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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

지적 호기심과 그 적들-유근배 교수

2008.09.09.

지적 호기심과 그 적들 글 : 유근배 (사회대 지리학과 교수)

유근배 사회대 지리학과 교수오십대 중반에 들어섰으니 이제는 희미해질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그 기억은 선명하다. 통지표를 받았던 국민학교 5학년 어느 날 저녁, 아버지는 나를 흠씬 두들겨 패셨다(요즈음 TV에 자주 나오는 공익광고를 나는 살갗 깊이 체험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부자유친은 어려울 수도 있다.). 매를 맞으면서 대체 무엇이 잘못인가를 곰곰 생각했으나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야 수업시간에 말이 많다는 담임선생님의 코멘트가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질문이 많았던 문제아였다. 그 후로는 질문을 잊어버리고 지냈다. 나는 요즈음도 익숙한 사람들의 회합이 아니면 말문을 여는 것이 무척 부담스럽다. 참여하고 있는 학회에서도 질문은 즐겨하지 않는 편이다.

각각 면사무소와 군청 소재지의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거쳐서 도청 소재지의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어느덧 질문하는 학생으로 돌아왔다. 수업시간에 뻔뻔스런 질문을 해대는 친구들과 진병도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6ㆍ25가 발발하던 날 남산공원의 벤치에서 시집을 읽고 계셨다던 선생님은 중년의 나이에도 재기발랄과 호방함이 넘치셨다. 선생님은 끊임없이 우리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셨고, 우리들은 마음껏 그것을 말하고 즐거워했다. 대학진학 후에도 김도정 교수님과 박영한 교수님과 같이 개방적이셨던 교수님들의 비호 아래 비행은 계속되었으나, 미구에 사정이 달라지고야 말았다. 동숭동에서 관악산으로 옮겨왔던 3학년 어느 날, 일제 때 교유(敎諭, 일제시기 중등학교 교원)를 지내셨던 어느 노교수님의 강의시간에 이견을 제시하는 괴악한 짓을 범했다. 교수님은 권위에 상처를 입으셨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순간 상세한 환경파악이 뒷받침되지 아니한 질문과 토론은 경계해야할 매우 위험한 행위라는 것을 다시 상기했다. 그 사건 이후 석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매우 경건한 자세로 그 교수님의 과목 몇 개를 더 들어야 했다. 긴 세월 그 분야를 공부한 전공교수라고 하더라도 그 분야를 어찌 다 알겠으며, 어떠한 이견도 잠재울 탁월한 능력을 갖출 수 있겠는가?

몇 년 전 서울대 기성회 모임에서 어느 분이 서울대 학생들은 강의시간에 질문이나 토론하는 습관이 부족하다는 말을 했다. 학부 3학년 시절의 씁쓸한 기억에서 선생님들이 혹 대답을 못하실까 걱정이 돼 서 그럴 것이라고 응수했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자구 노력일지도 모른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이 청춘의 생기발랄함을 억제한 채로 길게는 오륙 년의 세월을 보내고 서울대에 입학했을 것이다. 입시지옥이라는 해괴한 현상이 만들어낸 선행학습과 이어지는 반복학습이 지적 호기심의 샘을 마르게 하고, 시험에 나오지 않을 문제를 질문함으로써 소중한 입시준비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한 각고의 인내와 절제가 질문과 토론의 싹을 잘랐는지도 모른다.

학문은 생물이다.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단명을 선고 받고 박물관의 한구석에서 한갓 미이라로 남아 옛 자취를 전시할 뿐이다. 지적 호기심은 생명을 이어가는 원천이다. 실험실과 세미나실, 강의실을 생동감으로 채우는 것은 지적 호기심으로 말미암아 억제할 수 없는 질문과 이어지는 토론의 흐름이다.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기고, 2008.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