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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읽기] “한국, 신종 세균 발견 2년 연속 세계 1위”:「동아일보」(2007년 3월21일자) 기사를 읽고 - 천종식

2008.04.03.

[기사 읽기] “한국, 신종 세균 발견 2년 연속 세계 1위”:「동아일보」(2007년 3월21일자) 기사를 읽고 - 천종식

과학기술부는 2007년 3월 21일에 우리나라가 신종新種 세균 발견 건수에서 2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과학자가 지난해 신종 세균 107종을 학계에 발표했다고 한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2006년에 발표된 547종의 신종 세균의 약 20%에 해당하는 수이며, 2위인 일본(61종, 11.1%), 3위인 미국(56종, 10.2%)과의 격차가 2배 가까이 되는 많은 수이다. 신종 세균을 자연계로부터 찾아서 연구하는 것은 미생물 분류학의 중요한 분야이다. 이러한 통계는 이 분야의 우리나라 연구진이 지난 2년 동안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한 연구 활동을 했음을 증명하는 자료이기도 한다. 다양한 과학영역 중에서 우리나라가 1위를 하는 분야가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세균분류학 분야에서는 세계 1등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럼 과연 지구상에 존재하는 세균의 종은 얼마나 될까? 세균은 온 지구를 뒤덮고 있다고 말해도 괜찮을 정도로 자연계에 널리 퍼져 있는데, 솔직히 그 정확한 종의 수를 아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다. 단지 수천만 종 이상은 족히 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17세기 네덜란드의 상인이었던 안토니 반 레벤후크(Antonie van Leeuwenhoek)가 최초로 세균을 발견한 후로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인간에게 알려져서 이름이 붙여진 세균은 불과 6천여 종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곤충의 종의 수만 약 80만종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세균학자들은 그동안 연구에 너무 게르은 것은 아니었을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알려진 세균의 종의 수가 터무니없이 적은 것은 세균의 신종을 찾기가 육안으로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다른 생물 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세균의 종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 동물이나 식물은 상호 교배가 가능하진 여부에 따라 종을 구분한다. 하지만 굳이 교배실험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인간과 침팬지가 다른 종임을 두 생물의 겉모양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균의 세계는 많이 다르다. 일단 세균에게는 성性이 존재하지 않기에 교배를 기준으로 종을 정의할 수 없다. 또한 대부분의 세균이 단세포이며 그 모양도 매우 단순해서 많은 미생물학자들이 세균의 종을 어떻게 정의할 지에 대해서 지난 백 년 동안 고민해 왔다. 일반적으로 종은 유전적으로 격리된 동일한 성질을 가진 생물체의 집합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유전적인 격리가 불가능한 세균은 종이라는 개념의 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최근에 분자생물학적 기술의 발전과 함께 유전적으로 비슷한 세균을 구분해내는 기술이 개발되어, 객관적인 세균의 종의 개념의 정립이 가능했다. 레리 웨인(L. Wayne) 등의 세균 분류학자 들은 1980년대부터 많은 자료를 조사해서 1987년에 세계 세균 분류학계가 인정하는 ‘세균의 종’의 기준을 마련했다. 기준이 되는 기술은 DNA-DNA 교잡법(hybridization)으로 시험관에서 두 생물체의 DNA를 교잡했을 때, 유전자가 상호 유사할수록 많이 붙게 되는 점을 이용했다. 현재 사용되는 기준은 세균A와 세균B가 같은 종이라면, DNA를 시험관속에서 교잡시켰을 때 서로 70%이상 붙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사람과 침팬지를 같은 방법으로 조사한다면, 두 DNA는 98% 이상이 붙는다. 미생물의 세계라면 사람,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은 모두 같은 종인 셈이다. 그만큼 세균의 종은 서로 유전적으로 상당히 상이한 개체를 묶은, 다소 완화된 종의 개념을 사용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종에 속하는 세균은 많이 다른 성질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인간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오히려 장내에서 비타민을 만들어 주는 유익한 대장균이 있는 가하면, 같은 대장균 중에도 O157이라고 불리는 종류는 치명적인 식중독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나라 학자들이 신종 세균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발견하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나라에만 유독 신종 세균이 가장 많이 산다고 오해하면 안 될 것이다. 왜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특별히 우리나라에만 신종 세균이 많다고 할 만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 흔히 미생물 생태학자들은 세균에 대해서 ‘Everything is everywhere, but, the environment selects’란 말을 많이 인용한다. 