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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특별전시에 깃든 정조의 발자취를 따라서

2019.11.28.

11월 1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하 규장각)에서 창립 243주년을 기념하는 "인간 정조, 군주 정조: 어정(御定)‧명찬서(命撰書)로 본 정조의 삶과 이상" 특별 전시가 열렸다. 2017년 규장각 소장 책판 기획전 이후 2년 만에 열린 특별전으로, 조선의 22대 국왕 정조의 지휘하에 편찬된 어정서와 명찬서*를 바탕으로 정조의 인간적 면모와 학자 군주로서의 업적을 조명한다. 전시는 크게 "인간 정조", "군주 정조", "규장각과 정조의 사람들"의 3부로 기획되었다. 1부 "인간 정조"에서는 정조의 출생, 세손 시절 생활, 가족사 등 그의 인간적 면모를 조명하고, 2부 "군주 정조"를 통해서는 탕평책, 문화 정치, 법 정책 등 정조의 정치적 업적을 조명하며, 3부 "규장각과 정조의 사람들"은 정조와 함께 18세기 조선의 중흥기를 일구어낸 규장각 각신들을 조명한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내년 1월 18일까지 열리는, “인간 정조인간 정조, 군주 정조: 어정(御定)‧명찬서(命撰書)로 본 정조의 삶과 이상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내년 1월 18일까지 열리는, “인간 정조인간 정조, 군주 정조: 어정(御定)‧명찬서(命撰書)로 본 정조의 삶과 이상" 특별 전시/ 홍보팀 제공

인간적인 아픔을 극복하고 조선의 국왕이 되다

조선의 22대 국왕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를 계승하여 탕평*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규장각을 통해 많은 학자를 양성하여 조선의 학문과 문예의 부흥을 이루었다. 하지만 정조가 이룬 정치적·문화적 업적의 이면에는 한 인간으로서 겪었던 많은 시련이 있었다. 정조는 11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고, 그 이후에는 정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원하지 않던 세력들의 끊임없는 위협을 견뎌야 했다.

이러한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는 이번 규장각 특별전에서 전시 중인 <일성록>(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보 제153호)에 잘 드러난다. <일성록>은 정조가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반성하기 위해 작성했던 개인 일기로, 1783년부터는 규장각 관원들이 그 내용을 작성한 후에 왕의 재가를 받는 공식적인 국정 일기로 형식이 전환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사망한 1762년 윤5월에는 <일성록>에 단 한 글자도 기록되어있지 않은 것에 주목하는데, 당시 상황이 너무나도 비극적이어서 차마 글로 이를 남기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탕평 정책과 문화 사업을 펼치다

정조의 탕평 정치는 영조의 뜻을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정조가 실시한 탕평은 영조와는 조금 달랐다. 영조의 탕평이 각 붕당 간의 균등한 안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정조의 탕평은 붕당 자체를 타파하고 신하들을 국왕 중심으로 결집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탕평을 실현하기 위해 정조는 왕권 강화를 이루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정치와 학문의 모든 분야에서 신하들의 본보기가 되는 군사(君師)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이와 같은 정조의 생각은 이번 특별전에 전시되어있는 <정조실록>(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보 제151-1호) 속 윤음*에서 "영조의 치세 50년 동안 탕평의 정치와 교화가 융성하고 지극하였지만, 보좌하는 신하들이 영조의 뜻을 체득하지 못하고 균등한 조정에만 힘썼기 때문에 결국 폐단에 이르게 되었다"라고 쓰여 있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책 읽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던 문화 군주인 정조는 다양한 서적을 수집, 편찬하는 문화 사업도 열정적으로 펼쳤다. 이번 전시에서 정조의 장서인(藏書印)이 남아있는 수많은 책을 확인할 수 있는데, 장서인을 찍는 것이 자신이 관심 있게 읽은 책이라는 것을 뜻한다는 점에서 정조가 독서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정조가 송나라 학자 주희의 편지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100편을 직접 선별하여 편찬한 <주서백선>(朱書百選)과 정조가 직접 저술한 시와 산문 등의 문학적 글을 모아 편찬한 <홍재전서>(弘齋全書)를 통해서도 정조의 문화 군주로서의 면모를 만날 수 있다.

특별전시에서 전시중인 <승정원일기>(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보 제303호)/홍보팀 제공
특별전시에서 전시중인 <승정원일기>(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보 제303호)/홍보팀 제공

다양한 인재들을 교육해 규장각 각신으로 등용하기까지

이번 전시의 마지막 부분은 정조 시대의 정치적·문화적 업적에 기여한 규장각 각신들을 다룬다. 자신의 즉위를 바라지 않는 세력의 위협에 시달렸던 정조는 규장각을 왕실 도서관에서 왕실 연구 기관으로 승격시키면서 규장각에서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신하들을 찾고자 했다. 그는 규장각에 초계문신 제도 등 관료들의 학문적 역량을 시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시스템을 갖춰 놓고, 이를 통과한 관료들을 중용했다.

규장각 각신들에 대해 부당한 특별대우가 이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정조가 규장각의 창건 자체가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는 솔직한 답변을 <승정원일기>(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보 제303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정조가 규장각과 규장각 각신들에 대해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는 박제가의 <북학의> 등 정조와 뜻을 함께한 규장각 각신들의 글을 여럿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냇물에 비치는 달과 같이 모든 백성을 잘 살피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호를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로 지었던 정조. 이번 특별 전시는 이러한 정조의 삶과 이상을 되돌아보며 그가 꿈꾸었던 세상, 그리고 앞으로 미래 세대인 우리가 만들어나갈 세상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 어정서(御定書)/명찬서(命撰書): 국왕이 직접 편찬에 참여한 책/ 신하들에게 명하여 편찬한 책
* 탕평(蕩平): 당쟁을 막고 당파 간의 정치세력에 균형을 이룸
* 윤음(綸音): 국왕이 신하들을 타이르는 문서

홍보팀 학생기자
김태주 (정치외교학부 17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