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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론의 논쟁, 아직도? - 이명균

2008.04.06.

우주론의 논쟁, 아직도? - 이명균

들어가며

우주

우리는 우주 속에서 많은 궁금증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특히 맑은 밤에 별들이 아름답게 꾸며놓은 하늘을 바라볼 때면 우주에 대하여 알고 싶은 마음이 더욱 많아진다. 이 점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뿐만 아니라,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주란 무엇일까? 우주는 얼마나 클까? 우주의 끝은 있을까? 우주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등등 우주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은 끝이 없다. 이러한 우주에 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자연과학적 방법을 통하여 구하고자 하는 학문 분야를 우주론이라고 한다. 우주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대부분 동안에 우주론은 학문의 한 분야로서 제대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뜬구름 잡기와(?) 비슷한 가설 수준으로 머물러오다가, 20세기에 들어서야 정식으로 자리를 찾게 되었으며, 특히 20세기 후반에야 꽃을 피우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이유는 우주론에서 다루게 되는 문제들의 답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주론의 특성

우주론이 자연과학의 다른 분야와 크게 다른 점은 실험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주는 대부분 우리가 직접 만져볼 수 없으며, 오직 먼 천체에서 오는 빛을 분석하여 우주의 신비를 밝혀낼 수 있다. 우주론의 실험실은 우주 전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주론에서는 이론과 (천문) 관측을 통하여 연구를 수행한다. 우주론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이론이 먼저 제시되고 후에 관측을 통하여 그 이론을 검증하게 되기도 하고, 새로운 관측 결과가 나온 후 이를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이 나오기도 한다. 우주론 검증 관측에는 뛰어난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당대의 기술 한계에 가깝거나 또는 한계를 넘어선 관측 장비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주론에는 여러 이론들이 제시되고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그런 이론들을 검정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우주론의 발전사를 살펴보면 기발한 아이디어와 수많은 논쟁으로 얽혀있다.

작은 우주 태양계에 대한 논쟁

오래된 논쟁 중에서 대표적인 예를 들면, 지구중심설(천동설)과 태양중심설(지동설)에 대한 논쟁을 들 수 있다. 지구중심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모든 천체는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는 이론이며, 태양중심설은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며 지구를 포함한 모든 천체는 태양의 주의를 돌고 있다는 이론이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으나, 코페르니쿠스(1543년)와 갈릴레오(16101년)에 의해 이 두가지 이론에 대한 논쟁이 해결될 때까지 거의 이천 년의 시간이 걸렸으며, 결정적인 증거는 갈릴레오가 1610년에 스스로 제작한 천체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하여 얻은 연구 결과들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이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우주란 지구와 태양, 별 등이 전부였으며, 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이제 20세기에 있었던 유명한 우주론 논쟁들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현대 우주론의 태동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유명한 독일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우주를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1915년에 아인슈타인이 중력을 기술하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것이다. 이어서 1917년에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 이론을 이용하여 우주의 모형을 제시하였다. 이 것을 현대 우주론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우주 모형을 세우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우주에서 물질의 분포는 균일하며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세웠다 (따라서 이 모형은 정적 우주 모형이라고 한다). 우주를 지배하는 힘은 중력인데, 중력 때문에 물질들은 서로 끌어당기므로, 물질들이 있으면 시간에 따라 모든 물질들이 한 곳으로 모이게 될 것이다 (물론 우주가 회전하고 있으면 이런 현상이 안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이 점이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물질들이 한 곳으로 모이지 못하도록, 중력의 반대 역할을 할 수 있는 항을(즉, 물체를 밀어내는 힘을 나타내는 항) 우주의 운동 방정식에 임의로 넣었다. 이 항은 우주 상수라고 불린다. 과학자들은 물리 현상을 기술하는 방정식에 임의로 어떤 항을 넣지 않는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 항을 넣지 않고는 정적인 우주 모형을 만들 수 없었다. 이 당시 아인슈타인은 이 우주 상수가 먼 훗날 오래 동안 많은 과학자들의 논쟁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이 놀라운 수학적 우주 모형을 처음으로 제시하였지만, 그 당시에 그는 우주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거대한 우주의 정체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 이 후이기 때문이다. 연필로 연구하는 우주와 망원경으로 연구하는 우주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한편 1922년에 러시아의 기상학자 프리드만은 일반상대성 이론을 이용하여 새로운 우주 모형을 발표했다. 아인슈타인의 우주 모형과 달리, 이 우주 모형에 따르면 우주는 시간에 따라 수축할 수도 있고 팽창할 수도 있다 (따라서 동적 우주 모형이라고 불린다). 이런 결과는 5년 후에 벨기에의 신부이며 천문학자였던 르메뜨르가 다시 확인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동적 우주 모형에 대하여 시큰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왜냐하면 아무리 봐도 우주는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하늘을 아무리 바라보아도 우주가 계속 변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기가 힘들다. 과연 진짜 우주는 팽창하고 있을까, 수축하고 있을까, 아니면 가만히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알아보기 전에 우주의 중심과 크기에 관한 논쟁에 대하여 알아보자.

