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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기원 - 김선영

2008.04.07.

생명의 기원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들어가는 글

생명과학을 비롯한 거의 모든 과학의 분야에서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실험적으로 증명하여 그 결과를 다른 연구자들이 반복할 수 있을 때 그 가설을 받아들인다. ‘생명의 기원’의 경우에는 역시 수십억 년 전 지구의 상태를 ‘합리적’으로 상상하고 이에 근접한 환경을 설정하여 실험을 해보거나, 그래도 어려우면 또 다른 가설을 만들어 그것을 수용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는지를 찾는 과정을 통해 증명해 나간다. 지구는 약 45억년 전에 생성되고, 생명은 최대 38억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지구의 탄생과 첫 생명의 존재 사이는 최소 7억년 정도의 시간이 있다. 매우 오래 전에 7억년 정도의 시간동안 벌어진 일들을 가상하여 이론을 만들고 실험적으로 증명까지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실험적으로 입증이 어렵고 많은 가설이 필요한 ‘생명의 기원’과 같은 주제는 어쩔 수 없이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출발하게 된다.

최초의 생명의 출현 시기

생명의 기원을 논하기 전에 우선 생명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일이 필요하다. 생명체로 정의되려면 첫째, 외부 환경과 자신을 구분할 수 있는 경계를 명확히 가지고 있어야 하고 둘째,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자기 복제가 가능해야 하며, 셋째 대사 과정이 일어나야 한다. 많은 과학자들은 생명이 위의 조건을 만족하는 간단한 구조를 가진 세포로부터 출발하였다고 생각하는데 이와 같이 생명의 기원으로 간주될 수 있는 세포를 임의적으로 ‘원조세포’라 부른다. 생명의 기원이 되는 원조세포가 존재하리라는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진화론을 빼놓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생명의 기원은 현재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공통의 조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세포 1개(또는 기껏해야 몇 개 세포의 집합체)였을 것이다. 이것은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현재와 같은 다양하고 복잡한 생명체들로 나뉘고 바뀌어 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생명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논의되는 것은 최초의 생명이 언제 생겨났는가 하는 문제이다. 최초의 생물은 화석으로도 잘 남지 못하는 박테리아와 같은 아주 미세한 생명체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구가 생겨난 이래 여러 차례 큰 지각 변동을 겪었기 때문에 오래된 화석은 찾기가 어렵지만 1960년 대 이후 현미경으로만 관찰할 수 있는 미화석들이 속속 발견되어 왔다. 최초 생명체의 화석이라고 가장 널리 인정되는 것은 오스트레일리아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35억년 전의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 암석에 있는 미화석들이고, 아직 논쟁이 있지만 그린란드 이슈아 층군(Greenland Isua supracrustal belt)에서 발견된 38억년 전의 화석과 그 근처 아킬라 섬(Akila island)에서 발견된 38.5억년 전의 화석이 있다. 그러나 1996년 캘리포니아 대학의 분류학자들은 원핵과 진핵 생물의 공통 조상이 20억년 전에 분기했다는 학설을 발표하였다. 이는 고생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생물들의 531개 효소 아미노산 배열을 이용해서 진화속도를 계산한 결과이다. 최초의 생물 출현 시기가 38억 년이든 35억 년이든 분자분류학자가 제시한 20억 년과는 큰 차이가 있다. 1994년 고생물학자 쇼프(Schopf)는 선캄브리아대(Precambrian)의 미생물의 진화속도가 느렸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아직 어느 쪽이 옳은지 알 수 없지만 15억 년이라는 엄청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분야의 공동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자연 발생설의 붕괴

17세기까지만 해도 서구 사람들은 생명체의 ‘자연발생설’을 믿었다. 이때의 자연발생설은 적절한 조건만 되면 무생명체에서 생물체가 나올 수 있다는 것으로 썩은 빵이나 고기에서 곰팡이나 구더기가 생기는 것을 관찰하고 나온 이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1862년 파스퇴르의 실험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 그의 실험 결과로 생명체는 생명체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제일 처음에 원조가 되는 생명체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에 대한 의문은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후 과학의 발달과 함께 생명체의 기본 구성은 유기물질임이 밝혀지고 이에 따라 생명의 기원은 지구 탄생 이후 어떻게 이런 유기물질들이 형성되었는가, 즉 ‘화학적 진화’에 초점이 맞춰져 논의되기 시작했다. 생명의 기원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구체적 사항에서는 이견이 많지만 생명이 유기합성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데에는 모두 일치하고 있다.

