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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마음과 행동을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창문 (이상훈 교수)

2009.07.16.

뇌는 마음과 행동을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창문

동물의 생존능력을 좌우하는 것은 '뇌'의 정보처리 능력

정글 숲 속. 나무 아래 떨어진 과일들로 주린 배를 채우고 있는 원숭이 한 무리. 이들과 약간 비껴난 숲의 그늘 깊은 곳, 조심스레 빛나는 표범의 허기진 눈. 표범의 몸은 멈추어 있으나 그 머리 속 두개골이 단단히 감싸고 있는 뇌에는 엄청난 양의 정보처리가 일어난다. 표범의 눈, 귀, 코, 피부 등 온갖 감각 기관은 숲의 환경과 원숭이로부터 시시각각 도착하는 물리적 입력을 뇌가 수용할 수 있는 형태의 부호(신경흥분)로 번역하여 온라인으로 뇌로 전송한다. 전송된 신경활동을 바탕으로 뇌는 온갖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신의 냄새가 원숭이 무리에 미치지 않게 바람과 마주하도록 위치를 잡는 일. 원숭이는 몇 마리이며 어떤 원숭이가 가장 약하고 느려서 먼저 공격할 대상으로 삼을지 선택하는 일. 그리고 원숭이 무리에 얼마나 더 가까이 접근해서 언제 공격할 것인지 판단하는 일. 드디어 표범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원숭이의 뇌도 엄청난 양의 정보를 표상, 처리, 분석한다. 바스락, 점점 커져오는 발자욱 소리. 불길한 포식자의 냄새. 바람에 일렁이고 부산스런 동료 원숭이들의 달음질에 흔들리는 나무 가지와 잎들 사이로 파편으로 흩어지며 움직이는 표범의 애매한 윤곽들. 몇 초의 시간에 주어진 파편적 윤곽들의 움직임에서 표범이 어디로 움직일지 짐작하여 그것과 어긋난 공간상의 좌표로 원숭이는 자신의 몸을 이동시켜야 한다. 이 긴박한 생존게임의 승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인은 바로 원숭이와 표범의 뇌에서 벌어지는 정보처리 능력이다. 이 게임의 승자는 자신이 보존해온 또 하나의 정보인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송할 확률게임의 승자이기도 하다. 다음 세대로 전송된 유전자 정보에 각인된 정보처리 능력은 다시 한 번 개체의 생존게임에 개입할 것이다.

'인지능력'은 생존본능에서 철학적 사고에까지 사용되는 것

여기서 등장한 표범과 원숭이의 마음과 행동에 비춰진 정보의 표상, 처리 등의 사건들을 현대과학자들은 '인지(cognition)'라 부른다. 개체의 환경에서 수집된 물리적 사건들을 정보처리가 가능한 형태로 번역, 표상하는 감각정보처리 능력. 그러한 정보의 표상을 저장하고 필요할 때 적절히 불러내어 현재 정보처리에 사용하는 기억과 학습의 능력. 현재 입력되는 감각정보와 기억에 저장된 정보에 바탕하여 외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추론하는 지각적 의사결정 능력. 그리고 그러한 지각적 의사결정에 기초하여 가장 개체의 생존과 이익에 긍정적인, 즉 보상을 최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행동을 결정하는 경제적 의사결정의 능력. 다른 개체와 정보를 교환하고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사회인지 능력. 이렇듯 인지능력의 외연은 매우 넓다. '뇌인지과학(Brain and Cognitive Sciences)', 혹은 '인지신경과학 (Cognitive Neuroscience)'은 바로 뇌가 생명체의 다양한 인지능력들을 어떻게 구현하는지를 밝히려는 시도이다. 그 동안 인문학(철학, 종교학, 언어학, 문학, 예술)이나 사회과학(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의 틀에서만 제한적으로 탐구되거나 추론되던 인지능력들은 이제 뇌에서 벌어지는 신경적 사건이란 틀에서 다시 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마음과 몸을 '연결'하는 것이 뇌과학의 역할

하나의 과학적 패러다임으로서 뇌인지과학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키워드는 '연결 (linking)'이다. 마음, 행동이란 심리적 공간(psychological or behavioral domain)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뇌라는 물리적, 생물학적 공간 (physical or biological domain)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수준에서의 뇌의 사건들에 연결하는 것. 마음과 뇌를 연결하는 이 새로운 과학적 엔터프라이즈는 선배 자연과학들이 고단하게 이루어 놓은 지식, 발견의 축적과 관찰 및 분석 도구들의 발달 없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손으로 만지거나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을 정량화(quantification)하며 마음을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실험실에 끌어들인 인지심리학, 신경계의 해부적, 기능적 특성을 탐구하는 분자신경생물학, 개별 뉴런들의 신경적 활동을 측정하는 전기생리학, 집단으로서 뉴런들의 거시적 활동을 측정하는 뇌영상학, 마음과 신경적 사건의 두 도메인에서 벌어지는 정보처리를 수리적 모델로 시뮬레이트하고 연결해주는 수학. 인지능력 탄생의 비밀을 쥐고 있는 유전학. 마음과 뇌의 연결은 다학문적 협력활동 그 자체이고 이러한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뇌인지과학자 자신은 축구나 배구경기의 리베로처럼 멀티플레이어가 되거나 적어도 여러 학문들 사이에서 언어장벽을 느껴선 안 된다.


서울대도 뇌와 마음을 연결하는 '뇌인지과학과' 를 2009년 신설

교육과학기술부 및 과학재단에서 지원/운영하는 세계적 연구중심대학 프로그램의 하나로 뇌인지과학과가 신설되었다. 뇌인지과학과는 뇌와 마음을 연결하기 위해 세 가지 시도를 할 것이다. 첫째, 분자수준에서 뇌와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기억이 뇌에 저장되는 과정을 탐구한다. 기억은 마음의 핵심인 자아 정체성을 만들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둘째, 시각 정보처리 과정을 통해 의식의 흐름을 포착하려한다. 의식의 규명은 21세기 과학의 화두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뇌질환 연구를 통해 마음의 비밀을 찾아내고자 한다. 이런 목표에 따라 뇌인지과학과는 세 팀이 주축이 되고 팀 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마음의 비 밀을 찾아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