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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나] 과학소년의 꿈 - 변창률

2008.04.03.

[자연과학과 나] 과학소년의 꿈 - 변창률

나도 어렸을 적 꿈은 다른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 때 기억으로 부모님께서 사주신 책 중에서 제일 흥미 있게 읽었던 책은 「재미있는 자연이야기」라는 6권짜리 자연과학 시리즈였다. 6권으로 된 것은 초등학교 1학년에서 6학년에 이르는 난이도를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 중에서 아직까지도 생각나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5권 또는 6권인가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우주선을 빛의 속도로 타고 가는 우주인들에 관한 것이었다. 우주선 속의 우주인들은 우주선의 속도가 점차 빨라져 빛의 속도에 다다를수록 이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갑자기 우주인들이 어린이가 되어가는 것이었다. 어린애들처럼 깔깔 거리며 장난을 치다가 기기 조작을 잘못하여 더욱 속도가 빨라지는 우주선은 우주 깊숙한 어느 곳인가로 흘러가 버릴 뻔 한다. 그 우주선의 임무는 새로 개발된 광속 우주선이 시험 비행만 하면 우주에서 실종되는데 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깔깔 거리며 우주선의 버튼들을 마구 눌러대던 우주인 중 하나가 우연히 속도가 늦어지는 레버를 작동시키자 우주선의 속도는 떨어진다. 어린애들처럼 장난치며 놀던 우주인들이 다시 제 정신을 찾게 되고 시험비행 중 우주선 실종의 실마리를 풀게 된다는 줄거리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위 이야기는 당시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얼마나 인상 깊게 읽었으면, 42년 전 쯤 이야기가 오늘에도 생각이 날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대강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내가 위 이야기 구성의 과학적 개연성 혹은 이론적 뒷받침에 대해 설명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빛의 속도로 움직일 경우 우리의 시간은 점차 천천히 가게 되고 시간이 멈춘 후 종국에는 거꾸로 흐른다는 흥미로운 발상에 기초한 이야기였다. 아무튼 「재미있는 자연이야기」 시리즈는 「과학소년 변창률」의 꿈을 촉발시켰고, 오늘날 까지도 나는 그 꿈을 접지 못하였다. 「과학소년 변 某」라는 카피는 대학시절 연극반 선배 한 분이 쓰셨던 것을 이후 내가 계속 사용하고 있다. 「우주소년 아톰」을 연상시키는 「과학소년 ○○○」은 당시 연극반 김 某 선배가 조명기구와 음향기기를 잘 다루면서 주위에서 감탄을 연발하자 본인 왈 ‘내가 어릴 적부터 「과학소년 김○○」소리를 계속 들어 왔어’ 라고 응수를 한 것이 시초였다. 나 역시 아버지가 사주신 전축(오디오 기기를 1960년대에는 전축이라고 칭하였음)의 여러 단자를 외부 기기와 연결하여 요즘의 오디오 비디오 시스템을 갖춰보려고 꽤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집에서 기타 전기관련 도구, 기기를 만지는 것도 내 차지였다.

어린 시절 나에게 여름밤 하늘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곤 하였다. 마당에 놓인 평상에 누워서 여름밤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끝도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생각에 두려움에 휩싸이곤 하였다. 그 다음은 우주 공간에 대한 생각, 그리고 기독교의 유일신에 대한 생각 등 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시간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시간의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을 텐데, 아니 끝이 있을 수 없지, 그 다음에도 시간이 흘러갈 텐데. 내가 죽어서 땅에 묻히면 얼마나 오랜 세월을 그 속에서 답답하게 누워 있어야 될까? 태양이 수명을 다하거나, 지구가 깨져 버릴 때까지? 하지만 그래도 시간은 계속 흐를 텐데? 무서움이 앞선다. 그러면 남들처럼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을 믿을까? 죽은 후에도 천당에 가서 영생을 누릴 테니 지금 살면서 두려움 없이 행복하게 살 텐데. 아니야 이 넓은 우주에 우리 인간들 중 일부만 하나님을 믿고 있어, 만약 외계인들이 나타나서 우리와 대화할 수 있다면, 그들은 아마 유일신 따위에 대해 모를거야, 오히려 신의 존재란 것이 불필요한 생명체일지도 모르지. 그러한 미지의 생명체에게는 우리 인간에게 통상적인 모든 것들이 전혀 반대일지도 모르잖아? 뾰족한 것으로 찌른다든지, 날카로운 것으로 베어내는 것이 적대적이 것이 아니라 우호적이거나 심지어 사랑의 표시일지도 모르지. 그러니 신의 존재라는 것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존재일 뿐이야. 생각이 이쯤에 다다르면 우리가 발견하거나 발명하여 활용하는 것들이 이 세상의 모든 존재 속에서 극히 미미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크게 낙담하게 된다.

