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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정말 살아있을까? - 김종일 교수

2008.11.25.

박물관은 정말 살아있을까?
글 :김종일 (인문대 고고미술사학과교수)

김종일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소위 고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약간은 쑥스러운, 그렇지만 솔직한 고백을 하나 해야 할 것 같다. 이런저런 일로 박물관에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은 개인적으로 박물관 전시실을 돌아보며 전시된 유물을 관람하는 일이 반드시 재미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고고학자로서 전시된 유물이 갖고 있는 여러 의미와 가치를 다양한 고고학적 맥락으로 환원해 재해석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또 반드시 해야 할 작업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고학자의 소위‘전문가적’ 시각에서 가능한 이야기일 뿐 만일 일반인의 입장에 서서 그러한 유물들을 본다면 석기나 토기와 같은 그저 비슷비슷한 모양의 도구들을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관람객들의‘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보조 자료가 준비돼 있기는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그 자료가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관람객들을 ‘좌절’과 ‘자책’ 속에 빠뜨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견한다. 그 이유를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일종의 격언과 함께 관람객의 사전지식과 준비부족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맥락 속에서, 그리고 특정한 시선과 방식에 따라 유물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기를 원하는 ‘전문가들’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이러한 전문적인 지식이 관람객들의 유물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도와줄 수 있다는 점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러한 전문적인 지식이 오히려 관람객들이 유물을 자유롭게 느끼며 상상하는 것을 제약하는 것은 아닌지, 관람객들이 자기만의 맥락 안에 유물들을 위치시켜 자신만의 해석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재미를 빼앗는 것은 아닌지, 이를 통해 관람객들을 진열장 너머의 유물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관람객들은 미리 정해진 해석체계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유물에 대한 자신만의 고유한 상상과 느낌, 그리고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자신의 느낌이나 해석을 역사적 사실이나 진실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한 유물이 갖고 있는 자료적 가치와 의미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감상하고 자신만의 입장에서 재해석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를 통해 박물관의 유물을 전문적인 지식과 함께 그야말로 자신만의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전문가들이나 박물관이 지향해야 할 중요한 임무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진열장 너머에 단지 타자화되고 대상화된 채 침묵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 의해 다양한 맥락 속으로 환원되고 재해석되며 또한 보는 이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보는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살아 있는 존재일 수 있다. 이러한 유물들을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영화 「박물관은 살아 있다」에서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파라오의 보물’처럼 전문가들 외에 바로 관람객들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관람객들이 유물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자유로운 느낌과 상상은 박물관이 살아 있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기고, 2008.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