우주의 중심과 크기에 대한 대논쟁

태양계를 벗어난 거대한 우주의 정체가 제대로 밝혀진 것은 아인슈타인이 정적 우주 모형을 발표한 다음 해인 1918년이다. 이 전까지 많은 사람들은 비록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지 못하고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지만 태양만큼은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1918년에 미국 윌슨산 천문대의 천문학자 새플리는 구상 성단(수십만개의 별이 모여 둥근 공처럼 보이는 성단)의 공간적 분포를 조사하여 우주에 대한 두 가지 중요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첫번째는 우리 은하의 크기가 태양계에 비할 수 없이 크며, 지름이 30만 광년이나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간이 속해 있는 태양계가 우리 은하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변두리에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사람들은 우주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우리가 우주의 변두리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인간 중심의 사고가 무너지게 되었다.

한편 이 당시에 찍은 천체 사진에는 바람개비처럼 생긴 작은 나선 성운(성운은 하늘에서 별과는 달리 뿌옇게 보이는 천체)들이 가끔씩 보였는데 이 성운들의 정체가 커다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 주제를 가지고 1920년 4월 26일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디시에서 많은 과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당시에 이미 유명했던 섀플리와 미국 릭 천문대의 천문학자 커티스는 대논쟁을 벌였다. 섀플리는 위에 설명한 주장을 이용하여 이 성운들이 우리 은하 안에 있는 작은 천체들이라고 주장했고, 커티스는 우리 은하의 크기는 섀플리가 주장한 것보다 10배나 작으며, 태양은 우리 은하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고, 이 성운들은 우리 은하 바깥에 있는 천체로서 우리 은하와 같이 많은 별들로 이루어져있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선 성운들의 거리를 알아내면 되는데, 그 당시에는 나선 성운들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관측 자료가 없었다. 결국 이 논쟁에서도 성운의 정체에 대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고, 이 논쟁에 대한 답은 이로부터 5년 후에 미국 윌슨산 천문대의 천문학자 허블이 제시하게 된다.

섬 우주가 현실로!

허블은 변호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천문학자가 되어 전세계에 유명해진 매우 특이한 인물이다. 허블은 망원경으로 우주를 연구하는 관측우주론을 처음으로 시작했으며, 우주론 논쟁에서는 매우 중요한 해결사의 역할을 두 번이나 했다. 1925년 허블은 안드로메다 나선 성운에 있는 변광성을 이용하여 이 성운의 거리를 측정한 결과 90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허블은 안드로메다 성운이 우리 은하 바깥에 멀리 떨어져 있는 거대한 섬 우주라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나선 성운의 정체에 관하여 커티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섀플리는 우리 은하의 구조를 밝힘으로써 우주의 영역을 넓히는 데 크게 공헌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은하 안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커티스의 주장 중에서는 나선 성운이 우리 은하 바깥에 있다는 것은 옳다고 판명되었으나, 태양의 위치나 우리 은하의 크기는 잘못되었다. 오늘날 알려진 우리 은하의 크기는 10만 광년이며 안드로메다 은하의 거리는 250만 광년이다. 이후 나선 성운들은 나선 은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은하라는 것은 억 개 이상의 별로 이루어진 거대한 천체로서 우주에 수없이 많으며, 우리 은하도 그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은하는 우주라는 바다에 점점히 있는 섬과 같은 천체로서 종종 섬우주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 말은 독일의 철학자인 칸트가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알려져있다).

