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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의 불쏘시개를 만들다

2021.02.24.

대한민국에 서평지 서울리뷰오브북스(SRB)가 탄생했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단순히 서평만을 실은 서평지가 아니다. 불을 쉽게 옮겨붙게 하기 위해 먼저 태우는 불쏘시개처럼, 서울리뷰오브북스를 만든 편집위원들은 이 서평지가 우리 사회에 지적 대화의 불쏘시개가 되길 바랐다. 한 편의 서평은 누군가의 가슴속에 불을 지펴 한 권의 책을 생명체로 바꾸어버린다. 이를 시작으로 더 많은 지적 공동체가 형성되고, 이들은 깊이 있는 사회의 토대가 된다. 서울리뷰오브북스를 만든 편집위원들을 만나 우리 사회에 지적 대화가 필요한 이유를 물었다.

서울리뷰오브북스(SRB)(동양사학과 박훈 교수,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 건축학과 강예린 교수)
서울리뷰오브북스(SRB)(동양사학과 박훈 교수,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 건축학과 강예린 교수)

안녕하세요. 서울리뷰오브북스(SRB) 창간준비호(0호)의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기획을 결과물로 만들어 내신 교수님들께 소감을 여쭙습니다.

홍성욱: 정말 기뻤습니다. 앞으로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섭기도 했습니다. 강예린: 사실 신기한 게 제일 컸습니다. 제가 늘 하던 일과 너무 다른데 저질렀으니까 계속 잘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박훈: 저도 신기했다는 표현이 가장 맞는 답변인 것 같습니다. 정말 나왔구나, 하면서 신기했습니다. 교수님들의 언어로 서울리뷰오브북스를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지향점과 내용을 담은 서평지인지요. 홍성욱: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전문 서평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서평만 실리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책에 대해 논하는 잡지입니다. 강예린: 일종의 지도라고 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한 해에 책이 5만 종 정도 나온다고 하거든요. 우연히 좋은 책을 만난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라서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지도라고 생각합니다. 박훈: 인생이 지루하고 무의미하다고 느낄 때 사람이 연애도 하고 여행도 하지요. 인생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의 하나가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를 책과 데이트한다는 생각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뉴욕리뷰오브북스(NRB)와 런던리뷰오브북스(LRB)가 서울리뷰오브북스의 모태가 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에서만 볼 수 있는 강점으로 만들고 싶은 부분도 있을지 궁금합니다.

강예린: 상대적으로 어떤 게 강점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런던과 뉴욕을 서울과 비교했을 때 책 문화의 저변이 정말 다른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문화의 깊이가 얕아요. 그에 비해서 책은 또 많이 나오지요. 출판물로 따지자면 세계 7위를 기록할 정도로 책이 많이 나오는데, 문화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를 통해서 책에 궁금증을 갖기도 하고, 관련된 글을 써보기도 하면서 책과 관련한 여러 형식의 것을 해보는 태도를 기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의 텀블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2시간 만에 목표금액을 채웠고, 당일에만 후원된 금액이 3천만 원이었다고 하죠. 여러 출판사에서 만류한 것과 달리 서평지에 관심 있는 독자가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박훈: 오랜 시간 연구자로 살아와서 시장이나 대중과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서울리뷰오브북스의 텀블벅 과정을 직접 보면서 많은 용기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정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사실 독자의 호응이 가장 우려됐던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텀블벅 반응을 보고 난 후로 편집위원들도 용기를 많이 얻고 잘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긴장감도 얻는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서울리뷰오브북의 편집장님이신 홍성욱 교수님께서는 독서를 “고독하고 서늘할 정도의 개인적 침잠인 동시에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뜨겁게 손을 잡는 활동”이라고 말해주셨는데요.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홍성욱: 책을 읽는다는 건 굉장히 개인적인 행위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읽은 책을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갈망도 있지요. 요즘 책을 같이 읽는 모임이 잘 되는 까닭도 다른 사람과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고 관계 맺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가만히 보면 독서라는 게 혼자 책을 읽는 것 같지만, 마음속으로는 공동체를 키우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가 그런 공동체를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의 큰 지향점은 결국 ‘지적인 대화의 계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사회에 지적인 대화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박훈: 예전에 비하면 우리 사회가 각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전 세계 시민들에게 한국 사회가 더 큰 존경과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한류 문화도 그렇고 스포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일도, 경제성장도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최종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존경을 이끌어내는 것은 그 사회에 지적인 깊이가 있는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진전하기 위해서는 그런 지적인 깊이의 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다른 분야에 비해서 굉장히 미진합니다. 물론 저희 같은 사람들의 책임이지만, 서울리뷰오브북스를 매개로 우리 사회가 성장하고 나아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의 편집부에서 서평을 고르고 소개하는 기준도 궁금합니다. 어떤 기준이 있나요?

