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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여는 과학] 미래과학 뇌과학 - 강봉균

2008.03.25.

미래를 여는 과학 미래과학 뇌과학 강봉균 교수(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50억년 전 지구가 탄생한 이래 긴 진화의 시간을 거쳐 ‘인간’ 이라는 최고의 생명체가 만들어졌다. 인간은 지구 생태계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우주를 동경하는 존재가 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탐구하는 인간의 존재는 과학을 낳았다.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인간을 특징지우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고등정신기능을 갖춘 인간의 ‘뇌’에 있다. 뇌는 그 복잡성으로 인해 작은 우주라는 말로도 불린다. 인간의 뇌야말로 인간을 규정 지워주는 고등정신의 정수인 것이다. 미래는 뇌를 연구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뇌가 없다면 인간도 없고 사회도 있을 수 없다. 과학도 뇌가 만들어낸 작품이자 논리적 수단이다. 실로 뇌연구의 매력은, 우리를 절망하게 하게하며 치유 불가능한 뇌신경계 질환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기대감 외에도 우리자신의 정체성과 본질을 규명하는데 가장 직접적인 역할을 한다는데 있다. 뇌연구는 생물학 및 의학, 공학의 범주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학, 윤리학, 종교, 문화 등 인간생활이 미치는 모든 영역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뇌는 대략 1.5kg 이므로 체중의 2-3%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뇌가 소모하는 에너지는 우리 인체가 사용하는 총에너지의 60-70%를 차지한다. 이런 놀라운 에너지 소모량은 생명체를 유지하는데 뇌가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하는지 짐작케 한다. 뇌에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신경세포)이 들어 있다. 이들은 주로 뇌의 껍질부위에 몰려 있어 회백질을 형성한다. 뇌의 정보처리기능은 회백질의 신경세포층에 있다. 정보처리센터를 오가는 즉, 뉴런 사이를 연결하는 전선에 해당하는 신경섬유는 뇌의 중앙에 밀집되어 있어 백질을 형성한다.

뉴런의 모습을 보면 생물체를 구성하는 여러 세포 가운데서도 가장 복잡한 모습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전정보가 들어 있는 핵을 소유한 세포체에는 이로부터 뻗어 나온 돌기들이 무수히 복잡하게 달려 있다. 돌기들은 전선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활동전위라는 전기신호를 만들어 다른 뉴런에 이를 전달한다. 뉴런간의 연결을 시냅스라고 한다. 하나의 뉴런은 수 만개의 뉴런과 시냅스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뇌에는 1,000조 개에 이르는 시냅스, 즉 뉴런 간의 연결 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뉴런들은 시냅스를 통해 연결되어 있으므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다. 뉴런들은 특정한 배열로 연결되어 신경회로망을 형성한다. 뇌에는 뉴런들의 연결방식에 따라 천문학적 수의 신경회로망이 존재하고 있다. 뇌가 갖는 다양한 기능들은 그에 대응하는 신경회로망이 전기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 예를 들어 뇌가 존재하기 훨씬 전인 수십억년 전의 우주의 탄생에 관한 어려운 물리 이론을 이해하거나, 말러 교향곡을 들으며 감동에 빠지거나, 차를 운전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현상들은 뇌에서 어떤 신경회로망들이 활동하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사람 개인 별로 시냅스의 수와 분포된 위치 등이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정상적인 사람간의 이런 차이는 유전적 영향보다는 학습에 의한 후천적 영향이 더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냅스의 형태는 학습과 환경영향에 의해 수시로 변하는 것 같다. 우리의 뇌는 수시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시냅스의 선택에 의해 활동하는 신경회로망이 결정되는 만큼 시냅스의 구조적, 기능적 차이는 각 개인의 자아와 개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뇌과학의 연구결과는 인간 정체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해준다.