우주의 팽창

외부 은하의 정체를 밝힌 지 4년 후에 허블은 우주에 대하여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다시 발표했다. 앞에서 설명한 아인슈타인의 정적 우주 모형과 프리드만, 르메뜨르의 동적 우주 모형 논쟁에 대한 답을 제시한 것이다. 1910년대부터 미국의 천문학자 슬라이퍼는 어려운 분광 관측을 통하여 여러 은하들의 시선 속도를 측정했는데, 흥미롭게도 은하들 대부분이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편, 1929년에 허블은 멀리 있는 하늘에서 널리 퍼져 있는 여러 은하들의 거리들을 처음으로 측정하고, 이 거리를 은하들의 시선 속도와 비교한 결과함으로써, 은하들의 거리가 커질수록 은하들이 더욱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는 바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결과는 오늘날 허블 법칙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법칙에 있는 상수는 허블 상수라고 불린다. 허블 상수는 거리에 따라 오늘날 우주가 팽창하고 있는 속도를 나타낸다. 이러한 결과는 1922년에 발표한 프리드만의 동적 우주 모형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우주가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정적 우주론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후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우주의 모형에 우주 상수를 임의로 넣은 것은 일생 최대의 실수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코 최대의 실수가 아니었음이 이로부터 70년 후에 밝혀지게 된다.

대폭발 이론의 정립

우주가 현재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과거로 갈수록 우주가 작아지고 과거의 시작에는 우주가 한 점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과거에 우주는 매우 뜨거웠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1948년에 러시아 출신의 미국 물리학자인 가모브와 그의 제자 동료들은 우주의 시작 초기에 온도가 매우 높을 때 가벼운 원소들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1950년에 앨퍼와 허먼은 우주 초기에 있었던 뜨거운 빛이 우주가 팽창하면서 점점 식을 것이고, 오늘날 그 온도가 절대온도로 5도 정도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빛은 우주배경복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렇게 차가운 빛을 실제로 관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을 못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주는 뜨거운 한 점에서 시작하여 팽창하고 있다는 우주론에 대하여, 이 우주론에 반대하던 영국의 천재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인 호일은 1948년에 영국의 BBC 라디오 방송 강연에서 우주가 어떻게 대폭발(Big Bang)로 시작될 수 있겠는가라고 비꼬았다. 흥미롭게도 이 이론은 이후로 뜨거운 대폭발 이론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우주의 표준 모형으로 인정받고 있다.

정상 우주론의 등장

인간은 일반적으로 완전하고 대칭적인 것을 좋아한다. 우주의 모형을 세울 때도 우주의 물질 분포는 위치와 방향에 관계없이 모두 같다는(즉 위치와 방향에 대하여 대칭이라는) 가정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시간에 대해서는 어떤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즉 시간에 대하여도 대칭이라는) 가정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이 일찍이 택한 가정이다. 하지만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표된 후 마지막 가정은 사라지고 대폭발 이론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1948년에 호일, 골드, 본디 등 세 명의 영국 과학자들은 위의 마지막 가정을 바탕으로 하여 대폭발 이론에 맞서는 새로운 우주론을 제시하였다. 이른바 정상우주론이다 (또는 연속 창조론이라고 한다). 이 우주론에서는 우주의 시작도 끝도 없으면서도 우주의 팽창을 설명한다. 새로운 물질들이 소량(일년에 고층 빌딩의 부피에서 수소 원자 한 개 정도) 연속적으로 만들어지면서 그 압력으로 우주가 팽창하며, 시간이 지나도 우주의 평균 밀도와 온도는 변하지 않는다. 즉 우주에는 대폭발이 없었으며 우주의 밀도와 온도는 과거나 지금이나 언제나 일정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이론은 완전성을 모두 갖추었으므로 많은 관심을 받았으나 오래 살아남기는 어려웠다.

