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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 온 소크라테스

2008.10.02.

이번 학기에는 서울대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외국인 교수들이 전임교수로 임용되어 강의를 시작했다. 그들의 연구실을 차례로 엿보기로 한다.

이번 학기 임용된 교수 중에는 인문 사회과학 분야 교수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점이 눈에 띈다. 서구 분석철학으로 불교를 연구하는 마크 시더리츠 교수(철학과)와 고려 불교를 전공한 한국학 연구가 셈 베르메르스 교수(종교학과)를 소개한다.

서울대에 온 소크라테스
신임 외국인 교수 인터뷰 (1) 철학과 마크 시더리츠 교수

철학과 마크 시더리츠 교수- 철학적 문제에 대한 문답식 토론으로 2시간 강의 채워
- 학생들,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수업이다”

“이 사각 얼음이 물이 되면 얼음은 존재하는 것일까 사라진 것일까? 난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어나서 증명해봐.”
자신의 수업이"까다롭다"고 말하는 마크 시더리츠 교수는 ‘철학의 이해’를 수강하는 학부생들을 첫 수업부터 바짝 긴장시켰다.

“얼음을 구성하고 있는 에너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니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학생이 용감하게 현대 물리학의 개념을 접목시켜 대답했다.
“에너지는 순간순간 이동하는 것인데 에너지를 물질과 동일시 할 수 있을까?”
수업은 곧 무한한 변화와 존재의 영속성에 대한 ‘시끄러운’ 논쟁으로 이어졌다.

채식주의자의 해맑은 얼굴을 한 시더리츠 교수에게서 ‘착한 수업’을 기대했던 학생들은 집요한 논쟁에 말려들었고, 그 가운데 영어가 유창하든 아니든 침묵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시더리츠 교수의 전공인 소승불교의 ‘색즉시공’ 논쟁이 재현되었지만, 그는 1000년의 논쟁사를 설명해 주는 식의 강의는 전혀 하지 않았다. 오로지 학생들의 토론과정에서 도발적인 질문을 추가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는 이것을 ‘뇌근육 운동’ 이라고 불렀다.

창의성 없다는 핀잔을 글로벌하게 받고 있는 서울대 학생들이 그가 가르치던 일리노이 주립대 학생들에 비해 토론능력이 떨어지지 않는지 물어보았다.

“제가 보기에 한국 학생들은 특별히 뇌 근육 단련이 잘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수업 때 나왔던 창의적인 답변들을 뇌 근육 발달의 증거로 제시했다.
“한국에선 모든 일이 급속하게 이뤄집니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 남자면 개인은 엄청나게 긴장하고 살 수 밖에 없어요. 일상에서 뇌 근육을 많이 사용해서 철학자나 수학자 수준으로 발달된 것 같다는 게 제 추측입니다.”

시더리츠 교수의 수업은 언어 능력 발달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원래 영어가 그리 유창하지는 못했다는 한 공대 여학생은 “수업시간에 열을 내며 토론하다가 문득, ‘내가 이렇게 영어를 잘했었나’ 하고 놀란 적이 있어요. 영어 회화 시간에는 일상적인 말도 버벅거렸지만, 토론에서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니까 책에서 읽었던 표현들이 막 튀어 나왔어요. 물론 한국식 발음은 그대로지만요.(하하).”

마크 시더리츠 교수는 일리노이 주립대의 정년이 끝난 후 두 세 군데 미국 대학에서 제의를 받았다. 잘나가던 그가 왜 연고도 없는 서울대에 와서 ‘대한민국 공무원’이 되었을까?
“김재권 교수에게 빚 갚으러 왔습니다.”
서울대 출신의 세계적인 철학자인 김재권 교수(브라운대, 73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에 서울대에 봉직해 그 빚을 갚겠다는 것이다.

일본처럼 동양철학을 경전학으로 따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내에서 서양철학의 방법론으로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퓨전 철학’이 가능하다는 점도 서울대를 선택한 다른 이유라고 한다.

그는 10월에 있을 두 가지 사건을 기다리며 가슴을 설레고 있다. 하나는 파리에서 따로 지내던 아내가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연구 파트너가 될 다음학기 대학원 지원자들을 만나는 것이다.

“외국어로 한국학을 하는 학자들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신임 외국인 교수 인터뷰 (2) 종교학과 셈 베르메르스 교수

종교학과 셈 베르메르스 교수“고려시대는 세계사에 비추어 보아도 불교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 탱화만 보아도, 불교 미술에서 그만큼 정교하고 화려한 그림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국제 학계에서 한국을 연구하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겁니다.”

한국말이 유창한 셈 베르메르스 교수는 중국학 연구가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히 진행되는데 비해 한국학 연구가 부진한 것에 진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는 벨기에 겐트 대학 동양학과 재학 시절, ‘동양’을 직접 보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가, 불교 성지인 구화산(九華山)이 알려지지 않은 신라고승에게 바쳐졌다는 것을 듣고 한국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불교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에 무척 놀랐다고 한다. 동양학의 대상이 중국과 일본에 국한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그 후 베르메르스 교수는 교환학생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말을 기초부터 배우면서 한국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약 10년 후 그는 고려 불교 연구로 런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을 가르치는 외국인 교수’가 되었다.

그는 외국어로 한국학을 하는 학자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구 학문의 관점과 방법론을 취할 때 그 만큼 다양한 연구성과가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학을 한다는 것은 ‘한류’같은 국가홍보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며, 기본 서적들을 영문화해서 서구에서 한국학을 접할 기회를 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너무 서두르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한국 정부는 너무 급하게 성과를 바라더군요.”

규장각 한국학 연구소 연구원을 겸하고 있는 그는 서울대의 규장각이 서양의 한국학 연구와 국내 연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 학기부터 첫 강의를 시작하는 그는 서울대에서 국제적인 한국학 연구가를 키워내겠다는 포부를 비쳤다.

런던대 재학시절 ‘대구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는 이 벨기에인 교수는 여섯살 아들을 한국사람으로 키우고 있다. 그는 영어, 네덜란드어, 중국어, 일본어에 유창하지만 아이의 1언어는 한국어다. 아이가 자라도 절대로 ‘기러기 아빠’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2008. 10. 2
서울대학교 홍보부 조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