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안내

서울대 소식

뉴스

뉴스

인터뷰

2020학술연구교육상(연구부문) 수상자 인터뷰 - 변영로 교수(제약학과)

2021.03.29.

서울대학교는 매해 창의적이고 활발한 연구활동을 통해 탁월한 연구 실적을 낸 교수 10명을 ‘서울대학교 학술연구교육상(연구부문)’ 수상자로 선정하고 있다. 올해의 수상자 중 한 명인 약학대학 제약학과 변영로 교수는 1세대 연구자로서 약물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약물전달시스템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가 우리나라에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개발한 신약을 기초에서 임상까지 연계하여 4건의 기술 이전을 달성하는 등 해당 분야의 사업화에 지대한 노력을 하였다. 그 학술적 성취를 인정받아 2017년 한국공학한림원, 2019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 선출되었으며 2017년부터 최상위 국제학술지 Biomaterials의 부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변영로 교수의 학술연구교육상 수상 소감을 들어보고 그의 연구에 대해 더 깊게 알아보고자 하였다.

2020 학술연구교육상(연구부문)을 수상한 변영로 교수(제약학과)
2020 학술연구교육상(연구부문)을 수상한 변영로 교수(제약학과)

변영로 교수님, 2020학년도 서울대학교 학술연구교육상 연구부문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작년까지는 서울대학교 학술상 수상자를 순서대로 단과대학을 선정한 후, 단과대학별로 수상자를 선정하였으나, 금년부터는 단과대학 상관없이 수상자를 선정하였다고 합니다. 약학대학은 타 단과대학에 비해 교수 숫자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이봉진 교수님에 이어 2020년에도 제가 약학대학 교수로서 연속 수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점은 약학대학의 연구 수준이 서울대학교 내에서도 우수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화학공학부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약학 쪽으로 박사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그리고 학계에 남게 되신 이유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학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였고, 석사과정에서는 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공학과에서 고분자와 바이오를 연계하는 연구를 구상하다가 생체재료를 이용한 약물전달시스템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홍릉 캠퍼스에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같은 기관으로 되어 있었고, 저는 KIST 고분자연구실의 공동지도를 받아 본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이후 이 연구는 KIST에서 최초의 국가연구과제로 진행되었으며, 저는 KIST 연구원으로 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약물전달시스템 프로젝트는 약물의 효능을 극대화하는 제제기술로서 그 당시 연구 대상은 약물을 피부로 투여하는 경피흡수제였습니다. 케토톱이나 키미테 등 피부에 부착하는 패치 제형을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연구였으며, 고혈압 및 항염증제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화학공학의 지식으로 생체재료나 약물 투과 기전 등에 대한 이해는 충분하였으나, 정작 약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였습니다. 저는 약물전달시스템이란 연구가 제가 평생 해 볼 만한 연구라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약학에 대한 지식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약학대학에 진학해서 박사학위를 하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사실 약학대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자 유학을 떠날 때는 제가 교수가 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제가 유학을 갈 때만 해도 전공을 바꾸면 일반적으로 취직이 어렵고 더욱이 대학교수가 되는 일이 굉장히 드물었기 때문에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약대로 유학을 가려고 할 때 주위에서 가지 말라고 하는 권유가 많았습니다. 제가 교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했었다면 절대로 전공을 바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저는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보다는 약물전달시스템 연구를 통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약물 제제 개발에 관심이 더 있었기 때문에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시간대학교 약학대학에서 박사후 과정을 하는 동안 저는 한국에 돌아가면 시작할 프로젝트 계획서를 나름 만들고 있었습니다. 2년이 지나 9개의 프로젝트 계획서를 만들었고, 국내 제약회사 취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계획한 신약 프로그램을 수행하기에는 아직 사정이 열악한 한국 제약회사보다는 대학교수라는 직업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박사과정을 했던 미국 유타대학교에서는 교수들의 벤처 창업이 굉장히 활발하였습니다. 대학 캠퍼스 옆에 대단지 연구시설 (Research Park)이 들어서 있었고, 특히 약학대학의 경우 상당수의 교수들이 이곳에 벤처기업을 창업하여 나와 있었습니다. 실험실에서의 아이디어가 실제로 제품화되어 사업화로 이어지는 현장에서 공부하면서, 연구라는 것이 단순히 논문 쓰고 학위 받는 방편이 아니라 환자를 치료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현실적이며 때로 긴박한 요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개발이 대학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 제가 대학으로 오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약물전달시스템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의 1세대 연구자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하고 계신 연구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설명과 이 연구가 갖는 의의나 중요성, 관련 활용성에 대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약물전달시스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입니다. 그전에는 신약개발이 약물 자체의 개발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제제 형태로는 환자의 유전적 차이나 약물의 효능 기전에 따른 최적의 투여 방법을 유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약효를 극대화하기 어려웠으며 독성도 문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약물전달시스템 연구는 약물의 효능을 극대화하고 독성을 최소화하는 최적의 제형을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두는 연구입니다. 현재 시판되고 있거나 연구되고 있는 대표적인 약물전달시스템은 항암제를 암 조직에 더 많이 전달하거나 암 조직에서만 활성화 되도록 하는 표적항암제, 체내 안정성이 낮은 유전자 치료제의 체내 안정성을 높이고 표적 세포에 특정하여 작용하도록 하는 유전자 전달제, 주사제 약물을 경구제로 전환하는 기술 등이 있습니다. 지금 세계적 관심이 되고 있는 코로나-19 mRNA 백신도 약물전달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유전자 치료제에 대한 연구가 1990년대에 본격화되면서 많은 치료용 유전자가 개발되었지만, 정작 이를 표적세포에 전달하는 방법이 없어 개발되고 있지 못했습니다. 치료용 mRNA 개발도 동일한 상황이었으나, 지질 나노 입자 (lipid nanoparticle) 란 약물전달시스템이 유전자 치료제에 적용되어 제품화가 이루어졌고 해당 약물전달시스템을 치료용 mRNA에도 탑재하면서 코로나-19 mRNA 백신도 개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수님만의 연구 과정과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연구 주제는 주로 어떻게 정하시는지 그리고 좋은 연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연구주제를 찾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룹 브레인스토밍 미팅입니다. 저의 연구분야는 약학, 의학, 화학, 생물학, 공학, 수의학 등 여러 분야의 기술이 필요한 대표적인 융합연구 분야입니다. 따라서 여러 분야 연구자들과의 공동연구가 매우 필요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연구주제를 찾는 첫 번째 과정으로 여러 의사들과 가능한 많은 미팅을 합니다. 미팅의 목표는 현재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의 한계성 및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논의하는 것입니다. 질병 치료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암이라 할지라도 어떤 암인지, 환자의 유전적 특성은 어떤지, 바이오마커 관련성 등 암 치료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매우 방대합니다.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해결방안을 설정하고 앞서 언급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각 부분별 미팅을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연구 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한 연구방향을 설정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관련된 연구자를 모아 연구그룹을 만들고 연구를 시작합니다.

