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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사회] 만능(萬能)의 허구: 복제줄기세포 이야기 - 노정혜

2008.04.03.

[과학과 사회] 만능(萬能)의 허구: 복제줄기세포 이야기 - 노정혜

작년 11월 12일 미국 피츠버그대학 섀튼교수의 공개적 결별선언으로 수면 위에 드러난 소위 황우석 줄기세포사건은 순식간에 엄청난 파장으로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뒤흔든 지진과 같았다. 아직 그 여진(餘震)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벌써 기억하기 싫은 사건으로 분류되어 휴지통에 보내진 메일같이 아스라한 에피소드가 되지 않았나 싶다. 가뜩이나 잊기 잘하는 우리의 속성에 잊어버리고 싶은 바램까지 합해져 더욱 빨리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진 충격과 절망감은 잊더라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되짚어 보며 엄청난 비용과 맞바꾼 교훈들을 건져 올려야 할 것 같다.

인간복제세포의 탄생

지구의 모든 생물은 한 개의 세포로 되어 있거나, 아니면 한 개의 세포로부터 유래한다. 사람의 몸은 대략 100조개가 넘는 세포로 되어 있지만 그 시작은 부모의 난자와 정자가 결합한 수정난세포 한 개로부터 유래한다. 발생의 비밀이 풀려가면서 금단의 열매처럼 조심스럽게 손대게 되는 영역이 복제된 사람을 (사람의 일부를) 수정란으로부터 발생시키는 일이다. 인류의 영원한 꿈인 불로장생을 도모하는데 그 쓸모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히 사람을 그런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금단이란 것이 상식이다. 다행히(?) 사람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에게는 그러한 제한이 적용되지 않았다. 양과 쥐부터 시작된 복제동물 리스트는 고양이, 돼지, 소, 말, 개 등 10여 종을 훨씬 넘어가고 있다. 손오공의 털(세포)에서 복제손오공이 만들어진 소설 속 이야기처럼, 몸의 보통세포(체세포)에서 복제된 카피 양(羊)이 영국에서 태어났을 때, 전 세계는 경악과 환호를 동시에 울렸다. 사람은 양과 같지 않아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함께 내놓았지만, 이것은 홍보용 멘트일 뿐 고삐 풀린 복제기술은 사람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았다.

복제를 하기 위해서는 난자를 다루는 탁월한 기술이 필요하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난자의 핵을 체세포 핵으로 바꿔치기(치환) 하는 기술은 고된 훈련을 거친 숙달된 조교의 세밀한 손놀림이 필수적이다. 거기에 더해 핵을 바꿔치기한 후에도 내상(內傷)을 입지 않고 제대로 세포분열을 할 수 있는 수정란을 얻어내려면, 희박한 성공확률을 극복할 만한 많은 수의 연습용(연구용) 난자가 필요하다. 가축의 복제기술이 세계적 수준인 우리나라에는 무수한 동물의 난자로 복제연습을 한 숙달된 조교들이 여럿 있었고, 시험관 아기를 잉태시키며 얻게 된 난자 조달과 수정란발생기술 또한 세계적 수준이었다. 2002년 겨울 우리나라는 이 요건들을 발판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 인간복제 줄기세포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참여정부를 대표할 과학기술이란 사명을 띠고 복제연구진의 활동이 본격화 되었다. 우리나라는 국가적 차원의 홍보와 대대적 지원으로 인간수정란복제를 시도한 첫 나라가 되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아픔을 무릅쓰고 난자를 제공하였고, 연구진은 숙달된 솜씨로 복제 수정란을 만들었다. 사람을 복제한다는 윤리적 비판에 대해 “우리의 목표는 인간복제가 아니고, 복제된 수정란으로부터 줄기세포만 얻어내고 나머지는 버린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하였다. 생식복제(reproductive cloning)가 아니고 치료용 복제(therapeutic cloning)라는 어려운 용어를 일반 대중에게까지 친절히 설명하며 여러 차례 윤리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연구진이 만들어 낸 복제수정란을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키면 시험관 아기를 만드는 방식과 똑같이 복제인간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은 구태여 얘기하지 않았다. 알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니까.

