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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나] ‘과학’의 새로운 이해 - 김호

2008.04.03.

[자연과학과 나] ‘과학’의 새로운 이해 - 김호

1. 로봇 과학자

하고 싶은 일도 갖고 싶은 것도 많던 시절,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힘은 너무도 미약한 그때 나와 또래들은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어김없이 대통령 아니면 과학자라고 답했다.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수많은 어른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나의 부족함을 금방이라도 메워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대통령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과학자는 상상을 현실화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현대판 마법사로 여겨졌기에 나와 또래들에게 과학자로서의 미래는 판타지의 실현과도 같았다. 때문에 과학자야말로 진정한 어렸을 적 꿈이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과학자란 공상이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엄청난 위인이었던 것이다. 물론 어릴 적 과학과 기술은 전연 구분되지 않은 채 과학자는 로봇 태권브이로 상징되는 공학도를 의미하였다. 과학이란 단지 하이-테크놀로지의 이미지였으며, 조금 커서도 자연과학은 공학을 위한 기초학문이라는 생각 뿐이었다.

머리가 커지고 꿈과 현실을 구분할 줄 알게 되면서 과학자의 꿈은 어린 시절의 로망으로만 남게 되었다. 대학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 과학(물론 기술도)을 전공한 사람은 전무하였으며, 철학을 공부하신 아버님께서는 법학을 공부하거나 아니면 역사학을 선택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이셨다. 무언가 특별한 장점이 없던, 좋게 말해서 이것저것 두루 잘하는 편이지 나쁘게 말하면 특징이 드러나지 않았던 고등학교 시절, 법학을 공부해서 판검사가 되기를 바라셨던 아버지(특히 어머님)는 법학이 아니라면 철학이나 역사 등 인문학을 공부해 보라고 권하셨다. 평소에도 법철학에 대한 이야기는 늘 하셨던 편이었다. 평범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께서는 독서편력이 남달라서 항상 국가론이나 자유, 평등 등 법의 기초와 한국 역사상 권력의 정당성을 마련하는데 필요한 요건(후일 알았지만 그것은 주로 헤겔의 국가 이성과 이에 대한 마이네케 류의 국가 이념사를 소개한 일본 서적들을 통해 마련된 것이었다)들을 말씀하시고는 했다. 청소년기의 필자에게 아버지의 말씀은 무언가 굉장한 사상으로 다가왔고 그 무게감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였다. 과학과 기술보다는 철학과 역사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자연스럽게 대학에서의 전공은 역사학을 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80년대의 대학가는 역사학이 무엇인지 고민할만한 평온한 생활을 하용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진지한 사색과 탐구보다는 적극적인 판단과 실천을 요구하던 때였기에 말이다.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하지 못한 자책으로 방황하던 필자에게 어느 날 아버지는 한문 선생님을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셨다. 이에 필자는 한문 공부에만 매달리며 현실을 피해나갔다. 가치 판단의 혼란 속에서 힘겹게 대학을 보내고 한문을 공부한 덕에 대학원에 진학한 필자는 곧바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2. 근대 과학의 신화

바로 이때 ‘가치중립’적인 앎의 태도를 지향하던 ‘과학(주의)’은 매우 희망에 찬 메시아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하여 어릴 적 로봇으로 상징되던 과학은 20대 중후반에 비로소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학문적 태도로 이해될 수 있었다. 근대의 문화 현상으로 나타난 <과학주의>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계몽주의의 적자였던 과학주의는 일종의 근대의 상징이었다. 과학이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전지(全知)의 전제 위에서 과학은 수세기 동안 인간을 괴롭혔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음을 과시하는 듯 보였다. 이른바 꽁트로 대표되는 실증주의는 인간의 진보는 신화적 형식을 거쳐 형이상학적 형식으로 그리고 과학적(실증적) 형식으로 진보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이해할 수 없는 자연 현상들을 초자연적 원인들에 기대어 설명하던 인간은 형이상학적 형식을 빌어 최종 목적, 제일의 원리와 같은 보이지 않는 법칙들을 고안하여 현상들을 설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왕의 어떠한 가치와 전제로부터도 자유로운 과학적 방법으로 모든 현상을 자연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본 것이다. ‘사회’에 대한 설명 역시 물리학으로 환원될 수 있었다.