어떤 것이 좋은 연구인지는 연구분야나 연구자의 연구철학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하는 연구는 환자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응용 및 개발연구입니다. 따라서 환자에게 실제로 적용될 수 없고 논문을 쓰기 위해 하는 연구는 저로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비록 연구과정에서 방향이 수차례 바뀌기도 하지만 환자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합니다. 연구결과가 환자에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연구 이후 개발 단계 (대량생산, CMC, 전임상시험, 임상시험 등)로 이어져야 하고, 이는 기업의 역할이지만 연구자가 개발까지 참여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연구이자 제 연구의 목표는 연구개발한 약으로 환자의 병이 낫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교수님이 이루신 많은 연구 업적 가운데 특히 보람 있었거나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제 연구목표는 제가 개발한 약으로 환자를 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의 연구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한참 남았습니다. 보통 기억에 남는 연구가 있다면 좋은 결과를 보였거나 훌륭한 저널에 실린 연구라고 할 텐데, 제 경우는 이보다는 가장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서울대학교로 부임하기 전에 광주과학기술원에서 교수직을 할 때였습니다. 귀국 후 몇 년 후에 제가 연구하던 항암제가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여러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모두가 5-6 페이지 넘게 자필로 쓴 편지였는데, 구구절절 가슴 아픈 사연이 들어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아내가, 또는 본인이 이제는 더 이상의 치료 방법이 없기에 제 약을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약은 아직 연구단계의 약이며, 환자가 쓰기 위해서는 앞으로 전임상, 임상시험 등을 거쳐야 한다는 너무나도 영혼 없는 건조한 편지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면 제게 전화를 해서 동물실험에 사용한 것도 좋으니 약을 달라고 간청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합니다’ 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연구단계인 약을 뉴스에 보도함으로써 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더했다는 저의 도의적 불찰에 대해 많은 반성을 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저의 연구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약제 과학 전문가로서 코로나 확산 및 치료에 대한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약학대학에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부분이 있나요?

제가 전염병이나 백신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전문가적 견해를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지난 1년간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에 나갈 수가 없어서 미국이나 유럽 연구자들과 비대면 화상회의를 자주 하였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그들은 실험실을 닫기도 하였고 학생들이 번갈아 가면서 실험실에 나와야 하는 기간도 있었기에 연구에 상당한 피해를 보았습니다. 반면, 코로나-19가 발병한 이후 이제까지 저희는 단 하루로 실험실을 닫은 날이 없어 그들이 무척이나 부러워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교내 방역에 노고를 아끼지 않은 모든 교직원분들과 방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준 학생들 덕분입니다.

국내 제약산업에 있어서 코로나-19 상황은 큰 기회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글로벌 제약업체보다는 한발 늦었지만, 국내 제약업체에서도 코로나-19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국내 제약산업은 타 산업보다 선진국에 크게 뒤져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신약개발이 극히 부진하며, 신약개발 인프라 역시 부족합니다. 특히 신약개발 성공사례가 적어 신약개발에 대한 노하우가 빈약한 것이 국내 제약산업의 국제 경쟁력이 낮은 이유일 것입니다. 이제까지 정부와 국내 제약업체들의 신약개발에 대한 의지와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여 전 세계적으로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적극적으로 임상시험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국가 간의 경쟁이 유발된 상황은 국내 신약개발에 대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향후 연구자, 교육자로서의 계획을 여쭙고 싶습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제 연구의 목표는 새로운 약물 전달 제제를 개발하여 환자 치료에 쓰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현재 국내 제약업체들과 공동으로 한 가지 약제에 대한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고, 두 가지 약물에 대한 전임상시험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또한, 세 가지 약물을 임상을 목표로 추가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정년퇴직이 5년 남았습니다. 제 연구가 사업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제 정년 이전에 제 연구가 임상 단계에 진입하여야 하므로 마음이 급합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인 서울대 학생들과 약학 분야의 후학들에게 따듯한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저와는 엄청난 세대 차이가 있음을 요즘 새삼 느낍니다. 그건 제 윗세대와 제 세대 사이에 있는 세대 차이와 마찬가지로 살아온 모든 환경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죠. 그래서 제가 후학들에게 섣불리 조언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각자의 삶의 목표에 따라서도 각자 하고자 하는 바가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든지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 궁극의 목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대 학생기자
김민주(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