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울 때 따뜻함 찾는 기본적 행동의 뇌과학 원리 발견 -
선선한 가을이 왔다. 거리에는 외투를 걸친 사람들이 늘어나고, 밤에는 난방을 켜는 집도 생겨난다. 여름내 즐기던 아이스 음료보다 따뜻한 음료를 찾게 된다. 이는 모두 적정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우리 뇌의 작용이다. 뇌는 어떻게 체온 유지 행동을 일으킬까?
서울대학교 화학부와 유전공학연구소의 김성연 교수 연구진은 체온 유지 행동의 뇌과학적 원리를 상세히 밝혀냈다. 먹고 마시는 행동과 함께 동물의 가장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행동인 체온 유지 행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뇌 지역과 뉴런을 처음 발견하고, 이들의 활성이 인코딩(부호화)하는 정보와 입력 신경회로를 규명한 것으로, 생리적 욕구로 인한 본능적 행동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서울대 정시은, 이명선, 김동윤 박사과정 학생이 제1저자로 이끈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뉴런(Neuron)’에 미국 동부시간으로 10월 22일 온라인 공개되었다. (논문명: A forebrain neural substrate for behavioral thermoregulation)
체온의 유지는 단세포생물에서부터 모든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유지에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로, 사람의 경우 체온이 섭씨 37°에서 몇 도만 벗어나도 건강을 위협하고, 그 상태가 장시간 지속될 경우 치명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주변의 온도가 낮아지거나 높아질 경우, 뇌는 이를 즉각 감지하고 체온 유지를 위한 반응을 일으킨다. 여러 반응 중 추울 때 몸이 부르르 떨리거나, 혈관이 수축하거나, 더울 때 땀이 나는 등의 자율적 반응이 일어나는 과학적 원리는 잘 알려져 있는 반면, 외투를 입거나, 따뜻한 곳으로 가거나, 난방을 켜는 등의 행동적 반응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거의 연구된 바 없다.
(※ 관련하여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줄리어스 교수와 아뎀 파타푸티언 교수는 온도를 감지하는 수용체들을 발견하였음. 이 수용체들에서 온도 자극이 전기 신호로 바뀌고, 이로 인해 해당 수용체들을 발현하는 신경말단에서 신경 신호가 발생하면, 온도 감각 정보를 담은 이 신호가 척수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됨)
이러한 체온 유지 행동은 모든 동물에서 관찰되는 매우 기본적인 본능적 행동이자, 생리적 요구에 의해 강력하게 동기 부여되는 행동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뇌의 기능이 연구되고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아직까지도 체온 유지 행동에 핵심적 기능을 하는 뉴런이나 회로는 커녕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거시적인 뇌 부위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다.
연구진은 체온 유지 행동이 동기 부여된 행동이라는 점에 착안해, 가치 판단과 동기 부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외측 시상하부에 주목했다. 특히 외측 시상하부에서 Vgat유전자를 발현하는 억제성 뉴런들은 먹는 행동, 사냥 행동, 사회적 행동과 같은 다양한 동기 부여된 행동을 일으키거나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최근의 연구에서 알려진 바 있다. 연구진은 이 뉴런 집단이 체온 유지 행동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하였다.
연구진은 먼저 화학적인 방법으로 특정 뉴런 집단의 신경활성을 조작하는 기술인 화학유전학 기술을 이용해 실험쥐에서 외측 시상하부의 Vgat뉴런의 활성을 억제하였다. 그러자 추운 곳에서 따뜻한 램프를 켜는 체온 유지 행동이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뿐 아니라 춥거나 더운 곳을 피해 적절한 온도를 찾아 가는 행동과, 추위를 피해 둥지를 짓는 행동, 더운 환경에서 몸을 늘어뜨려 열을 식히는 행동과 같은 여러 체온 유지 행동이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외측 시상하부의 Vgat뉴런들이 다양한 체온 유지 행동에 필수적인 역할을 함을 의미한다. 이로써 연구진은 체온 유지 행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전뇌 지역을 최초로 규명한 것은 물론이고, 이 행동에 반드시 필요한 특정 뉴런까지 최초로 밝혀낸 것이다.