정상 우주론의 사망?

1965년에 미국의 전파천문학자 펜지아스와 윌슨은 매우 정밀한 전파망원경을 이용하여 우주 전체에서 나오는 매우 약하고 차가운 빛을 우연히 검출했는데, 이 것이 바로 가모브 등이 일찍이 예측했던 우주배경복사였다. 이 빛의 온도는 절대 온도가 약 3도로서 앨퍼와 허먼이 예측한 값과 매우 비슷했다. 이 관측 결과는 우주 초기에는 매우 뜨거웠고 우주가 팽창하면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업적으로 펜지아스와 윌슨은 1978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우주배경복사가 실제로 관측되면서 정상우주론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뜨거운 대폭발 이론이 더욱 지지를 받게되었다. 1994년에는 미국에서 발사한 우주배경복사 탐사선(COBE)으로 우주배경복사를 정밀 조사한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우주배경복사의 온도는 절대 온도로 2.728도이며, 하늘에서의 위치에 따라 온도가 매우 미세하게 (십만분의 1도) 변한다 (이는 온도 요동(fluctuation)이라고 불림). 이 미세한 온도 요동은 바로 물질의 밀도 변화와 직접적으로 나타내며, 이는 우주배경복사가 나올 당시에 이미 물질의 밀도 요동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밀도 요동은 후에 우주가 진화하면서 나타나는 거대한 천체들의 씨앗에 해당한다.

뜨거운 대폭발 이론을 지지하는 증거는 여러 가지가 더 있다. 그 중의 한 가지는 우주에서 관측되는 가벼운 원소의 양이다. 무거운 원소들은 대부분 별의 진화 과정 중에 별 내부에서 만들어지는데 반해, 가벼운 원소들은 우주 초기에 있었던 매우 뜨겁고 압력이 높은 상황이 아니면 만들어지기 어렵다. 현재까지 측정된 헬륨, 중소, 리튬 등의 가벼운 원소들의 양은 뜨거운 대폭발 이론에서 예측되는 값과 잘 일치함으로써 대폭발 이론을 지지한다. 그러나 맥아더가 남겼던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과 비슷하게, 정상 우주론의 명맥은 살아남아 1990년대 중반에 호일 등이 정상 우주론의 연장선에 있는 소폭발 이론(mini bang)을 제시하게 된다. 이 이론도 주장한 사람들 외에는 지지를 받지 못했다.

새로운 폭발 이론

1970년에 들어서면서 대폭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실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결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획기적인 이론을 1980년에 미국의 물리학자 구스가 제시하였는데 이른바 인플레이션 (초팽창)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가 시작한지 1초도 되지 않는 때에 매우 매우 짧은 시간에 걸쳐 우주가 급격히 팽창했고 그 후로 서서히 팽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판 뜨거운 대폭발 이론은 이 초팽창 이론을 포함하고 있다.

암흑 물질의 존재?

우주론이 계속 발전되면서도 여전히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은 암흑 물질이다. 암흑 물질은 우주의 진화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찍이 1933년에 스위스 태생의 미국 천문학자 쯔위키는 머리털 자리 은하단에 있는 은하들의 밝기와 속도 자료를 분석하여 이 은하단에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 빛을 내는 물질의 10배나 많다고 발표하였다. 이 때 보이지 않는 물질은 오래 동안 잃어버린 질량(missing mass)이라고 불렀으나 오늘날에는 암흑 물질(dark matter)이라고 부른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에 걸쳐 암흑 물질이 존재할 것이다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으나 이를 지지하는 관측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사람들은 암흑 물질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1978년에 미국의 천문학자 루빈과 그의 연구팀이 많은 나선 은하에 암흑 물질이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면서 사람들은 암흑 물질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루빈 등이 나선 은하의 회전 운동의 특성을 주제로 연구를 수행하였는데 결과적으로는 나선 은하의 회전 운동의 특성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암흑 물질의 존재를 지지하는 증거도 마련하게 되었다. 루빈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는 가모브였다. 루빈은 60년대에 퀘이사가 발견되면서 많은 천문학자들이 퀘이사 연구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 자신은 다른 천문학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은 분야를 택하여 꾸준히 연구를 수행하여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인물이다. 놀라운 사실은 암흑 물질이 우주의 여러 곳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우주에 매우 많은 양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우주의 90퍼센트 이상이 암흑 물질이라고 여겨졌었다. 그러나 암흑 물질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암흑 물질의 후보에 대하여 뜨거운 암흑 물질 이론과 차거운 암흑 물질 이론이 한 동안 논쟁을 했으나, 오늘날에는 뜨거운 암흑 물질 이론은 사라지고, 따뜻한 암흑 물질과 차거운 암흑 물질이 섞여 있을 것이라는 혼합 암흑 물질 이론이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암흑 물질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화려한 우주 상수의 귀환