복제 줄기세포

숙달된 연구원들은 정말 성실하게 일했다. 밤낮도 없고 휴일도 없었다. 일사분란한 명령체계 속에 할당된 작업량을 충실하게 채웠다. 심지어 자기의 난자를 실험재료로 내놓으면서까지 체세포 핵치환을 하였고, 복제수정란은 순조롭게 잘 만들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줄기세포였다. 줄기세포는 복제수정란이 세포분열을 여러 번 거듭하여 만들어 내는 주머니 같은 구조물 (배반포)속에 담긴 세포덩어리를 잘 뽑아내어 키워야 한다. 그러면 이 줄기세포는 이름 그대로, 나무의 줄기(stem) 같이 여러 종류의 세포를 가지(branch)처럼 분화시킬 수 있는 만능(pluri-potent)의 역할을 발휘하여, 아픈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세포와 조직을 만들어 내게 된다. 줄기세포가 가져다 줄 황금가지들은 연구진을 들뜨게 하였고, 보스인 황박사는 마이다스의 손과 같은 황금 줄기세포를 꿈꾸고 홍보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러나 숙달된 연구원들이 진이 빠지도록 열심히 일하여도 줄기세포는 잘 얻어지지 않았다. 보스는 최정예(最精銳) 연구원 한 둘만 데리고, 겹겹이 통제된 실험실 가장 안쪽에 있는 줄기세포 배양실의 배양접시를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알현하였다. 출타중일 때에도 현미경 사진을 전송해 매일 대면할 정도였다. 그러나 세포분열을 거듭할 수 있는 줄기細胞株는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줄기세포 덩어리처럼 보이는 세포주 덩어리가 관찰되었다. 너무나 틀림없는 세포주였다. 틀릴 리가 없는 줄기세포주였다. 보기에 틀림없었다. 흥분한 보스와 연구진은 인간의 복제줄기세포가 드디어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과학계에 입증시키는데 필요한 각종 실험데이터들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2003년 6월 논문을 Science지에 투고하였고, 미국에 있는 멘토 Schatten박사의 조언에 따라 수정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12월에 게재승인을 받았다. 그리고는 2004년 3월 Science지에 인간복제줄기세포주를 드디어 만들었다는 논문이 출판되었다. 2003년 2월 초에 제공받은 난자로부터 체세포복제를 시도한지 1년만의 일이었다. 온 나라가 흥분하였고, 전 세계가 놀랐다. 그로부터 16개월 후 여러 명의 환자로부터 체세포를 얻어 핵을 치환시킨 환자맞춤형 복제줄기세포주를 11개나 만들었다는 논문이 다시 한 번 Science지에 발표되었고, 드디어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기술을 商用化하는데 거쳐야 할 대문들이 와르르 열렸다는 기쁜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이 기술 하나만 가져도 온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거란 꿈이 온 나라를 무차별적으로 뒤덮었고, 만능의 과학자 황박사에 대한 자랑과 사랑으로 대한민국은 행복했었다.

거짓의 발견

여러 갈래로 쪼개져 심란하게 괴로운 지역, 계층, 세대, 성별 등 온갖 갈등의 와중에 온 국민이 듣고 싶었던 복된 소리를 친근하고 힘있고 자랑스럽게 전해준 줄기세포연구팀의 개가는 그러나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연구진 내부와 외부에서 제기된 윤리와 진실성 문제가 화근이었다. 2004년 Science지에 논문이 발표된 직후에는 난자수급문제가, 2005년 논문이 출판된 직후에는 연구의 내용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 많은 난자를 어떻게 얻었는가’ 하는 문제는 Nature지의 기자와 한국생명윤리학회 등 연구진 외부에서 제기한 문제였고, ‘줄기세포주를 1개 만들기도 힘든데 1년 만에 11개나 만든 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연구진 내부에서 제기한 문제였다. 이 문제들은 연구책임자의 너무도 당당한 반발과 국보급 성과에 대한 국민적 사랑에 치여 문제 제기자들이 오히려 문제시되는 분위기 속에 묻혀 버리는 듯 했다. 그러나 문제를 추적하기 시작한 겁 없는 한 방송팀의 집요한 취재 중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섀튼이 2005년 11월 공개적 결별선언을 하게 되자 황우석 줄기세포주의 진실성은 공개적인 시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난자매매에 관한 의혹이 문화방송 PD수첩을 통해 전파를 타면서 그동안 그에게 희망을 걸었던 대다수의 국민들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과학의 심장부에 태극기를 꽂은 것으로 비유된 줄기세포 논문의 중대한 결함은 12월 5일 한 무명인(anonymous)이 생명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웹사이트 게시판에 데이터 사진의 중복조작을 고발한 것을 시작으로 국내외 과학네티즌들 사이에서 꼬리를 물고 발견되기 시작하였다. 이를 확인한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분야 교수들 29명이 12월 8일 정운찬 총장에게 논문의 의혹을 조사할 것을 연서로 건의하였고, 서울대학은 논문의 진위를 조사하는데 따를 심각한 부담과 어려움을 안고 12월 15일 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여론의 관심과 재촉 속에 정명희 위원장과 7명의 학내외 위원들은 26일간 강행군으로 조사를 진행하였고, 위원들 스스로도 기가 막힐 결론에 도달하였다. 인간복제 줄기세포주는 애당초 한 개도 만들어 지지 않았고, Science지의 논문들은 둘 다 철저한 조작이었다. 이 결론은 황박사 스스로 부하 연구원을 고소하면서 시작된 검찰의 독립된 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났다.