동시에 이러한 과학주의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거나 경험을 초월하는 영역의 궁극적 문제들 예컨대 신의 실존, 도덕의 기초, 역사의 의미 등에 대해 정답을 얻고자 하는 어떠한 물음도 대답될 수 없다고 보았다. 모든 실천적 행위들의 학문적 정당화는 불가능한 형이상학이거나 혹은 있다하더라고 그것은 윤리학적 요청에 불과할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가치와 편견에 가득한 우리의 일상[언어]은 과학의 이름으로 부정되기에 이르렀다. 과학(주의)에 대한 이러저러한 환상은 필자로 하여금 ‘과학사’의 문을 두드리게 하였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그러나 곧바로 서양과학사를 통해 진보하는 인간의 모습을 확인하게 되자, 한국사도 그 연장선상에서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식민주의 역사학에 의해 훼손된 민족 번영의 역사를 새로운 차원에서 서술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생겨났다. 진보와 실증, 이 두 가지는 과학(주의)가 제공하는 견고한 학문의 목적이며 수단이었다. 자생적 근대의 증거로서 자본주의 맹아를 찾는 것 만큼이나 근대 과학적 사고의 탄생을 확인하는 일은 과학사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테마였다. 이른바 실학으로 대표되는 진보와 실증의 정신은 근대과학의 핵심인 서양과학의 수입과 확산에 초점이 맞추어진 채 서술되곤 하였으며 이를 비판적으로 사고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3. 새로운 과학

그러나 본격적으로 과학사를 공부하면서 특히 과학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논의들(토마스 쿤을 알고 난 후의 충격으로 20세기 초 과학주의 대한 비판들- 베르그송, 딜타이, 후설, 하이데거 등을 동냥하기에 이르렀다)을 접하게 되면서, 필자는 과학을 또 한 번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한편으로는 20세기 근대과학을 비판하는 포스트모던 철학자들로부터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20세기 근대과학의 비판을 받았던 독일의 19세기 전통으로부터 말이다. 이제 과학은 일종의 패러다임이며, 아비투스(habitus)가 되었다. 그것은 여러 지식들 가운데 하나이며, 영원히 가설적인 성격을 띤 세계에 대한 이해의 수단임을 알게 된 것이다. 과학은 여전히 유보적이며, 유일한 앎이 되려고 할 때는 또 다른 지식의 형식에 호소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이는 가치와 사실의 분리를 전제한 근대의 과학주의가 근대 이전의 세계를 가치와 사실이 일치된 세계로 규정하면서 실은 또 다른 형이상학을 요청하였음을 파악하는 순간이었다. 이순간 필자는 또 한 번 과학의 정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제 과학은 우리가 세계와 맺는 방식을 표현하는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며, 따라서 과학은 철학인 동시에 미학이며 윤리학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제 필자의 숙제는 한국 과학의 역사를 <세계를 이해하려던 다양한 형식들>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언어를 정리하는 일로 확장하는 것이 되었다. 그것은 이(理), 기(氣), 심(心), 성(性), 정(情)의 개념정의로부터 시작하여 자연(自然), 당연(當然), 본연(本然)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천(天), 지(地), 우(宇), 주(宙), 동식물(動植物)에 이르는 모든 사물을 치지(致知)하는 작업이 되었다. 결국 이는 진(眞), 선(善), 미(美)를 모두 포괄하는 진학(眞學)이고 선학(善學)이며 미학(美學)이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한국과학사는 <진선미학(眞善美學)>이라는 통합적 관점으로 서술되어야 한다. 적어도 세상을 이해하는 모든 표현[언어]들을 과학의 역사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가치와 사실이 혼유된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방법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는 기왕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 바로 ‘과학’을 이해해 온 필자의 인식의 변화처럼 말이다. 언제나 열려 있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적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