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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로서의 릴케 - 최윤영 교수

2009.08.03.

멘토로서의 릴케 최윤영 독어독문학과 교수

“당신의 마음 깊은 곳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가서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명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그 근거가 당신 마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확인해보십시오.
글을 쓸 수 없으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는지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이런 질문을 무엇보다 당신의 밤 중 가장 조용한 시간에 자신에게 던지십시오.
나는 글을 꼭 써야 하는가?
깊은 곳에서 나오는 답을 찾아 당신의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십시오.
만약 이에 대한 답이 예라고 하면, 즉 이 진지한 질문에 대해
나는 써야만 해라는 강한, 간결한 말로 답할 수 있으면,
당신의 삶을 이 필연성에 따라 만들어 가십시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1903년 2월 17일)

위의 말은 한 젊은 시인 지망생이 대시인 릴케에게 자신의 시에 대해 묻자 얻은 대답이다. 이 시인 지망생은 아마 상당히 인정도 받고 자기가 잘 쓴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저기 물어보고 릴케에게 마지막 확답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시인이 해준 대답은 최종결정은 자기 자신이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 분명한 대답은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늘 전해주시는 말씀이다. 아마도 나도 계속 이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사실 모든 길이 그렇지 않을까?

인문대학에 학생생활문화원이 생긴 이래로 학생들 미래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보다 많이 듣는다. 요즈음은 모든 이를 위한 정보가 대량으로 넘쳐나지만 다른 한편 나와 직접 관련된, 내 주변의 정보는 그렇지도 않다. 적성이 많이 강조되는 시대이지만 이 적성이라는 단어조차도 때로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서울대생의 경우는 모든 것을 다 잘하다보니 적성이 모호한 경우도 많고 여러 주변 환경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다보니 스스로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볼 기회도 많지 않다. 이때 학교의 프로그램들이 다양한 형태로 도움을 줄 수 있다. 혹은 삶의 경험이 더 많고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는 친구, 선배, 교수에게 개인적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결국 내가 어떤 길을 가고, 어떻게 살겠다는 마지막 결정은 자기 혼자 외롭고 힘들게 내려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헤매고 실패도 많이 해보아야 한다. 크던 작던 성공의 경험만 거듭해 온 서울대생에게 부족한 것은 이러한 헤맴과 실패의 경험이 아닐까? 뼈에 사무치게 실패해본 경험이 있으면 뼈에 사무치는 배움이 또한 있다. 파우스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인간은 노력하는 한 헤매기 마련이다”는 말처럼 대학 시절에는 많은 헤맴이 필요하다. 이 전공, 저 전공 사이에서, 이 일, 저 일 사이에서도 헤맬 수도 있지만, 내가 추천하는 것은 - 학교의 여러 프로그램을 이용해 - 외국으로 가 헤매보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은 자기의 존재를 일깨워 주고 자신이 자라온 주변세계나 유일한 것이 아니며 삶에도 다양한 선택지들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매일 어떻게 (먹고)살지, 친구는 어떻게 사귈지, 외국어는 어떤 식으로 필요한지 등의 구체적 문제뿐 아니라 무엇을 공부할지,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해보게 만들어준다. 헤맴은 사실상 살아가는 동안 계속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학생활 중에 미래계획의 방향을 정하고 싶어 한다. 그때 릴케가 말한 것처럼 며칠 밤낮 고민을 해도 이 길이 내 길이라고 생각되면 가는 것이고 가야하는 것이다. 서울대생들처럼 똑똑하고 능력 있는 학생들이 자신의 내면의 소리와 부합된 미래계획을 세운다면 주변 환경이 어떻더라도 결국 성공을 거둘 것이고 그 보람은 더 클 것이다. 하는 일이 곧 원하는 일이고 즐거움과 보람이 있으니 나의 귀중한 시간과 열정을 쏟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