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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 부족한 딱 한 가지

2009.10.09.

아빈드 교수와 김지홍 교수가 함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실사진

나홀로 연구에 몰두하는 서울대 사람들
“서울대에 부족한 건 딱 한 가지더군요. 분야가 다른 연구자들간의 소통입니다.”
MIT 석좌교수이자 컴퓨터공학사에 이름을 남긴 세계 석학 아빈드 교수가 서울대에 머무른 소감을 간명하게 밝혔다. “아름다운 캠퍼스, 정부와 기업의 지원,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연구시설, 성실한 인력을 모두 갖춘 대학이지만, 거대한 공대 건물 어디에서도 ‘끝장나도록 토론하는’ 공학인들은 볼 수 없었어요. 서울대 교수님들은 주로 자기 연구실에만 계신 것 같더군요.”
32년간 MIT 교수로 지내면서 IT업계의 스타들을 배출해 온 아빈드 교수는,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기 연구에 몰두하는 서울대의 차분함이 어색하기만 한 듯 공대 건물이 잘못 설계 된 것 아니냐고 에둘러 말하며 설명을 이었다.
“MIT에서는 학교 안에서는 누구든 연구 관련 주제를 꺼내기만 하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응하면서 그 사람이 수긍할 때까지 토론이 끝나지 않아요. 상대방이 내 분야를 모른다고 해도 그 사람은 끝까지 질문할 권리가 있고 그걸 이해시킬 책임은 내게 있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단순한 아이디어가 확장과 도약을 거듭한 것이 나의 연구과정이었습니다." 그는 지금도아이디어가 하나 생각나면 당장 학교로 달려가서 누구라도 붙잡고 떠들어야 직성이 풀린다며 웃었다.

생각의 전환으로 컴퓨터 속도의 한계를 극복하다
그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 낸 발명품이 ‘멀티 프로세서’를 장착한 컴퓨터다. 80년대까지도 세계 컴퓨터학계에서는 싱글 프로세서를 장착한 채로 컴퓨터의 계산 속도를 늘리는 데에만 집중해 왔는데, 아빈드 교수는 한개의 컴퓨터에 2개 이상의 프로세서를 장착한 컴퓨터를 1975년에 세계 최초로 고안해컴퓨터 속도에 혁신을 가져왔다.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컴퓨터로 영화를 보면서 인터넷을 동시에 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아빈드 교수의 발명품은 ‘몬순’ 컴퓨터라는 이름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컴퓨터 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다.
“아직도 그 시절 연구에 대해 강의해 달라는 미국 기업이 많아요. 절대로 안 합니다.”
그는 이미 일반화된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대학의 역할이 아니라고 강조한다.아빈드 교수는 이후 하드웨어 자체를 설계 디자인하는 방향으로 연구주제를 바꾸었고, 노키아 휴대폰에 사용되는 컴퓨터 언어를 개발해 3년 이상 3천만 달러씩 소요되던 1개 휴대폰 개발 비용을 6개월로 줄이는 성과를 거두었다. 기업도 연구는 하지만 학계에서는 산업계에서는 현재에 생각하지 못하는 차원의 연구성과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과학자는 철새처럼 움직여야 꽃을 피운다
아빈드 교수는 4개월 여간 서울대에 머무르며 수업과 공동연구를 병행하는 조건으로 MIT 박사과정 학생 3명과 함께 9월부터 서울대에 머물고 있다.
“과학자는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위해이동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는 장기 한국행을 결행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무리 축구를 잘해도 경기를 계속 뛰지 않으면 선수로 클 수가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프로젝트 팀에 소속되어 일을 해야만 연구성과를 낼 수 있고, 참가할 만한 경기(프로젝트)가 있으면 비행기 타고 가서 뛰는 게 당연하죠.”
이런 생각에 따라, MIT에서는 교수가 소속된 학과를 바꿀 수는 없지만 랩은 본인의 선택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새로 열거나 폐쇄하는 것도자유롭게되어 있다고 한다.학교의 경계를 넘어 산업계로 진출하거나 해외로인력을 보내고 부르는 인력교류가다반사인 것은 당연하다.
"서울대도 이정도 인프라를 갖추었으니 영어만 통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연구 중심지가 될 수 있을지 한번 상상해 봅니다."그는 언어장벽이 두려워한국에 오는 것을 심각히 고민했었다는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빈드 교는 IT업계의 ‘스타’들을 양산한 학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의 '노키아'를 만든 로버트 이아누치 연구개발총책임자(CTO)와 '선마이크로시스템'의 파파도풀로스, '테라데이타'의 브롭스트 등의 CTO가 모두 그의 박사과정 제자들이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산업계에서 이 정도로 성공하는 제자들이나, 학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이들이나 학창시절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회고다.“학계에 남는 아이들이 좀더 상상력이 풍부하긴 하지만 열정적이고 떠들기 좋아하는 똑똑한 학생들인 건 똑같았지요."

MIT와 서울대, 비슷한 ‘샌님’들 선발하지만 성장시키는 방식이 다르다
“MIT와 서울대 학생들도 사실은 비슷합니다.”
아빈드 교수는 지금까지 만나 본 서울대 학생들에 대한 나름의 통찰을 피력했다. “MIT에서 공학에 재능 있는 학생들을 선발하다 보면 내성적이면서 컴퓨터와 더 친하고 머리는 좋은 ‘샌님’들을 뽑게 됩니다. 다양한 관심을 가진 원만한 성격의 전형적인 미국 인재상과는 거리가 멀지요. 서울대도 공부에만 몰두했던 학생들이기 때문에 성향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MIT에 입학하면 ‘샌님’들의 열린 공간에 들어가면서 그들간의 뜨거운 소통을 시작합니다.

인터뷰가 끝나자 열린 문으로 MIT 학생 셋이 몰려 들어와 교수 옆에 걸터앉으며, 커피 한 컵과 함께 낙서 같은 노트를 내밀면서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찾아오는 건 내가 MIT에서 데려온 학생들뿐이에요. 서울대 학생들은 무슨 일이 있어야 교수를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내가 음식이라도 쏘면서 불러야 겠어요”
소탈한 농담 속에도 카리스마가 번득이는 그는 며칠 뒤면 피자 한 판으로 소극적인 서울대 학생들을 토론하기 좋아하는과학도들로 변신시켜 놓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빈드 교수는 교육과학부의 WCU (World Class University) 프로젝트의 ‘해외석학 초빙 프로그램’을 통 서울대 특별교수로 임용되었고, 내년 1월까지 한국에 머물면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김지홍 교수와 공동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오는 9월 22일(화)에는 자신의 IT사업 운영 경험을 들려주는 특별한 대중강연을 학교에서열기로 했다.

2009. 9. 17
서울대학교 홍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