA에만 잘 붙을 수 있다.
이처럼 결합 단백질이 텔로미어 DNA에만 잘 붙을 수 있다는 특징으로 인해 텔로미어 DNA를 유지시키는 유전자에는 돌연변이가 쉽게 생길 수 없다.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텔로미어 DNA가 바뀌게 되면, 더 이상 결합 단백질이 붙을 수 없어 텔로미어라는 구조물이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선형 DNA의 양 끝이 노출되며 DNA는 안정성을 잃게 되고 세포는 죽게 된다.
실제로 텔로미어 DNA는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곰팡이부터 시작해 개구리나 생쥐, 사람도 모두 똑같은 TTAGGG라는 텔로미어 DNA를 지니고 있을 정도이며, 식물에서도 T가 하나 추가된 TTTAGGG, 곤충에서도 G가 하나 빠진 TTAGG라는 거의 똑같은 텔로미어 DNA가 쓰이고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생물들이 진화라는 오랜 역사 동안 생김새도 살아가는 방식도 모두 서로 다른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을 감안하면, 이처럼 똑같은 텔로미어 DNA가 쓰인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나 가끔, 정확한 이유는 알기 어렵지만 이러한 텔로미어 DNA가 조금씩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 효모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자주 보고된 바 있으며, 식물에서는 몇몇 종에서 7~8회 정도 텔로미어 DNA가 바뀌는 진화가 일어났다는 것이 보고된 바 있다. 동물 중에서는 곤충에서 텔로미어 DNA가 변화한다는 것이 단 한 차례 보고된 바 있을 뿐이었다. 이처럼 알려진 사례 자체가 적다보니 동물에서 실제로 텔로미어 DNA가 자주 바뀌는 것인지 아닌지, 바뀐다면 어떻게 그런 진화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본 연구진은 이런 텔로미어 진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생물 다양성이 높은 선형동물(Nematoda)에 집중했다. 기존에 공개돼있던 100종이 선형동물 DNA 정보를 대량으로 수집하고, 고성능 컴퓨터를 활용해 텔로미어 DNA가 변화한 사례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실제로 적어도 세 번 텔로미어 DNA가 바뀌었음을 확인해, 동물에서도 텔로미어 진화가 자주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추가로 검증하고 그 진화 과정을 보다 면밀하게 추적하고자, 본 연구진은 텔로미어가 A 타입으로 바뀐 선형동물에 집중했다. 거의 모든 선형동물은 TTAGGC라는 G 타입 텔로미어 DNA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 선충은 TTAGAC라는 A 타입 텔로미어 DNA를 지니고 있었으며, 국내 다양한 지역에서 채집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연구진은 국내 서식하고 있던 선형동물을 다수 채집한 뒤, 이들의 DNA 염기서열 정보를 해독함으로써 텔로미어 DNA의 타입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구체적으로는 유전적으로 가까운 국내 선형동물 14종류의 DNA를 분석해 이중 9종류는 G 타입 텔로미어를, 나머지 6종류는 A 타입 텔로미어를 지님을 확인했다. 또한 이중 4종류에 대해서는 게놈 프로젝트를 진행해 고품질 유전체 지도 수준에서도 텔로미어 타입을 확정했다.
고품질 유전체 지도는 진화라는 역사적인 시간 동안 일어난 다양한 화석 돌연변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진은 그 정보를 활용해 텔로미어 진화 과정을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그중 G 타입 선형동물 2종류의 고품질 유전체 지도에서 매우 흥미로운 텔로미어 DNA 흔적을 확인했는데, 투박한 형태이지만 분명 A 타입 텔로미어 DNA를 지닌 조각이 발견된 것이다. 이러한 DNA 화석은 G 타입 선형동물에서도 이미 A 타입 텔로미어 DNA가 투박한 형태로나마 쓰일 수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치 뗀석기처럼 투박한 형태를 지녔던 이 텔로미어 DNA는 차츰 새로운 유전자 재료를 활용해 안정적으로 텔로미어에 도입됐을 것이며, 이를 통해 현재와 같은 안정적이고 정제된 형태의 A 타입 텔로미어 DNA가 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A 타입 텔로미어 DNA가 G 타입 텔로미어 DNA와 공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합 단백질이 G 타입과 A 타입에 모두 결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생물의 DNA는 A, T, G, C라는 4개의 기본 단위로 이뤄져 있는데, 이중 A와 G는 그 크기가 비슷하고 T와 C도 그 크기가 비슷하지만, 두 그룹 사이에는 크기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A에서 G로 바뀌거나, T에서 C로 바뀌는 변화는 텔로미어 결합 단백질이 결합력을 잃지 않는 돌연변이일 것이라 추정할 수 있었다. 실제로 기존에 보고된 식물과 곤충의 텔로미어 진화 사례를 정리한 결과 거의 대부분 T에서 C로 바뀐 형태임을 알 수 있었으며, 연구진이 확인한 선형동물의 텔로미어 진화 사례에서도 3개 중 2개는 G가 A로 바뀌거나 C가 T로 바뀐 것임이 확인되었다. 즉, 이처럼 결합 단백질이 결합력을 잃지 않는 선에서 발생하는 돌연변이가 텔로미어 DNA의 변화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일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본 연구진이 확인한 텔로미어 진화는 생물 계통 사이에서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 매우 드문 진화 현상이다. 이러한 텔로미어 진화 과정은 생물이 진화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해 줄 것이다. 또한 연구진이 확보한 DNA 정보와 고품질 유전체 지도는 해당 분류군에 대한 중요한 유전 자원으로 향후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향후에도 다양한 국내 생물에 대해 게놈 프로젝트를 진행해 고품질 유전 자원을 확보한다면, 생물의 진화를 밝혀내는 것은 물론 중요한 유전 자원을 확보하는 데 앞장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용어설명]
- ○선형동물은 지구상에 약 100만 종 이상, 5 해 마리 이상 서식할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생물 다양성이 높은 분류군이다. 선형동물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실처럼 길게 뻗은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단순한 신체 구조를 기반으로 수많은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다. 예컨대 서식지도 무척 다양한데, 바닷속 열수구, 차디찬 극지, 독극물인 비소로 가득 찬 호수 등 지구의 거의 모든 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선형동물로는 모델생물인 예쁜꼬마선충을 꼽을 수 있으며, 이는 길이 약 1 mm 정도까지 자라는 생물로 지금까지 노벨상을 여러 번 수상한 중요한 생물로 연구되고 있다.
- ○텔로미어 DNA는 TTAGGG, TTAGGC 등으로 특정한 단위 DNA가 반복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텔로미어 DNA에는 결합 단백질이 붙을 수 있으며, 이러한 결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만 텔로미어가 안정적으로 DNA 끝을 보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