인간은 복제 가능한가? 답은「아니오」이다. 인간의 요체는 인격성에 있으며 이는 두뇌의 작용에서 나온다. 인간은 자라면서 각 개인이 독특한 내적, 외적환경을 경험하며 다양한 정보를 뇌에 저장하고 따라서 뇌의 신경회로망은 개인별로 많은 차이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뇌구조의 미세한 차이는 각 개인의 독특한 개성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유전자를 복제한다고 해서 뇌의 회로를 복제 할 수는 없으므로 인간 복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뇌는 영역에 따라 분화된 기능을 지닌다. 예를 들어 후두엽에는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중추가 있고, 측두엽은 청각정보 처리 영역과 기억중추가 있으며 두정엽에는 공간인지 기능이 있다. 특히 뇌의 맨 앞에 있는 전두엽은 계획, 계산, 비교, 판단 등을 가능하게 하는 고등한 사고 작용의 기능을 갖는다. 이러한 영역들이 어떠한 통합과정을 거쳐 통일성 있는 자기 인식을 가져오는지는 물질과 정신의 차이를 논하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된다.

의식이 뇌에서 어떻게 생성되는지는 21세기 신경과학이 목표로 삼는 최고의 연구과제 중 하나이다. 마음을 신경과학적으로 이해하는데 꼭 거쳐 가야할 과정이다. 현재 알고 있는 바로는 의식이 뇌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전두엽이 중요하지만 그 외에도 뇌의 여러 영역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뇌를 깨어 있게 하는 뇌간의 기능,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실시간 느끼게 해주는 감각영역도 필요하다. 들어오는 정보를 기존의 저장된 기억과 비교하고 의미를 추출하여 특정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측두엽과 전두엽이 협력하여야 한다. 따라서 소위 뇌 속의 뇌로 예견되어온 의식의 중추가 어느 한 장소에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의식의 수준이 높아질수록(예, 무언가 골몰히 집중하여 생각할 때) 활동하는 신경회로망의 규모는 커지고, 의식 수준이 낮을수록(예, 잠을 잘 때) 신경회로망을 구성하는 뉴런의 수가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 의식의 비밀에 가까이 다가서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뇌질환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신경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인간의 두뇌의 기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 손상 또는 질병으로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이를 의학적, 공학적으로 회복시키려는 방법들이 나타나고 있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장치 즉, BCI를 이용하여 뇌의 기능을 대체하려는 연구가 초보적인 성과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쉽게 성과를 얻을 것이라 속단하지는 못한다. 뇌를 구성하는 신경회로망의 천문학적 수가 여전히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우리 각 개인의 개성을 창조하여 인류의 중요한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뇌의 이런 복잡성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21세기는 뇌의 신비를 풀기 위한 인류 도전의 시기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의식과 사고, 상상력, 언어 등과 같은 인간정신능력의 고차원적인 신경메커니즘이 어떻게 발생되며 궁극적으로 뇌의 활동에 의하여 마음이 어떻게 생성되는가는 아직 풀리지 않는 난제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뇌와 여러 면에서 유사한 뇌를 지니며 문화양식을 영위하는 인간이 만들어진 것은 약 4만년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동안 뇌는 점차 발달해 왔으며 앞으로도 발달의 진화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뇌를 소유한 인간이 뇌의 모습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기원 후가 되어서야 마음의 장소가 심장이 아니라 두뇌에 있다고 입증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감각을 느끼고 신체를 조절하는 기능이 뇌실에 있는 뇌척수액이 아니라 신경세포와 신경섬유에 의해서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기원 후 18세기가 거의 지나서였다. 뉴런이 신경계의 가장 근본적인 기능단위가 된 것을 찾아낸 것은 불과 1백여년전의 일이다. 아직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뇌의 신비는 인류가 풀어야 할 매우 어려운 숙제임에 틀림없다. 뇌의 신비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는 견해들도 있다. 뇌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뇌 자체를 이용한다는 순환적 모순이 그 바탕을 이룬다.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뇌의 신비에 철학적으로 매료되어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얻어진 신경과학의 연구결과가 그 전 1세기 동안 연구된 결과보다 크다. 이러한 폭발적인 연구 추세를 앞으로도 계속 전망해본다면 이상에서 열거한 많은 신경과학의 난제들이 21세기에 상당부분 해결 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이 결코 꿈만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인간의 두뇌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풀 수 있도록 진화해온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아울러 뇌에 대한 이해 및 뇌조작기술의 도입 등은 인간의 정체성, 가치관 및 윤리의식에 대한 정의에 규정하는 데 또 다른 복잡성을 가져다 주리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