강예린: 아주 정확하게 정립은 안 되었습니다. 큰 기준이라고 한다면 저희가 읽고 싶은 분의 글을 싣는 것 같습니다. 제 정서로 이야기하자면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옛날 도서관’ 같이 느껴집니다. 초기 도서관은 글을 쓰고 새로운 책을 만들기 위해 기능했다고 생각해요. 그 도서관에 가야만 특정한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거죠. 저희가 도서관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희 플랫폼에서 저희가 읽고 싶은 글이 실리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작년 12월에 0호를 발간하셨는데요. 0호에 대한 독자의 피드백도 궁금합니다. 어떤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는지요.

박훈: 사실 모든 책이 그러하듯이 독자의 반응이 제일 민감하면서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0호가 나오자마자 편집위원 선생님들과 발견되는 리뷰를 전부 공유했습니다. 기억나는 리뷰가 있긴 한데, 활자화되기 어려운 수준의 악평이라서요. (웃음) 이후로 이어지는 리뷰에서는 다행히 좋은 평이 많았습니다. 물론 좋은 말만 해주는 주례사평 같은 리뷰도 있었지만, 상당한 지적 수준의 평이 많아서 저희도 개발되고 깨닫는 바가 많았습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의 기획부터 0호 창간, 창간호인 1호 준비까지 준비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홍성욱: 저희가 교수들이니까 책을 많이 내는데, 저희는 주로 출판사에 원고를 전하는 일을 합니다. 직접 책을 만들어보는 일은 없었지요. 제작 과정을 잘 모르고 있다가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서울리뷰오브북스를 제작했습니다. 책을 만드는 과정이 낯설고 힘들었지만, 또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 시간이었습니다.

여러 대학의 다양한 전공의 교수님들이 편집위원으로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양한 전공의 교수님들이 협력하면서 서평지를 만드시는 만큼 교수님들께 협력하는 자세를 여쭙습니다.

강예린: 서울리뷰오브북스를 함께 만들게 된 걸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연구보다는 디자인과 설계의 일이기 때문에 제가 읽는 책의 세계가 계속 좁아지고 있었습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를 만들면서 여러 전공 선생님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협력보다는 배움의 과정으로 느껴집니다. 박훈: 보통 세간에서는 교수끼리 만나면 자기주장만 해서 협력이 안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리뷰오브북스의 편집위원들은 어떻게 모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각자의 주장을 강하게 하면서도 매너를 잘 지킵니다. (웃음) 주로 온라인으로 소통하는데 격렬한 토론이 오가도 금방 협력적인 태도로 전환되는 걸 보면서 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훌륭한 분들을 모셨다고 생각합니다. 홍성욱: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오래 가진 게 도움이 됐습니다. 작년 초부터 모이기 시작해서 책의 방향에 대해서도 오래 토론했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를 많이 이해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의견이 갈려도 인간적인 대립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3월 발간 예정인 창간호 준비로 한창 바쁘실 것 같습니다. 0호에서는 ‘코로나19’를 주된 키워드로 삼으셨다면, 창간호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

홍성욱: 창간호에서 가장 중요하게 잡은 이슈는 ‘안전’입니다. 안전은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추구해야 하는 바이지만, 또 안전을 추구하기만 하면 많은 제약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이런 안전의 이중성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서평은 책을 읽고 싶게 만들고, 책을 심장이 뛰는 생명체로 바꾸어버리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앞으로 서울리뷰오브북스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홍성욱: 10년 동안 꾸준히 발행하는 게 저희의 소박한 계획입니다. 10년 동안 열심히 좋은 글을 담은 잡지를 내면 한국 사회에 작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요즘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쩌면 책을 가까이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된 것 같습니다. 책과 서평에 관해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박훈: 책은 사놓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학생들에게도 욕심내서 한 번에 읽으려고 하지 말고 일단 목차나 대강의 내용을 본 다음에 꽂아놓으라고 말해요. 그러려면 일단 사야겠죠. (웃음) 일단 꽂아 놓으면 다른 지적인 작업을 하거나 대화를 하다가 걸리는 부분이 생기면 그때 그 책을 집어서 읽는 거죠. 그럼 책에 더 흥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강예린: 원래도 서평을 좋아해서 자주 읽었는데요. 서평을 읽을 때마다 늘 깨닫는 게 서평을 읽으면 책을 읽고 싶어지는 연쇄가 일어나요. 서평이 주는 풍요로움을 느끼는 거예요. 그 풍요로움을 많은 사람이 느끼길 바랍니다. 홍성욱: 0호에 실린 김혼비 작가의 짧은 글에 “책에 머리를 꽉 맞아서 인생이 바뀐다”는 표현도 있는데요. 서울리뷰오브북스가 독자의 머리에 꽉 맞아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들의 삶을 조금 들었다 놓는 자리 이동 정도는 경험하게 하는 책이 됐으면 더 바랄 바가 없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