오파린설

오파린(Oparin)이 제시한 이론은 ‘생명의 기원’을 현대 과학적으로 이해하는데 시발점이 되었다. 1938년 당시 소련의 오파린은 그의 저서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에서 원시대기에서 탄소는 산화상태(CO2)가 아니라 환원상태(CH4)로 존재하였고, 이것들이 다른 종류의 물질(NH3와 같이 환원된 상태의 질소)들과 반응을 일으켜 여러 가지 유기 화합물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생명체는 유기화합물의 복합체이므로 생명체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우선 여러 가지 유기화합물들이 생겨나야 한다. 산소는 매우 활성이 높은 원소여서 화합물들의 중합체를 다시 분해하는 역할을 하므로 생명체가 처음 생겨날 당시의 환경은 산소가 거의 없는 상태였을 것이다. 이러한 유기화합물의 합성에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때 주로 사용된 것은 자외선이었을 것으로 예상했다. 오파린은 그런 과정을 통해 합성된 여러 가지 유기물질들이 소위 ‘원시 수프’를 형성했다고 생각했다. 이 수프 안에는 단백질들이 존재하였는데 이들은 서로 모여 주변 환경과 확실하게 구분이 되는 ‘코아세르베이트’(coacervate)라는 것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 내부에서 새로운 물질들이 합성되고 농축되는 과정을 통해 코아세르베이트는 점점 더 특별한 존재로 바뀌어 갔다. 이로서 여러 종류의 코아세르베이트가 생기고 궁극적으로는 안정성이 높은 것들이 현재의 단세포 생물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까지 발전하였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가 주장한 이론은 한마디로 화학적 진화(chemical evolution)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는 일종의 과학적 자연발생설이다. 물론 화학적 진화에서의 자연발생설은 생명이 지금 빠르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에 서서히 생겨난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자연발생설과는 다르다.

오파린이 처음 이론을 발표한 1922~24년 무렵에는 ‘유전자’는 ‘DNA’라는 등식이 밝혀지지 않았을 때였고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함유하고 있는 것도 모르던 때였으므로 그의 이론은 주로 생명체의 주요 구성 성분인 유기합성물의 기원에 관한 것이다. 이 설은 그 깨끗한 논리로서 과학자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파린 설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그의 설이 정확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부분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은 생명의 기원 문제에 있어 패러다임을 변화시켰으며 지금 현재 논의되고 있는 많은 가설들의 기본 전제로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생명의 기원을 논할 때 항상 인용되는 이유이다. 그의 이론은 또한 철학적 문제나 현상학적인 해석에 머물러 있던 생명의 기원을 과학의 영역으로 옮겨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주제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밀러와 그 이후의 실험

1951년 시카고 대학 유레이(Urey) 교수 실험실의 대학원생이던 Miller는 간단한 실험 장치를 이용해 오파린의 가설을 증명해 낸다. 즉 원시 지구의 대기 상태를 모방한 CH4, NH3, H2O, H2 의 혼합물을 순환시키면서 전기 방전을 일으키고 나서 일주일 후 이 용액을 종이 크로마토그래피(paper chromatography)로 분석하였더니 글리신(glycine), 알라닌(alanine)과 같은 간단한 아미노산은 물론 좀더 복잡한 물질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처음에 주어졌던 CH4의 1/6정도만 복잡한 유기 화합물로 바뀌었으나 1주일정도라는 짧은 시간을 고려하면
매우 획기적인 결과였으며 생겨난 유기물들은 대개 생물체 조직에 실제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이후 여러 학자들 에너지원, 기체의 종류들을 바꿔가며 밀러와 비슷한 실험을 하였는데 아미노산 몇 개가 서로 연결된 짧은 펩티드와 핵산인 아데닌, ATP의 전구체에 해당하는 아데닌과 리보오스의 연결체도 만들어짐을 발견하였다.