이 말은 세균은 국경도 없이 전 세계에 퍼져 살고 있으며, 그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적당한 환경을 만나면 번식한다는 말이다. 즉 우리나라 강화도 갯벌에 사는 세균은 멀리 독일의 갯벌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신종 세균을 가장 많이 발표한 이유는 대한민국이 신종의 보고라기보다는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가장 신종 찾는 연구를 열심히 한 덕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가 원래부터 세균분류학의 강국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학자들만의 힘으로 처음 신종 세균을 발표한 것이 1997년의 일이었고, 불과 9년만인 2005년에 신종 발표에 있어서 세계1위로 등극하였다. 과거에 세균분류학 분야의 강국이었던 미국, 일본은 이제 우리가 발표한 신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를 발표하고 있다. 한 학문분야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연구의 기본이 되는 인프라, 연구의 실질적인 수행을 위한 연구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고급 전문 연구 인력의 확보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학기술부의 지원으로 2002년에 미생물유전체활용기술사업단(https://www.microbe.re.kr/)이 출범하였고, 이 사업으로 인해 세균분류학 분야의 인프라와 연구 여건이 크게 향상된 것이 사실이다. 이 사업단의 목표중의 하나가 다양한 미생물 자원의 확보였고, 이는 새로운 세균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흔히 세균은 지저분한 존재이며 주로 병을 일으키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세균은 동시에 김치, 요구르트, 식초 같은 발효 식품이나 염료, 산업용 재료, 의약품, 에탄올 같은 에너지 자원의 생산에 사용되는 등, 인간에게 유용한 존재이다. 선진국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는 세균 보다 뛰어난 경제성을 가진 세균을 찾아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신종 세균에게는 그러한 특징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하나의 세균은 평균 2천개 정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신종 세균은 그 신규성에 따라 다르지만, 하나의 신종이 발견될 때마다 새로운 성질을 가진 유전자 2천개씩을 새로 확보하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종 세균을 모으는 작업을 ‘유전자은행’을 구축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차곡차곡 싸이고 있는 신종 미생물과 유전자 들은 여러 가지 경제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앞으로 그러한 가능성을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이 타진해 나갈 것이다. DNA 중합효소처럼 하나의 세균 유전자가 수천억 원의 새로운 시장을 열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균분류학 분야의 우리나라의 위상은 지난 수년간 크게 제고되었다. 신종세균은 반드시 학술 논문으로 발표되어야 하는데, 이 논문이 발표되고, 신종 세균이 국제적으로 공인되는 학술지가 바로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and Evolutionary Microbiology (IJSEM)이다. 올해 IJSEM의 편집위원회의는 바로 5월에 강원도 평창에서 열렸던 한국미생물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개최되었다. 독일, 미국, 영국 등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세균분류전문가로 구성된 편집위원 10명이 한국을 방문해서 국내 연구자와 학술교류의 기회를 가졌다. 국내 과학자들이 저명한 외국의 학자를 만나기 위해 해외 학술대회에 참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불과 10년 만에 세균분류학의 불모지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위치에 오른 것은 또 하나의 한강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지난 10년간 여러 학술대회에 참가하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 세균분류학의 미래는 참으로 밝다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 대게 50대 이상의 학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것에 비해서 국내의 경우 연륜이 짧은 대신에, 우리는 30 또는 40대의 젊은 세균분류학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많은 20대의 신진인력들이 실험실에서 새로운 세균을 찾기 위해 비지땀을 흐리고 있다. 젊은 학문의 후속 세대가 굳건히 버티고 있는 한, 우리에게 붙은 ‘신종 세균 발굴 1위’라는 명예는 당분간은 계속 유지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의 연구가 질보다는 양에 너무 치우쳤다는 해외의 비판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새로운 생명체를 찾는 것은 다윈 시절부터 이어져 온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세균 자원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같이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