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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찬 교수의 '한국의 문화유산'

2008.04.04.

이상찬교수의 한국의문화유산

이상찬교수의 한국의문화유산문화재 보존의 현실

가끔 외국에 나가보면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별로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 문화 유산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문화재 보존, 나아가 관광산업에 신경 쓰지 않아서 그렇다며 정부를 탓하기도 하고 아니면 한국은 역시 서구를 못 따라간다며 자조하기도 하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근대는 우리에게 잊고 싶은 시대, 지워버리고 싶은 모습이었다.

개화기와 일제 식민기의 굴욕,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민족의 수난, 갈등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문화유산들이 지금도 제대로 문화유산 으로 지정받지 못하거나 지정받았더라도 사실상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우리들 중 수학여행 갔던 곳들을 제외하면 실제로 우리 문화유산을 일부러 찾아가서 관심 있게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양한 문화유산 답사

이상찬 교수의 교양강좌인 ‘한국의 문화유산’은 바로 이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수업이다. 이 수업의 목표는 단순한 견학이 아니라 문화유산들을 현장에서 보면서 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나아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보는 시각을 넓히고 문화유산의 현재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답사지역은 매 학기마다 다르게 짜이는데, 이번 학기에는 1주차에 종묘와 창경궁, 2주차에 대학로, 3주차는 덕수궁, 4주차는 서대문 독립공원, 5주차는 북한산, 6주차는 김제, 7주차는 인천을 답사하는 것으로 일정이 짜여 있다. 이 중에는 이름만 들어서는 문화유산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느낌이 잘 오지 않는 곳도 있다. 지금은 대학로 하면 연극이나 유흥주점이 생각나지만, 관악캠퍼스로 옮겨오기 전에는 서울대 문리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 시절 서울대와 서울대생의 모습이 어땠는지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경성제국대학이 있던 곳이다 보니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다.

북한산의 경우에도 얼핏 생각하기에 문화유산이 뭐가 있을까 싶은데 북한산성은 물론이고 여러 유서 깊은 사찰과 함께 조선시대 숙종 때 전란에 대비하여 임금이 대피하기 위해 세웠다는 행궁 터, 신라 때 세웠다는 진흥왕 순수비 등이 눈길을 끈다. 이 외에도 비교적 가까이 있으면서도 우리가 잘 모르던 ‘숨어 있는 1인치’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주체적인 답사 체험의 생생함

이 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현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일반적인 역사수업에서 얻을 수 없는 생생한 경험을 하게 된다.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역사가 눈앞에서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학생들의 반응도 뜨겁다. 학생들이 현장답사를 다녀온 후 인터넷 수업게시판에 올린 소감 중에는 “저를 답사홀릭(?)으로 만들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가슴이 뛸 정도로 아름다운 곳들이 많다는 사실이 너무 큰 감동이었다”는 글들이 쉽게 눈에 띈다.

야외수업 외에도 이 수업의 또 다른 특징은 수업을 진행하는 주체가 학생들이라는 점이다. 학생들은 매학기 초에 지정된 지역 중에서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던 지역을 선택하고 같은 지역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끼리 팀을 이룬다. 일단 팀이 구성되면 각 지역에 대한 사전조사를 하면서 어떤 문화유산들을 중점적으로 설명할지 의논한 다음 현장을 직접 방문한다. 보통 3~4번 정도 방문해서 답사대상을 직접 확인한 후 구체적인 답사 진행계획을 짜게 된다.

이런 준비과정이 끝나면 답사보고서를 작성해서 다른 학생들이 수업에 오기 전에 미리 읽어볼 수 있게 수업게시판에 올려놓고 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수업을 진행한다. 선생님께서 학생들이 설명한 내용 중 누락되거나 불충분한 부분들을 지적하거나 보완해서 설명하는 것 외에는 매주 발표를 맡은 학생들이 주로 진행하게 된다.

문화유산에 대한 입체적 시각

이 수업은 문화유산을 대할 때 단편적인 지식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시각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서대문 형무소는 흔히들 무수히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문당하다 살해당한 곳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된 죄수들 중 독립운동가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는, 즉 일반인의 비율이 훨씬 높았음을 알게 되면 보다 균형있는 시각을 갖출 수 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문화유산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갖게 된다. 수업시간에 다뤄진 내용 중 서대문 형무소의 담벽을 민족혼을 되살리겠다는 명목으로 헐어냈지만 그렇게 허문 벽돌이 실제로는 강원도 펜션들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일제시기의 잔재라며 서울시청 건물을 철거하겠다고 하면서도 진정한 일제청산은 하지도 못했다는 비판도 음미해볼 만한 내용이었다.

수강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토요일 수업시간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평균 4시간이 소요되고 서울 밖으로 나가는 일부 수업은 거의 하루가 꼬박 걸리는 경우도 있다. 2학점 강의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긴 시간이긴 하지만 이를 고려해서 이번 학기의 경우 7번만 수업하기 때문에 실제 시간부담은 그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수강생 중에는 커플들이 꽤 있다. 수업도 듣고 동시에 데이트도 하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그리고 강의실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주중에는 과제다 뭐다 해서 정신없다가도 토요일마다 한 번씩 야외수업을 하고 돌아오면 활력이 생긴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또 한 가지 특징은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 학생들도 눈에 많이 띈다는 점이다. 이번 학기에도 일본, 러시아, 파키스탄 등에서 온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는데 ‘대충 안다고 생각하는’ 한국 학생들보다 더 열의를 보이기도 한다.

열린지성 발췌
기초교육원 소식 6호 / 2006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