이어서 연구진은 첨단 현미경 기술인 이광자 현미경 기술을 이용하여 외측 시상하부 Vgat뉴런들의 활성이 어떤 정보를 담고 있는지 연구하였다. 이들 중 일부 뉴런들이 추운 곳에서 따뜻한 램프를 켜는 체온 유지 행동 시 활성화되는 것이 관찰되었는데, 이 뉴런들은 흥미롭게도 (더운 환경에서 주어지는 열기와 같은) 불쾌한 온도 자극이 주어졌을 때에도 활성화되었고, 반대로 (추운 환경에서 주어지는 열감과 같은) 기분 좋은 온도 자극에는 억제되었다. 이는 외측 시상하부 Vgat뉴런들의 활성 패턴이 체온 유지 행동을 인코딩하고 있으며, 또한 체온 유지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근거가 되는 온도 자극의 가치 정보도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결과다. 이를 근거로 외측 시상하부 Vgat뉴런들은 너무 덥거나 추운 불쾌한 온도 자극을 피하는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체온 유지 행동을 일으킨다고 추정할 수 있다.
나아가 연구진은 온도 감각 정보를 받아 전뇌로 전달하는 후뇌 영역으로 알려진 외측 부완핵이 체온 유지 행동에 필수적인 정보를 외측 시상하부로 전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외부 온도 정보가 뇌로 전달되고 이를 통해 체온 유지 행동이 일어나는 신경회로를 규명한 것이다.
교신저자인 김성연 교수는 “왜 우리는 따뜻한 음료를 추우면 찾게 되고, 더우면 찾지 않을까? 추울 때 따뜻함을 찾게 하는 원초적인 동기는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 연구는 이와 같이 단순하고 일상적인 물음이 인간의 근본적인 질문에 맞닿아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 연구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후속 연구를 통해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고, 정확한 값으로 설정할 수 있는 온도라는 변수를 이용해 자극의 가치가 어떻게 평가되고, 동기가 생겨나는가 하는 뇌과학의 가장 오랜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서울대학교 창의선도 신진연구자 지원 사업, 한국연구재단, 보건복지부 및 휴먼 프론티어 사이언스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 김 교수는 특히 “서울대학교 창의선도 신진연구자 지원 사업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체온 유지 행동의 원리를 밝히겠다는 미개척 분야의 기초과학 연구에 도전할 수 있었다”며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창의선도 신진연구자 지원 사업은 신진 연구자들의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교내에서 2016년부터 시행 중인 연구비 지원 사업이다.
[연구결과]
1. 연구 배경
생물체 내부의 온도를 적절한 범위 안에 유지시켜 분자 및 세포 기능이 원활히 동작하도록 하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동물의 경우 뇌의 항상성 유지 시스템이 체온을 단단히 감시하고 조절하고 있어, 주변 온도가 변화하면 이에 대응하는 반응이 일어난다. 특히 동물은 체온의 항상성 유지를 위해 추위나 더위에 대응하여 반대 온도를 찾는 행동을 보인다. 이러한 행동적 온도 조절(behavioral thermoregulation)은 목표 지향적 반응(goal-directed behavior)으로, 주어진 여건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사람의 경우 추운 날 외투를 입거나, 난방기를 켜거나, 따뜻한 음료를 마시는 것이 그 예이다. 체온 유지 행동은 일상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기본적인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를 매개하는 뉴런은 커녕, 이 행동에 필요한 뇌 지역이 어디인지조차 알려진 바 없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체온 유지 행동에 필요한 뇌 영역과 자세한 뉴런 타입을 찾고, 나아가 외부 온도 정보가 체외에서 뇌로 전달되고 체온 유지 행동으로 변환되는 메커니즘을 밝히고자 하였다.
2. 연구 내용
사람과 마찬가지로 실험쥐들도 다양한 체온 유지 행동을 보인다. 예를 들어, 추운 환경에서 따뜻한 곳을 찾아 이동하거나 둥지를 짓고, 심지어 레버를 눌러 따뜻한 램프를 켜는 방법을 학습하고 나면 스스로 레버를 눌러 램프를 켜는 행동까지 보인다. 본 연구진은 뇌의 외측 시상하부(lateral hypothalamus)에서 억제성 신경 전달 물질을 분비하는 뉴런인 Vgat뉴런의 활성을 인위적으로 억제하자, 실험쥐의 다양한 체온 유지 행동이 모두 감소하는 것을 관찰하였다. 즉, 외측 시상하부의 Vgat뉴런이 체온 유지 행동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체온 유지 행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전뇌 지역을 최초로 규명한 성과이고, 여기에 더하여 이 행동에 반드시 필요한 특정 뉴런까지 최초로 밝혀낸 것이다.