1998년에는 관측 우주론에서 또 하나의 획기적인 관측 사실이 발표되었다. 멀리 있는 초신성 수십 개의 거리와 후퇴 속도를 분석한 결과 초신성들이 일정한 속도로 팽창하는 경우에 비하여 밝기가 약간 (0.25 등급) 어둡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이는 우주의 팽창이 가속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까지는 우주가 팽창하기는 하지만 팽창 속도가 일정히 유지되거나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관측 결과는 이와 반대였던 것이다. 우주를 이렇게 빠르게 가속 팽창시키지 위해서는 밀어내는 힘(척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철회했던 우주 상수가 우주 모형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척력을 행사하는 주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고 있으며, 단순히 암흑 에너지(dark energy)라고 부른다. 놀라운 사실은 우주의 70퍼센트 이상이 암흑 에너지로 이루어져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암흑 물질의 정체도 모르고 있는데, 이제 정체를 알 수 없는 암흑 에너지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우주론자들은 더욱 바빠지게 되었다.

오늘의 우주 모습

올해 (2003년) 2월 12일에는 우주배경복사 비등방성 관측탐사위성의 관측 결과가 발표되었다. WMAP(Wilkinson Microwave-background Anisotropy Probe)이라고 불리는 이 관측 위성은 우주배경복사의 비등방성 (방향에 따라 변하는 양상)을 자세히 관측하기 위해 미국이 1억 4천 5백만 달러를 들여서 1년 전에 발사한 위성이다. 이 관측 자료와 함께 다른 천체에 대한 관측 자료를 분석하면 우주의 여러 특성을 매우 정밀하게 조사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발표된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우주의 물질 분포는 거대한 비누 거품이 모여있는 것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3억 광년 보다 작은 규모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거대한 천체들이 존재하며, 이보다 큰 규모에서는 물질의 분포가 평균적으로 균일하며 등방적이다. 둘째,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이며 오차는 1퍼센트이다.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구상 성단의 나이는 약 120억 년이다. 세째, 별이 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대폭발이 시작된 지 2억 년 후이다. 네째, 우주배경복사는 대폭발이 시작된 지 38만년 후에 나온 것이다. 다섯째, 우주는 4퍼센트는 보통 물질로, 23퍼센트는 암흑 물질로, 나머지 73퍼센트는 암흑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여섯째, 우주의 허블 상수는 71 km/sec/Mpc이며 오차는 5퍼센트이다. 일곱째, 우주배경복사는 편광되어 있으며, 이는 인플레이션 이론을 지지한다. 이 결과들은 모두 현대판 뜨거운 대폭발 이론을 잘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

마치며-우주론의 미래

우주론은 논쟁 속에서 때로는 서서히 때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인간의 지혜와 기술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우주는 새로운 문제들을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1990년에 허블 우주망원경이 우주로 발사되기 전에는 우주론에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답을 조만간에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으나, 우주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제 십 년 안에 우주론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주론자들의 낙관적인 예측은 언제나 빗나갔다. 그러므로 우주는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상적인 논쟁 주제이다. 우주론 논쟁은 언제 끝날 것인가? 우주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피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