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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읽기] 명왕성의 퇴출? - 이명균

2008.04.03.

[기사 읽기] 명왕성의 퇴출? - 이명균

2006년8월25일 전 세계의 대중매체들은 일제히 명왕성 퇴출에 관한 사건을 보도했다. 그 중 우리나라 일간지에 실린 기사 한 가지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명왕성 결국 퇴출… 행성지위 잃었다) 결국 명왕성은 태양계 행성 명단에서 ‘퇴출’됐다. 태양계 행성 수는 9개에서 8개로 줄었다. 세계의 천문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을 벌였으나 명왕성의 지위를 둘러싼 격렬한 토론은 그치지 않았고, 국제천문연맹(IAU) 은 ‘총회 표결’이라는 절차를 거쳐 다수결로 별의 지위를 결정 했다.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AU총회는 24일 태양계 행성의 범주에서 명왕성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IAU 산하 행성정의위원회가 내놓았던 방안 대신, 행성의 기준을 오히려 강화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면서 명왕성을 비롯해 그 위성인 카론과 소행성 세레스, 명왕성 외곽의 천체 2003UB313(일명 ‘제나’)는 행성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다. IAU는 수성부터 해왕성까지 8개 행성을 ‘고전행성’으로, 명왕성·카론·세레스·제나를 ‘왜행성(dwarf planet)’으로 재정의 했다. 태양계에서 가장 큰 소행성 세레스도 왜행성의 하나로 분류됐다. 1801년 이탈리아 천문학자 지오반니 피아치가 처음 관측한 세레스는 발견 이래 50여 년간 행성으로 불리다가 행성 자리를 빼앗겼었다. 세레스는 200여년 새 두 차례 비운을 맛본 셈이 됐다.』

이 기사의 주제인 명왕성 퇴출 문제는 역사적으로 오래 되었으며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 문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행성(planet)이라는 말은 ‘하늘에서 움직이는 별’이란 뜻이며 그동안 엄밀한 과학적 정의 없이 관습적으로 사용해왔다. 하늘에서 움직이는 별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중 태양계에 있는 큰 천체를 행성으로 여겨, 최근까지 태양계에는 9개의 행성(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9개의 행성 중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은 맨눈으로 쉽게 볼 수 있으므로 옛날부터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1609년에 인류 역사상 대사건이 일어났다. 망원경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로 사람들은 망원경을 사용하여 우주 속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행성들을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새로운 행성을 한 세기에 한 개씩 발견했다. 1781년에 독일/영국의 윌리엄 허셀이 천왕성을 발견했고, 1846년에 독일의 요한 갈레가 해왕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1930년에 미국의 클라이드 톰보가 아홉 번째 행성을 발견했다. 이 행성은 저승의 신인 명왕(冥王)의 이름을 따라 명왕성(영어로는 Pluto)으로 명명되었다. 1978년에는 이 명왕성의 위성이 발견되었는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뱃사공 이름을 따라 카론으로 명명되었다.

마지막으로 발견된 명왕성은 다른 행성들에 비하여 뚜렷하게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태양계에서 화성 궤도 밖에 있는 행성들은 지구보다 매우 큰데, 명왕성은 지름이 2300km로서 지구의 달보다도 작으며 질량은 지구의 1/500에 불과하다. 둘째, 화성과 명왕성 사이에 있는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표면이 기체로 덮힌 기체형 행성이지만, 명왕성은 지구와 같은 고체형 행성이다. 셋째, 명왕성의 공전궤도는 행성 중에서 가장 많이 일그러져 있으며, 궤도면이 태양이 지나가는 황도면에서 가장 크게 기울어져 있다. 따라서 명왕성이 태양을 한 바퀴 도는 250년 중 태양에 가까워지는 20년 동안은 해왕성의 궤도 안쪽으로 들어오게 되며 해왕성궤도 통과 천체의 전형적인 예로 여겨진다. 넷째, 명왕성은 상대적으로 매우 큰 위성을 가지고 있다. 명왕성의 유일한 위성(달)인 카론은 그 크기가 명왕성의 반이나 된다. 이 때문에 명왕성은 오랫동안 행성계의 이단아로 여겨져 왔다.

명왕성을 발견한 후에도 사람들은 열 번째 행성(영어로는 Planet X)을 찾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세기 후반에 더욱 크고 좋은 망원경이 만들어지고 관측 기술에 많은 발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열 번째 행성을 찾지 못한 채 21세기를 맞이했다. 21세기가 되자 명왕성보다 약간 작은 태양계의 천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2003년에 미국의 마이클 브라운 교수 연구진이 열 번째 행성 후보를 발견하고 2005년에 이 결과를 발표했다. 에리스라고 하는 이 천체(2003 UB313 또는 제나라고도 불리다가 2006년 9월에 에리스라는 공식 명칭을 받았음)는 명왕성보다 약간 더 크며, 명왕성보다 더 먼 거리에서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러므로 에리스는 행성의 대열에 끼일 만 했다.