조금 더 커가면서도 과학소년의 꿈은 시들지 않고 영글어 갔다. 고속 열차가 정차하지 않고 달리면서 매 정거장 마다 내릴 사람 탄 열차 칸은 떨어뜨려 주고, 타는 사람 탄 열차 칸은 본 열차의 속도에 맞게 가속시킨 후 앞이나 뒷부분에 붙이는 방법은 없을까? 도로가 항상 자동차들로 붐비는데 차라리 움직이는 도로를 만들면 어떨까? 가는 방향 오는 방향별로 몇 단계의 무빙워크가 움직이게 되어 있는 가운데 1차로 쪽으로 갈수록 무빙워크가 시속 10킬로미터 정도씩 빨라진다면 인도에서 탈 때에 별 무리 없이 타고 가장 빠른 무빙워크로 옮겨 탈 경우 시속 40내지 50킬로미터로 움직일 수 있다면, 도심 내에 매연도 없고 자동차 사고 위험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도시가 움직이는데 필요한 전력은 어떻게 얻을까? 지구 위 정지궤도에 엄청나게 큰 태양전지판을 설치하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마이크로웨이브로 송전하여 쓸 수는 없을까? 「황의 법칙」에 따라 매년 집적도가 높아지는 반도체를 만드는데 있어서 회로를 평면에 그리는 것이 한계가 있다면 홀로그래피 기술 같은 것을 써서 입체물질에 그리는 방법은 없을까? 그 경우 그러한 반도체 물질은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이렇게 꿈 만 키우던 친구가 커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공무원이 되었다. 교육부에서 공무원을 시작한 과학소년 변 某는 국립대학교의 수업과장을 시작으로 사무국장까지, 초중등교육의 재정 확보를 담당하는 일에서 시작하여 교육청의 부교육감까지, 해외현장의 우리 교육문화를 전파하는 일에서 시작하여 OECD의 한국교육정책 검토 국제회의까지 수행하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꿈과 흥미를 잃어가는 듯하였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가장 바쁜 본부 과장 시절에 등록한 박사과정을 무난히 마치고 학위논문을 써야하는 절박한 순간이 다가왔다. 이미 과정을 마친지 2년이 흘러갈 때 쯤 천우신조의 기회가 찾아왔다. 1년간 가족과 함께 외국에 나가 마음대로 공부할 수 있는 국장급 해외연수를 가게 된 것이다. 연구의 주제는 2002년 말 당시 같이 근무하던 유능한 부하의 조언을 얻어 대학의 산학협력으로 잡았다. 미국에서 생활비가 가장 저렴한 곳 중 하나인 조지아 대학은 학위 논문 자료를 얻는데 있어서는 동부의 어느 유수한 대학에 못지않았다. 검색어는 university, industry, research, cooperation 또는 collaboration 등을 사용하면 80년대 초반부터 2003년 초 까지의 각종 논문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visiting scholar 자격의 외국 공무원에게 대학은 약간의 실비만 들이면 거의 완벽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1년여 수집한 자료를 요약하고 일부는 번역하여 카드화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나중에 돌아와서 보니 내가 읽은 자료들은 대개 연구정책, 학술진흥, 과학경영 등의 분야였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심리학과 행정학을 읽은 나에게 학위논문은 새로운 융합학문 분야에 눈을 뜨게 해준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무지몽매한 상태에서 본부의 학술진흥과장을 하였던 것이 아닌가?

요즈음 교육부 뿐 아니라 산자부, 과기부, 정통부 등 정부부처가 대학에 대한 R&D 지원액이 상당한 양에 이른다. 최소 2조에서 수 조원까지 분류 범주와 기준에 따라 그 숫자는 달라진다. 국가 전체적으로도 9조 내지 10조원에 이른다. 다만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자금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투입되어 최대한 효과를 창출할 수 있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좁게 보면 관계 공무원, 넓게 보면 과학기술계 내지 학계가 할 일이라고 보여 진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 중에도 정부지원 R&D 자금이 진정으로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믿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다른 어느 재정자금도 그러하겠지만, 대학에 대한 R&D 자금이야말로 국가경쟁력 제고를 통한 선진국 진입에 가장 절박한 돈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외부 심사위원회를 구성한다지만, 과연 사전에 항목을 정하고 항목별 배점 하에 심사하여 정한 지원금이 올바로 정해진 것일까? 온갖 절차를 거치고도 최종 결재 과정에서 정치적, 정책적 고려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을까? 타당성을 높이기 위해 연구주제를 미리 공모하고 당선된 주제들로 다시 공개경쟁을 통해 최종 연구 수행자를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과학소년의 꿈은 마침내 이 문제를 태클하는 곳에서 한참을 머물고 있다. 자기가 직접 연구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연구자들이 수행하는 연구를 도와주는 일을 보다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리라 판단한 것이다. 매우 이상적으로는 국가과학위원회를 학문(또는 중점연구)분야별 1명씩 정하여 약 100명 정도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CRO(Chief Research Officer : 최고연구자)라 칭하자. 각 학문분야를 대표하는 사람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는 그 분야의 연구자들끼리 합의해야 한다. CRO는 반드시 그 분야 최고과학자(노벨상 수상 후보자 등)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분야에 있어서 세계적 연구발전의 정도와 향후의 발전방향에 대한 통찰력의 소유자여야 할 것이다. 그들은 함께 모여 그 해의 주어진 R&D 총 재원을 가지고 분야별 배정을 함에 있어서도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전체가 모여 밤을 새워 토론하든지, 아니면 호선한 위원장 또는 분과위원장들로 하여금 집중토론토록 하든지는 그들에게 맡기자. 국민들은 TV를 통해 하루 종일 그들의 토론을 지켜보면 된다. 그리고 CRO가 연구비를 배정 집행함에 있어서 5~10%, 즉 연구비 1조원에 대해 500억 내지 1000억 원의 간접비용을 인정하자. 정부가 그들에게 충분한 시간과 자원,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가운데 국민들이 믿고 의지할 곳은 CRO들의 양심과 지혜일 것이다. 공무원들의 역할은? CRO들이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공정한 게임을 하는가를 지켜보는 엄정한 심판자의 역할을 하면 된다. 공무원들이 특정분야 과학기술의 지식은 없어도 게임의 규칙을 정하고 심판을 보는 지혜는 있다고 보여 진다. 그러한 공무원들이 선발되고 키워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오늘도 「과학소년 변창률의 꿈」은 계속된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할 것이고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 의지의 자유와 창의에 기초하는 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