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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길 것 같죠? 안 생겨요 - 장덕진 교수

2010.05.10.

생길 것 같죠? 안 생겨요 장덕진 교수(사회학과)

스펙 쌓기에 치중하기보다 미래를 바라보는 눈을 길러 세대적 돌파구를 찾아나서야

눈만 뜨면 흘러넘치는 광고 중에 귀에 쏙 들어오는 문구가 하나 있다. 대학 가면 멋진 남자 친구 생길 것 같죠? 안 생겨요. 다들 생기니까 생길 것 같죠? 안 생겨요. 말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이런 광고문구를 만들어내게 한 시대적 상황과 맞닿아서 더 귀를 잡아끄는 것 같다. 오늘의 20대가 처한 상황을 어쩌면 저리도 잘 잡아냈을까. 단어 한 두 개만 바꿔보자. 스펙 열심히 쌓으면 좋은 직장 생길 것 같죠? 안 생겨요. 다들 생기니까 생길 것 같죠? 안 생겨요. 이 와중에도 누군가에겐 생기겠지만 대부분의 20대에겐 안 생길 것이다. 서울대생에 국한해서 다시 바꿔보자. 서울대 나오면 크게 성공할 것 같죠? 못 해요. 선배들 다들 성공했으니까 할 것 같죠? 못 해요.

모두에게 안 생길 것을 내게는 생기도록 하려다 보니, 학생들은 고통스러운 스펙과 시험준비에 몰두한다. 나는 학생들과 자주 대화하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학생들로부터 대안이 뭐냐는 질문에 자주 부딪힌다. 그들이 스펙 쌓을 시간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나도 답할 수 없다. 사람마다 모두 다를 테니까. 그러나 20대에게, 그리고 서울대생에게 공통으로 적용될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스펙 쌓기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스펙의 내용은 대부분 나를 뽑아주면 즉시 업무에 투입되어서 매끄럽게 작동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들이다. 이미 기름칠이 된 나사처럼 조직의 부품이 될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인데, 아쉽게도 그들 대부분은 좋은 직장의 구성원이 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반면 그들을 뽑아줄지도 모르는 조직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비용절감이 아닐 수 없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조직이 지불해야 할 교육비용을 지원자들이 이미 개인적으로 다 지불했으니 말이다.

둘째로, 스펙 쌓기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우선 한국의 직장은 이제 더 이상 평생직장이 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자기 비용 들여서 스펙 쌓고 바늘구멍 통과해도 길어야 20년이면 그 직장에서 나와야 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면 지금의 20대는 아마도 족히 100세까지는 살지 않을까 싶은데, 직장을 나온 후 50년의 세월을 의미 있게 보낼 준비는 스펙 쌓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셋째로, 성공은 개인의 현상이 아니라 세대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몇 년 전 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엘리트 3만 2천명의 경력을 모두 분석해서 책으로 낸 일이 있다. 뚜렷하게 드러나는 발견은 성공이 세대적인 돌파에 의해서만 얻어진다는 것이었다. 여성 엘리트를 예로 들면, 여성들은 원래 교육계에만 국한되어 있었으나 70학번을 전후로 한 여성들이 의료계에 대거 진출하고 이들보다 10년쯤 후배 여성들이 법조계의 벽을 뚫었다. 오늘날 우리가 여성 명의와 여성 대법관을 가지게 된 배경이다. 통계를 보다보면 한 세대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금녀(禁女)의 아성을 돌파하는 모습에 감동을 하게 된다. 스펙은 지극히 개인적인 자산이어서 세대적 돌파로 이어지기 어렵고, 개인적으로 기존 체제에 흡수될 길을 열어줄 뿐이다. 몇몇 개인이 기존 체제에 흡수돼 봐야 세력화될 수 없고, 따라서 그들의 더 이상의 성공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가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선배들이 어떻게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했는지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당장의 스펙이 아니라 20년 후 역사의 시민권을 취득할 준비를 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규정하고 이끌어나가는, ‘역사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서울대생의 특권을 버리고 자신이 믿는 가치에 몸을 맡겼던 사람들이다. 기존 체제에 흡수되기보다 새로운 체제를 건설할 것을 꿈꾸고 사회에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내 학생들의 세대적 돌파를 보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안 생길 테니까.

2010. 5. 10
대학신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