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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과학은 예술이다: 우리가 몰랐던 과학과 과학자의 실상』보리스 카스텔 외, 이철우 옮김 - 하대청

2008.04.03.

[서평]『과학은 예술이다: 우리가 몰랐던 과학과 과학자의 실상』
보리스 카스텔 외, 이철우 옮김 - 하대청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띈 점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두 저자의 이력이다. 캐나다 퀸즈대학의 교수들이라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한 사람은 물리학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STS(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과학기술학) 연구를 전공한 철학자이다. 1990년대에 영미권에서 ‘과학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열띤 논쟁이 벌어졌을 때 논쟁의 대표적인 양 진영이 바로 이 물리학자들와 STS 연구자들이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들은 직접 논쟁에 참여한 당사자들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서 ‘전쟁 이후’의 상황을 한번 추측해 볼 수 있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들은 과학자들에 대한 오랜 편견 두 가지를 문제 삼는다. 첫째, 과학자들은 컴퓨터라서 논리적 연역에 따라 작업한다. 둘째, 과학자들은 천재라서 보통 사람들은 넘볼 수 없는 통찰력과 직관을 가지고 작업한다. 첫 번째 편견에서 확대된 과학자의 모습은 이른바 ‘박사님’이다. 어린이 TV프로에서 SF 영화까지 모르는 것이 있을 때면 언제든지 나타나는 하얀 가운의 ‘박사님.’ 이들은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준비하고 있거나 아니면 순식간에 모든 걸 계산해낸다. 두 번째 편견에서 나온 과학자의 이미지는 산발한 헤어스타일에 왠지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아인슈타인들’이다. 이들은 주식 투자하고 쇼핑하기 보다는 우주의 비밀과 생명의 신비를 탐구하는 데 더 열중하는 순수한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과학자들은 컴퓨터도 아니고 천재도 아니라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라거나 과학자들의 순수한 이상 뒤에는 사실 사기와 음모, 배신이 숨겨져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과학자들의 에세이나 과학사학자, STS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물을 폭넓게 참조하여 과학자와 과학자의 작업을 좀 더 현실에 맞게 묘사하려고 한다. 그 결론은 과학적 작업이라고 하는 것은 컴퓨터의 계산도 아니고 천재의 영감도 아니라 예술가의 인내와 노력이 담긴 일종의 기술이다. 그래서 진화론의 발달사에서 보듯 과학자는 계산과 논리보다는 유비적 추론에 따라 작업한다. 또 20세기 초의 양자역학의 변천사에서처럼 과학자들의 표현 방식은 예술가의 기법과 유사하다. 두 방식 모두 과감한 혁신을 요구하지만 어떤 논리적 추론을 거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은 자연을 표현하지만 실재를 관찰하고 그대로 모사하는 것은 아니다. 실험실이든 야외 연구이든 실재를 과감하게 단순화하고 새로운 대상을 인공적으로 창조해야 한다.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1965년 플로리다 근해의 작은 섬들을 ‘훈증’해서 모든 곤충들을 박멸하고 재군집화 과정을 실험했다. 실험실(laboratory)의 어원이 노동(labor)에서 왔듯이 실험의 과정에는 예술가의 솜씨처럼 상당한 노동과 숙련, 기술들이 요구된다. 과학적인 지식은 언제든지 논쟁에 휘말릴 수 있고 그 논쟁도 항상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실 과학자 집단이 더 이상 논쟁할 필요가 없다고 서로가 합의할 때 비로소 종결된다. 그래서 과학의 객관성을 뒷받침하는 것은 항상 과학자들 등 뒤에 있다고 생각되는 자연이 아니라 과학자 집단인 것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오늘날의 예술가들이 다락방에서 나와 비즈니스에 열중하듯이 과학자의 연구 활동도 항상 비즈니스를 요구한다. 과학자들은 연구보고서를 써서 자신들의 연구를 정당화해야 하고 연구비를 지원하도록 기업이나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자본의 이익이나 국가의 이해에서 과학이 벗어날 수 없다고 해서 과학이 ‘과학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최근 들어 상업적인 과학이 증가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기초과학 연구가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은 이 책을 함께 쓴 핵물리학자의 의도를 짐작케 한다. 그는 일부 물리학자들의 ‘근본주의적’ 환원주의가 매우 못마땅하다. 최종 이론(final theory)이니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니 하는 근본주의적 주장들은 모두 다원적인 과학의 자율성을 무시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과학적 이론이 자연에 실재한다고 믿게 만들며 또 과학이 얼마나 인간적인 활동인지 보여주지 않고 신화를 재생산한다. 이런 근본주의자들과 싸움하는 과학자들에게는 STS학자들이 도움이 될 듯하다. STS 학자들은 그동안 과학지식이나 과학적 활동이 가진 사회적 성격을 계속 드러내면서 과학의 합리성 신화에 도전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실 제목처럼 과학이 예술과 닮은 점을 흥미롭게 잘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다. 저자들은 그 보다는 쏟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이런 편견을 바로잡는데 과학자와 STS학자가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사실 이 합의점은 일관되고 논리적으로 잘 정리된 모습은 아니다. 저자들은 과학 지식이 과학자 집단의 사회적인 결정에 의존하고 또 이들 과학자들의 활동이 순수하지도 않다 면서도 어떻게 “현실 세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수준의 객관성을 갖고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해내지는 못한다. 아무래도 이것이 두 학자의 입장들이 서로 절충될 수 있는 최종적인 지점인 듯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렇게 좀 모순되더라도 건설적인 시도가 일관되면서 소모적인 논쟁 보다는 낫다. 에머슨의 말처럼, “어리석은 일관성은 소심한 바보나 할 짓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