다음으로 본 연구진은 외측 시상하부의 Vgat뉴런들의 활성이 어떤 정보를 인코딩(encoding)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 광섬유 광도 측정법(fiber photometry)과 이광자 현미경(two-photon microscopy) 기술을 이용하여 행동하는 실험쥐의 뇌 심부에 있는 뉴런의 활성을 실시간으로 관찰하였다. 그 결과로, 본 연구진은 외측 시상하부의 Vgat뉴런들 중 일부가 체온 유지 행동 중에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흥미롭게도 이 뉴런들은 더운 환경에서 주어지는 열기와 같은 불쾌한 온도 자극(thermal punishment)에 의해서도 활성화되고, 추운 환경에서 주어지는 열감과 같이 기분 좋은 온도 자극(thermal reward)에 의해 억제되는 등, 체온 유지 행동뿐 아니라 온도 자극의 가치(value) 정보도 인코딩하였다. 이러한 반응 양상은 외측 시상하부 Vgat뉴런들이 불쾌한 온도 자극을 피하는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체온 유지 행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준다.
그렇다면 온도 감각 정보는 어떻게 말초신경에서 외측 시상하부까지 전달되는 것일까? 외측 시상하부 Vgat뉴런으로 연결된 뇌 영역을 뇌 전체에 걸쳐 조사한 결과, 본 연구진은 외부의 온도 정보를 전뇌 영역으로 전달하는 부위로 알려진 외측 부완핵(lateral parabrachial nucleus)이 외측 시상하부 Vgat뉴런으로도 투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외측 부완핵에서 외측 시상하부로 연결되는 신경회로를 선택적으로 억제한 결과, 체온 유지 행동이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즉, 외측 시상하부의 Vgat뉴런은 외측 부완핵으로부터 관련 정보를 제공받아 체온 유지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위 결과를 통해 본 연구진은 외측 부완핵으로부터 외측 시상하부로 이어지는, 동물의 체온 유지 행동을 매개하는 필수적인 신경회로 요소 및 정보 처리 과정을 규명하였다.
3. 기대효과
본 연구는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겪는 평범한 현상이고, 생명 유지를 위한 가장 본능적인 행동이자 근본적인 생리적 반응이면서도 그 원리가 미지로 남아 있던 체온 유지 행동의 신경회로 메커니즘을 상세히 밝혔다는 기초과학적 의의가 있다. 한편, 체온 유지 행동은 단순히 주변이 춥거나 더울 때뿐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잠자기 전에 숙면을 위해 몸을 따뜻하게 하고, 운동 후에 올라간 체온을 낮추기 위해 시원한 음료를 찾는다. 감기에 걸려 열이 날 때, 혹은 생리 주기나 임신 상태에 따라 시원함을 찾기도 한다. 이처럼 체온 유지 행동은 매우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행동이면서도, 다양한 외부 자극과 환경 변화, 신체 상태 등에 의해 조절되는 복잡한 행동이다. 본 연구는 체온 유지 행동에 필수적인 뇌 지역과 뉴런 집단을 최초로 규명하고, 이들이 인코딩하는 정보와 입력 신경 회로를 규명함으로써, 다양한 상황에서 체온 유지 행동이 일어나고 조절되는 과정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또한 본 연구는 온도라는 새로운 자극을 도입해 가치 평가 및 동기 부여의 원리를 연구하였다는 독창성이 있다. 기존에는 설탕물과 강한 바람 등을 각각 긍정적, 부정적 가치를 갖는 자극으로 동시에 사용하여 가치와 동기에 대한 연구를 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 두 자극은 물리․화학적으로 이질적이기 때문에 자극의 수용 부위와 뇌로의 신호전달 및 정보 처리 경로가 전혀 다르다. 반면 온도 자극은 본 연구에서 보인 바와 같이, 온도라는 동일한 물리적 자극의 가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도, 부정적인 방향으로도 자유롭게 정량적으로 설정할 수 있고, 자극의 수용 부위와 뇌로의 신호전달 경로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온도 자극은 감각 정보의 수용에서부터 정보가 가공 및 통합되고, 가치가 평가된 후 적절한 행동을 일으키는 감각-통합-행동의 전 과정을 밝힐 수 있는 좋은 모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본 연구는 기존 연구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고 평가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뇌과학의 가장 근본적이고 오랜 질문 중 하나인 동기 부여 및 인간 행동의 기본 원리를 규명하는 데 큰 진보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가치 평가와 동기 부여의 이상과 밀접하게 연관된 우울증, 중독 등 다양한 정신질환의 과학적 이해와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 기반 지식을 제공할 것이다.
[그림설명]
외부 온도에 대한 감각 정보는 척수신경을 통해 후뇌 부완핵을 거쳐 외측 시상하부 Vgat뉴런으로 전달된다. 이 뉴런들의 활성은 온도 자극의 가치와 체온 유지 행동에 대한 정보를 인코딩하고 있고, 체온 유지 행동에 필수적이다. 온도 정보의 흐름을 매개하는 이러한 신경회로는 뜨겁거나 차가운 온도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체온 유지 행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