이를 계기로 세계 천문학계에서는 행성의 정의를 검토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국제천문연맹은 이를 위한 행성정의위원회가 구성하였고, 이 위원회가 2년간 준비하여 행성의 정의를 결정하는 안을 만들었다. 이 위원회는 2006년 8월에 체코 의 아름다운 역사 도시 프라하에서 열린 제26차 국제천문연맹 총회에 이 안을 심의 안건으로 제출하였다. 이 총회는 3년에 한 번씩 열리며 이번 총회에는 75개국에서 2500명의 천문학자들이 참석하였다. 이 안을 따라 행성의 정의를 채택하게 되면, 제나, 명왕성의 큰 달인 카론, 태양계에서 가장 큰 소행성인 세레스 등 3개가 새로운 행성으로 추가되어 행성의 총 개수가 9개에서 12개로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2차에 걸친 천문학자들의 열띤 논의를 거쳐 이 안은 대폭 수정되었다.

2006년 8월 24일 새로운 행성 정의 안에 대한 표결이 있었다. 이 표결에 필자도 참가했다. 최종적으로 총회 표결에 부쳐진 안에는 행성의 새로운 정의가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정의에 따르면, 명왕성을 제외한 8개의 행성만이 행성이 되고, 명왕성은 행성이 아닌 왜소 행성(dwarf planet)이 된다. 두 번째는 행성의 정의를 약간 넓게 정하고, 그 속에 고전 행성(classical planet)과 왜소 행성을 각각 정의하는 것인데, 이에 따르면 명왕성은 행성이면서 왜소 행성에 속하는 것이 된다.

이 안건에 대한 토의와 표결은 영국의 여성 천문학자 벨-버넬(Bell-Burnell) 박사가 맡아서 매우 재미있게 진행하였다 (벨-버넬 박사는 대학원생 시절에 전파망원경으로 펄서(pulsar)라고 하는 신기한 깜박이별을 발견했는데, 후에 벨-버넬 박사의 지도 교수인 앤터니 휴이쉬 교수는 이 발견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았음). 행성 정의 안건에 대한 표결 결과 찬성 237표, 반대 157표, 기권 17표가 나와 첫 번째 정의가 포함된 안이 압도적인 찬성을 받아 채택되었다.

이번에 채택된 안에 따르면 태양계의 천체는 행성, 왜소 행성, 그리고 태양계 소천체 등 세 가지의 범주에 따라 정의한다. 우선 1) “행성”은 (a)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며, (b) 자체 중력이 강체력을 극복함으로써 유체역학적 평형의 모양(거의 둥근 모양)을 가질 정도로 충분한 질량을 가지며, (c) 그 공전 궤도 주변의 물질을 깨끗이 청소한 천체이다. 반면에 2) “왜소 행성(dwarf planet)”은 (a)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며, (b) 자체 중력이 강체력을 극복함으로써 유체역학적 평형의 모양(거의 둥근 모양)을 가질 정도로 충분한 질량을 가지며, (c) 그 공전 궤도 주변의 물질을 깨끗이 청소하지 않았고, (d) 위성이 아닌 천체이다. 3) 그 외에 태양 주위를 공전하며 위성이 아닌 모든 물체는 통틀어 “태양계 소천체” (Small Solar-System Bodies)라 한다.

위의 정의는 일반인에게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간단히 이야기하면 행성은 ‘무겁고 둥그런 태양계의 천체’를 말하고, 왜소 행성은 ‘둥근 천체이지만 충분히 무겁지 않으면서 위성(달)이 아닌 태양계의 천체’를 말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의에 따르면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등 8개는 그대로 행성으로 남아있고, 명왕성은 행성 대열에서 퇴출되어 왜소 행성에 속하게 되었다. 제나와 세레스도 왜소 행성에 속한다. 카론은 여전히 위성에 속한다. 위의 신문 기사 중 “수성부터 해왕성까지 8개 행성을 ‘고전행성’으로, 명왕성·카론·세레스·제나를 ‘왜행성(dwarf planet)’으로 재정의 했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명왕성을 행성 대열에서 빼고 왜소 행성으로 만들었지만 정작 명왕성은 이와 무관하게 변함없이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앞으로 왜소 행성은 계속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행성의 정의가 다시 바뀌지 않는 한 행성은 현재의 8개로 오래 오래 남게 될 것이다. 행성의 새로운 정의를 설명하는 영국의 천문학자 벨-버넬 박사. 파란 풍선은 기존의 큰 행성을 나타내고, ‘플루토’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 인형은 명왕성(영어로 Pluto)을 나타냄. 행성을 우산과 같이 폭 넓게 ‘고전행성’으로 정의할 경우 명왕성은 행성 대열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06년 8월 24일 ‘프라하의 연인’으로 유명한 체코의 프라하에 모인 세계 여러 나라의 천문학자들은 이 안을 채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