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안내

서울대 소식

뉴스

뉴스

과학이야기

[현대과학의 고전] 영원한 고전, ‘코스모스’ - 홍승수

2008.04.03.

[현대과학의 고전] 영원한 고전, ‘코스모스’ - 홍승수

칼 세이건이 떠난 지 11년이 됐지만 그의『코스모스』는 지금도 큰 울림으로 우리 곁에 살아있다. 칼은 놀라운 이야기꾼이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 과학의 난해한 개념들이 가슴으로 느껴진다. 세이건은 위대한 과학인이었다. 그는 과학의 가치를 실용의 잣대로 가늠하지 않았다. 선지자의 안목으로 인류 문명이 당면한 범지구적 재앙을 예견하고 대처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했기에 나는 칼 세이건을 과학자 대신 과학인이라 부르고 싶다.

『코스모스』의 탄생

이 책의 집필은, 같은 이름의 13부작 TV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제작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구상의 단초는 바이킹 계획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76년 여름으로 올라간다. 책은 TV에 비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복잡한 개념이 나올 때마다 독자가 그 부분을 반복해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책의 저자는 주어진 장(章)에 포함할 내용의 범위와 깊이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으나, 58분 30초로 규정된 TV 시리즈 한 회 분이 담아낼 범위와 깊이에는 한계가 있다. 한편 화상 자료는 TV 시리즈에서 따올 수 있었으니,『코스모스』는 TV 방영물 시리즈를 보완할 목적으로 집필한 책이었다.

당시의 시대상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폴로 달 탐사 계획이 끝나고 바이킹이 화성에 내려앉던 시기였다. 아폴로는 정치적 이유에서 날개를 접었지만, 지구인은 아폴로 계획에서 소중한 소득을 거둘 수 있었다. 파리한 모습의 지구를 지구 바깥에서 보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지구는 반석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 보호운동이 요원의 불길로 번지게 된 것이 아폴로가 가져다 준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고 믿는다. 여기에 더해서 미, 소의 군비 경쟁이 지구 생명의 멸절(滅絶)을 불러올 것이라는 조짐이 도처에서 우리를 짓누르고 있던 시기였다. 문제는 원자 폭탄만이 아니었다. 기계 문명의 무분별한 활동으로 인간이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생명의 멸절 가능성이 우리 자신을 포함한 지구 생명의 기원을 묻게 했다. 일반 대중들이 생명을 140억년 우주사의 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문명이 자초한 문제의 해결책도 마련될 것이라고 세이건은 확신했던 것이다. 대중의 가슴을 울리고 머리를 설득하여 지구 문명의 현실과 미래를 보여 주겠다는 야심 찬 의도에서 그는『코스모스』의 제작과 집필을 병행했던 것이다.

『코스모스』의 내용

세이건이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은, 우주와 생명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일반 대중에게 단순히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지구 문명의 미래를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고민하게 하는 데 있었다. 이 과정에서 천문학과 생물학의 지식이 지렛대의 구실은 하겠지만, 그것만으로 저술 목적을 모두 달성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세이건은, 과학 뿐 아니라 신화, 종교, 역사, 정치, 심리, 군사, 생태환경 등을 아우르는 방대하고 다양한 지식을 이 책에 총 동원했다.

각 장의 제목과 내용을 둘러보자: 저자는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독자가 경험할 우주 대 장정의 여정을 알려주면서, 우주여행의 추동력이 인간의 모험 정신에 있음을 강조한다. ‘우주 생명의 푸가’에서는 지구 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얘기하고,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는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에 의한 우주관의 대변혁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천국과 지옥’에서는 지구를 천국으로 만들지 금성 같은 지옥으로 만들지는 우리의 하기 나름이라고 수긍하게 된다.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는 바이킹이 보여준 화성의 생생한 모습과 함께 거기서 벌어지는 생명 탐사의 의의를 설명한다. ‘여행자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저자는 해양국 네덜란드에서 과학이 발달하게 된 연유를 화란 사람들의 모험심과 자유 시민 정신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밤하늘의 등뼈’로 건너와 희랍 문명이 과학 발달에 미친 영향과 업적을 칭송한다. 태양계를 벗어난 성간 여행을 준비하기 위하여 저자는 상대성 이론을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에서 소개한다. ‘별들의 삶과 죽음’은 생명 현상을 가능케 한 탄소의 출현이 핵융합 반응에서 비롯됐음을 알려 줌으로써, 독자의 눈을 인간과 우주의 깊은 연계에 돌리게 한다. ‘영원의 벼랑 끝’은 대폭발 우주론의 요약이다. ‘미래로 띄운 편지’에서는 유전자, 두뇌, 도서관에서 사이보그로의 진화를 얘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은하 대백과사전’에서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논증하고 그들을 찾으려는 노력의 당위성을 역설한다. 마지막 장인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는 전쟁 위험과 생태계 파괴로 신음하는 행성 지구의 현실을 보여주고, 지구의 미래를 위해 인류의 과학문명이 택할 길을 고뇌한다.

『코스모스』이후 30년

필자가「코스모스」를 번역하기 시작한 게 2000년 겨울이었으니, 초판이 나온 지 20년 후였다. 그렇지만 세이건 인용한 천문학적 지식 중에서 우주론의 일부를 제외하면 수정할 내용이 거의 없었다. 그의 예견은 그만큼 확실한 과학에 근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이건이 기독교의 비합리성을 이 책에서 맹렬히 공격했으니, 「코스모스」에 대한 기독교계의 반응은 우호적일 수 없다. 그러나 과학계는, SETI 계획을 단순한 소망의 차원에서 과학의 반열로 올려놓은 장본인이 바로 칼 세이건이라고 평가한다.

「코스모스」시리즈는 방영 당시 전 세계 인구의 약 3%에 해당하는 1억 4000만 명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된다. 이 책은 출간 이후에도 독자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왔으며, 그 사이에 등장한 DVD 판본까지 생각한다면 얼마나 많은 지구인들이 세이건의 사상적 세례를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결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군비 경쟁을 가속하던 냉전 체제가 이미 무너졌다. 모두가 지구의 온난화를 피부로 느끼면서 탄산가스 방출의 규제 필요성을 외치기 시작했다. 과학의 지평에선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화성에서 물의 흔적이 확인됐으며, 로봇 소대가 화성에 활보할 날도 멀지 않았다. 그리고 목성형 행성을 거느린 별들이 현재 235개 정도 발견됐다. 외계 행성 체의 존재는 이미 예측의 대상이 아니다. 지구형 행성이 발견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외계 행성 체들에서 생명 현상의 징후를 보게 되는 날 지구인들이 겪을 사고의 지각 변화로, 우리 곁에 ‘칼 세이건’은 다시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