국익과 진실

국보급 보물이 사실은 날조된 모조품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난후, 사실 규명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여러 형태의 비난에 직면하였다. 그냥 묻어두었으면 국보급 보물로 남을 수 있었는데, 섣불리 파헤쳐 막대한 국익을 날려 보냈다는 것이 비난의 요지였다. 이 모든 파동의 주역이었던 전 청와대 보좌관이 최근까지도 황박사를 두둔하며 시간만 있었으면 줄기세포주를 만들 수 있었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은 그런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 이런 시각은 심지어 과학기술계의 일부 지도자급 인사들에게서도 발견된다. 거짓이 드러났을 때 진실을 밝힌 것이 과연 국익에 배치되는 것일까? 시간에 따라 손익계산이 달라지는 가변적 “국익”과 영구적 가치를 가진 “진실”을 과연 같은 차원에서 비교할 수 있는 것인가?

이 모든 파동의 원인을 다시 생각해 본다. 이 사건의 발단은 분명 열심과 추진력, 인적네트워크와 홍보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탁월했으나 과학적 진실성을 포기한 황박사의 잘못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나 단기적 성과를 극대화하여 열매를 포장하고 싶었던 정책입안자들은 맹목적 추진력으로 부실로켓에 강력엔진을 달아 주었다. 많은 언론은 세계무대에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드높여야 한다는 국민적 조바심을 자아내며 분위기를 만들었다. 과학적 내실이 결여된 동물복제전문가를 노벨상 후보자로 추천하고 지원한 과학기술계 지도자들의 단견도 연료에 일조를 하였다. 결국 바람 샌 풍선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어지럽게 떨어져 내려 버린 이 복제세포 해프닝은 어찌 보면 우리의 자존심을 엉망으로 구겨버린 애물단지일 수 있다. 추락한 로켓이 증발시킨 수백억 원의 연구비는 함께 날려버린 무수한 꿈과 기대에 비하면 오히려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희안한 사실은, 우리나라의 과학이 전혀 황우석파동의 악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복제를 안 해도 되는 줄기세포연구는 부지런히 진행되고 있으며, 동물복제연구도 황박사 없이 잘 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우리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정화(淨化)하였다는 긍정적 평가 속에 국제적으로 우리 과학계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 졌고, 포장보다 내용으로 인정받는 논문들이 지구적 과학공동체 안에서 그 영향력을 더 발휘하고 있다. 연구의 진실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연구자들 스스로를 점검하게 만들고, 혹시나 성과를 재촉하는 심리가 조작을 부축이지는 않을까 돌아보게 만든다. 연구의 진실성은 비단 이공계 실험실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고, 학부 학생들의 과제 리포트로 부터 인문사회계 모든 연구실의 보고서와 논문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 적용되는 금과옥조라는 것을 다시금 새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 경계하여 점검하지 않을 때 변조와 위조 그리고 표절은 언제나 우리주변에 스며있는 유혹이란 것과, 아무리 작은 부정이라도 발견 즉시 교정하는 수련을 게을리 하면 결과를 그르친다는 가르침은 비단 과학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직과 진실의 토대가 없는 그 어떤 행위가 값어치 있을 것인가? 진실하지 못한 행위의 열매로 ‘국익’을 이루려는 그 어떤 노력도 구멍 난 풍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만능줄기세포의 허무한 이야기가 우리를 두고두고 가르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