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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처럼 창조하고, 왕처럼 명령하고...

2009.09.23.

신처럼 창조하고 왕처럼 명령하고 노예처럼 일하라

나만의 건물을 설계해 서울의 모습을 변화시켜보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건축’보다는 ‘건설’에 무게가 실려 있는 한국의 척박한 건축문화에서 나는 갈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건축학교를 설립해 새로운 건축교육을 모색하고 파주출판도시 코디네이터로 새로운 개념의 도시 건설을 지휘했던 승효상(건축 75년 졸업) 선배는 배우면 배울수록 작아지는 나를 고집있는 조언으로 이끌어 주었다.

건축에 공공의 가치 담아라!
승효상 선배는 건축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변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일어나긴 하지만 결국 공간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이념투쟁, 계급투쟁 등도 도시구조를 바꾼다면 충분히 치유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몇 백 채를 한꺼번에 지은 후 무조건 담장을 둘러요. 쭉쭉 뻗어나가던 대로도 아파트 단지를 만나면 더 이상 뻗지 못하고 휩니다. 아파트는 대한민국의 가장 대표적인 주거지이지만 도시와 융합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선배가 지난 20여 년간 꿋꿋하게 지켜온 건축관은 96년에 펴낸 저서『빈자의 미학』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선배는 “가짐보다 쓰임이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고,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고 적었다.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이들의 미학인 것이다.
승 선배는 돈이 있다고 자신만을 위한 건물을 짓는 것은 건축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한다. “건축의 공공적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비록 사비를 털어 건축을 하더라도 건물에 대한 사용권만을 지닐 뿐 사회, 시민과 건축물을 공유해야 해요. 달동네가 좋은 예죠. 마당 하나도 같이 쓰고 하나의 길도 다용도로 활용해 공동체적인 삶이 물씬 묻어나요. 도심에서도 건물을 좀 작게 짓고, 행인들에게 길도 내어주고 하면 어떨까 싶어요.”

진정한 건축은 시대의 나침반
승효상 선배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물신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빈자의 미학’을 시작했다. 그가 건축물에서 유독 공동체적 삶에 대한 의지를 많이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건강한 커뮤니티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을 깨뜨리고 사람들을 올바른 곳으로 이끄는 것이 건축가의 일입니다.” 건축을 시대의 반영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그 시대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시대가 지향해야 할 모습, 궁극적으로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할지를 비출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건축은 사람들의 삶을 조직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건축가는 인간이 어떻게 사아가야 할지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책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을 접하는 것은 좋은 방법입니다. 건축학은 인문학이지 공학이나 예술이 절대 아니에요. ‘왜 사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건축으로 인생의 가치 깨우쳐야
승효상 선배는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싶다면 건축을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명언을 하나 덧붙였다. ‘신처럼 창조하고, 왕처럼 명령하고, 노예처럼 일하라.’ 건축가는 늘 신과 같은 눈으로 사람들의 삶을 창조하고, 왕과 같은 프라이드를 가지고 일을 하며, 노예처럼 부지런히 일하라는 말이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서울대 동문들은 엘리트 의식이 확고합니다. 맡은 바에 대해 철저히 책임지고 끝까지 완수해내죠. 하지만 건축은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건축주, 건설사, 더 나아가 제도까지도 헤쳐 나가야 해요.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꼭 배우길 바랍니다. 협업을 통해 건축가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것은 큰 감동이지요.”
확고한 신념과 뜨거운 열정을 지닌 선배의 모습에서 용기가 불끈 솟았다. 언젠가 꼭 나만의 확고한 건축 철학을 바탕으로 시대와 사회를 비출 수 있는 건물을 설계해 내겠다는 집념이야말로 승효상 선배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2009. 9. 22
서울대학교 홍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