밀러의 실험은 생명의 기원 연구에 큰 기여를 한 만큼이나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아미노산은 키랄성이라 불리는 성질에 의해 거울상 L형과 D형이 있는데 이유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생물체의 아미노산은 거의 L형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밀러형 실험에서는 L형과 D형 아미노산이 같은 양으로 생성되었기 때문에, 생물체가 우연히 L형만 선택하였다고 생각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또 그는 오파린의 설을 근거로 환원형 대기를 기본 가정으로 삼아 실험을 수행하였는데 원시 대기가 어떤 상태였는지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생명의 기원 물질로서의 RNA

생명의 기원이 되는 원조세포를 만들기 위해 맨 처음에 일어난 사건이 무엇이든 간에 분명한 사실은 그 이전에 생체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유기 물질들이 생겼을 거라는 점이다. 현재 세포를 이루는 4가지 주요 생체 분자는 핵산, 단백질, 당류, 지방이고, 핵산(DNA, RNA)은 유전물질이고 단백질은 생리 현상을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물질이기 때문이 이 중 하나가 최초의 생체 물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들 중 과연 어느 것이 생겨났을까? 단백질이 최초의 물질이라고 생각해 보자. 단백질은 세포에서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그러나 단백질은 유전정보 즉 DNA나 RNA 등의 핵산이 있어야 만들어지며 자기 복제를 하지 못한다. DNA는 어떠한가? DNA는 현재 생존해 있는 대부분의 생물체가 유전물질로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초의 물질로서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DNA가 자기 복제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단백질의 촉매 작용이 필요하고, DNA의 정보가 단백질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RNA라는 중간 물질을 거쳐야 한다. 이런 이유로 DNA와 단백질이 함께 최초의 유전물질로 존재했을 것이라는 가설도 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와 RNA 자체가 복제 효소와 가수분해 효소의 기능을 가진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최초의 유전 물질은 RNA라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RNA는 DNA보다 불안정한 물질이므로 RNA에서 안정한 DNA로 진화하였다고 보는 것이 보다 논리적이라는 사실도 이런 결론에 더욱 확신을 주었다. 이에 따라 1986년 하버드 대학의 Gilbert는 RNA가 세포의 화학반응을 담당하는 효소로서 작용하면서 유전물질로서 역할을 한 원시 시대를 ‘RNA 세계’(RNA world)라고 명명했다. RNA 세계의 진화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첫 번째 단계는 그 이전에 합성된 여러 유기물질로부터 RNA의 단위체인 뉴클레오티드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RNA로 합성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1993년 Ferris 등이 점토 광물인 몽모릴로나이트(Montmorillonite)를 촉매로 하여 뉴클레오티드 집합체(pool)에서 RNA 올리고머(oligomer)를 합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두 번째 단계는 RNA 복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 만들어진 길고 짧은 RNA 조각들은 두 가닥이 합쳐져 이중나선의 RNA로서 존재하고 있다가 두 가닥 중 한 가닥이 RNA 중합 효소로서의 활성을 가지게 되고 그 가닥이 분리되어 상보적인 가닥을 복제함으로써 또 다른 중합 효소 가닥을 합성해 내면, 여기서 다시 두 번째 가닥을 복제하여 상보적인 처음의 가닥을 합성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복제에 실수가 생기게 되면 이는 원래의 가닥과 다른 여러 다른 종류의 유전정보가 생겨날 있는데 이것이 생물 다양성을 부여했을 것이다. 세 번째로 일어나는 일은 RNA의 정보가 단백질로 만들어지는 일이다. 그 단백질 중에는 RNA에서 DNA를 합성하는 중합효소가 있었을 것이고 이때부터 불안정한 RNA 대신 안정한 DNA가 유전 물질로서의 기능을 넘겨받았을 것이다.

RNA가 촉매 기능과 유전물질의 기능을 모두 할 수 있으므로 RNA 세계 가설은 완벽해 보이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의문이 많다. 첫 번째 문제는 RNA가 합성되기 위해 퓨린, 피리미딘 같은 염기와 리보오스 같은 당, 그리고 인산이 필요한데 이들 자체도 간단한 유기화합물이 아니다. 또 현재 존재하는 생명체의 RNA가 D형 리보오스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실험적 상황에서는 D형과 L형이 거의 동일한 양만큼 합성되므로 D형만으로 이루어지게 RNA가 중합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RNA 세계’ 가설의 또 다른 취약점은 아직도 복제의 전 과정을 실험적으로 재현할 수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