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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은 답사

2017.11.08.

서양사학과에는 약 2년마다 혁명이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기념해 해외로 답사를 떠나는 전통이 있다. 서양사학과 학부생이거나 삼사학과(서양사학과, 동양사학과, 국사학과) 대학원생이라면 누구든지 참가할 수 있는 이 답사는 대개 서유럽권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10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20여명의 학생들이 서양사학과 한정숙 교수님, 국사학과 송기호 교수님과 함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났다.

답사의 시작은 14동에서

답사는 현장 수업이기도 하기에 참가자들은 학기 중과 방학 기간 매주 14동에 모여 답사 주제에 관한 책을 읽고 발제하며, 발제가 끝난 뒤 각자 한 분야씩 맡아 답사 자료집을 작성한다.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 한 올해 답사에서는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읽고 러시아 혁명의 전개과정을 다루는 방식으로 발제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권의 역사를 기피하는 막연한 인식 때문인지 인터넷에 상당히 부정확한 정보가 많았고, 결국 대다수의 발제자들은 몇 안되는 참고도서에 의존하거나 러시아어로 된 정보를 영어로 번역기에 돌리고 나서야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답사 출발일, 모든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서린 자료집을 들고 머나먼 북방으로 떠나게 되었다.

러시아의 붉은 심장, 모스크바(Mосква)

붉은 광장
붉은 광장

“무언가 준비되고 예상된 대로 일어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 삶의 현실에 대한 이 진부한 표현이 여기선 매 경우마다 어김없이 집약적으로 들어맞기 때문에 러시아적 숙명론이 이해될 정도다.”

90년 전 모스크바에 대한 발터 벤야민의 이 묘사는 오늘날에도 놀랄만큼 정확했다. 햇빛이 한국만큼 쨍쨍하다가도 폭우가 쏟아지던 변덕스러운 날씨에, 갑자기 폐쇄되던 붉은 광장까지 모스크바는 정말 한치도 종잡을 수 없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의 시작이었던 현대사 박물관은 혁명 100주년의 해이니만큼 혁명 사료들, 특히 1차 사료를 중심으로 새롭게 리모델링 되어있었다. 혁명 당시의 신문 자료들뿐만 아니라 지난 학기 전공 수업에서 출제되어 많은 학생들에게 슬픔을 안겨주었던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명령 제1호 문서 또한 직접 볼 수 있었다. 모든 설명이 러시아어로 되어있어 교수님이나 러시아사 대학원생 분들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매우 안타까웠다.

이후에도 노보데비치 수도원과 트레치야콥스카야 미술관 등 수많은 장소를 방문했지만, 모스크바의 꽃은 단연 붉은 광장이었다. 레닌묘와 성바실리 성당, 크레믈 성벽이 모두 위치한 곳으로 낮에는 러시아 특유의 진한 색감이, 밤에는 조명이 가득한 화려한 야경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우리는 레닌묘를 거쳐 성 바실리 성당을 구경하고 다시 광장으로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경찰들이 모든 관광객을 나가게 하고 6시까지 광장을 폐쇄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사열식을 진행하기 위한 이유였지만 조금만 늦게 들어갔어도 바실리 성당은커녕 광장을 멀리서만 바라 볼 뻔한 ‘모스크바스러운’ 경험이었다.

핀란드 역
핀란드 역

영웅 도시 레닌그라드, 상트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

발트해와 핀란드만에 접해있는 항구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9-20세기 사이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을 거치며 러시아 혁명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다. 열차로 모스크바와 약 5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 러시아는 특이하게도 출발지가 아닌 도착지의 이름을 따 역 이름을 붙이기에 우리는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역에서 출발했다.

모스크바 역에 내려 처음 간 곳은 핀란드역이었다. 지금은 평범한 기차역에 지나지 않지만 1917년 4월 16일 레닌이 오랜 망명에서 벗어나 이곳을 통해 다시 러시아로 귀국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큰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역 앞에는 당시 레닌의 연설문 일부가 새겨진 동판과 함께 그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레닌은 10월 혁명에 이르기까지 많은 난관을 겪는다. 이튿날 방문한 레닌의 오두막은 7월 위기 시기 임시정부가 무력으로 볼셰비키 진영을 탄압하면서 레닌이 피신해 있던 장소였다. 재현해놓은 오두막이 오두막보다는 움집이라는 말이 적합할 정도로 초라해보였다. 많은 이들이 실망했지만 일부는 레닌의 은둔력에 감탄을 표하게 되었다.

여름궁전
여름궁전

답사 일정이 전적으로 이같은 혁명 유적지만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곳이 표트르 대제의 여름궁전이다.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흰색과 금색의 궁전도 눈부셨지만, 궁전의 앞마당을 따라 걸어가면 나오는 핀란드만은 무엇보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라스푸틴이 살해된 장소로 더 유명한 유수포프 궁은 베르사유 못지않게 방 하나하나가 화려했으며, 성이삭 성당의 성화와 조각들은 종교가 없는 사람마저 신을 믿게 만들만큼 경건한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그때 그 답사’로 기억될 9박 11일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서 행복했다. 내후년 여름, 프랑스 혁명 답사는 누구에게 또 어떤 추억을 남기게 될지 더욱 기대된다.

서양사학과 16학번
박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