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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제자,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스승-서혜연 교수

2008.05.29.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제자,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스승 ”
글 : 서혜연 (성악과 교수)

서혜연 성악과 교수따뜻한 햇볕이 싱그러운 5월에, 젊음의 재잘거림이 캠퍼스에 가득하다. 그들은 그야말로 뛰어나다. 밝고 맑다. 이 젊음이 가득한 캠퍼스에서 젊음과 함께 숨쉴 수 있음이 더없이 즐겁다. 기쁘다. 아주 기분이 좋다. 신난다. 다음에 일어날 일들에 가슴이 두근두근,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모교의 강단에 선 지도 이제 11년이 돼간다. 나는 이 캠퍼스에 스승님이 계시고, 이제는 제자들이 있다. 의욕과 사랑으로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들. 때때로 나는 나의 몫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되묻곤 한다.

이태리에서 만났던 한 제자와 그의 스승님에 관한 이야기다. 이제는 강단에서 제자를 키우는 위치에 있는, 불혹의 나이에, 그 제자는 아무에게도 비춘 적 없는 말을, 스승님의 장례식장에서 애써 눈물을 감추며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젊은 날, 그의 스승님께서는 어느 날 제자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너는 가진 목소리도 좋고 기량도 뛰어난데 왜 그렇게 요즈음 노래하는 데 힘이 없냐고, 도대체 오늘 아침과 점심은 무엇을 먹었느냐고….

그 당시 배고픈 유학생으로, 돈이 없어 적은 양의 빵과 우유만으로 끼니를 때우던 그 시절에 이 제자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스승님은 말없이 그 제자를 데리고 근처 식당으로 가셨다. 그러고는 몇 달 동안 먹을 모든 식사의 값을 지불해 놓으시고 묵묵히 떠나셨다. 그 순간은 이 제자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스승의 입장이 된 그는 어떻게 하면 제자들의 인생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내내 찾고 있다고 하였다.

내게는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한 이야기였다. 제자들이 원하는 스승은 어떤 모습이며, 스승들이 바라는 제자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간혹 성적을 올려달라고 떼쓰러 오는 학생들, 받는 것에만 익숙한 학생들, 어려움이라고는 겪어본 적이 없어서 아주 작은 장애 앞에서도 포기하고 마는 학생들, 혹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학생들, 점점 더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가는 학생들…. 때때로 그들은 나에게 무엇을 원할까 생각한다. 더 많은 지식, 좋은 성적, 더 좋은 경력… . 그런 것들만을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에 다다르면, 조금 쓸쓸해진다.

나의 많은 스승님들이 나에게 보여주신 모습처럼,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들, 인생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 주고, 그들이 앞길을 헤쳐 나가는 데에 힘껏 도움이 돼주고 싶은데.

평생을 함께 마음속에 간직할 순간을, 서로 아껴 키울 수 있는 그런 스승과 제자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까?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의 제자이고, 또 누군가의 스승이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 된다.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제자,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스승이 될 수 있기를.

오늘도 조용히 두 손을 모아본다.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2008. 5, 26 발췌
http://www.sn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