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면 충분합니다. Less is More라고 하니까요”
최상의 현장 녹음을 위해서 마이크를 몇 개나 설치하느냐는 질문에 황병준 동문은 너무나 의외의 답을 단호하게 대답했다. 수십, 수백 개가 필요하리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스테레오의 녹음은 마이크 두 개만 위치와 높이만 제대로 맞추면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정말 좋은 홀이라는 전제에서 말이다.
황동문은 젊고 쾌활했다. 지난 2월 그래미상 수상 이후 많은 매체에서 접한 중후한 거장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꿈과 잠재력이 넘치는 유망주에 가까웠다. 110여개 그래미상 시상 분야에서 엔지니어가 받을 수 있는 단 두 개 가운데 하나인 최우수녹음기술상을 받았다고 믿을 만큼의 연륜과 노련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그는 타고난 천재였을까?
“석 달 동안은 사람 취급도 못 받았습니다. 심부름이나 청소라도 시켜 주면 고맙지요. 서울대 전기공학부 석사를 마치고 버클리 음대 Music Production & Engineering 과정까지 마친 입장에서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스텝들은 비행기 타는데, 저는 트럭에 장비 싣고 운전해서 1,500Km를 가고는 했으니까요. 정말 음악과 녹음을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계적인 녹음 회사 사운드미러에서의 초년병 시절을 황병준 동문은 터프(tough)했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 때 음악 시험 준비를 위해 소니 워크맨으로 들었던 베토벤 교향곡 6번에 매료되어 클래식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서울대 음악감상실의 소리지기를 하면서 접한 굴렌 굴드의 연주를 아직도 가장 사랑하는 그였기에 버틸 수 있는 수련이었다. 한 가지를 배우면 다섯 개를 기록하고, 열 번씩 복습을 해야만 했다. 기계와의 씨름만큼 예민하고 자존심 강한 아티스트들을 다독여 최상의 연주를 이끌어 내는, 사람을 다루는 기술도 익혔다. 안젤리아 보첼리니처럼 우호적인 음악가가 있는 반면 악장 하나마다 녹음을 들어보려는 까다로운 연주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음반 시장의 불황을 걱정하자 황동문은 오히려 “음원(音原) 시장의 전망은 밝다”고 안심을 시켰다. EMI, 데카 등 주요 음반 회사들이 주도하는 대형 프로젝트나 기획 음반 녹음은 줄었지만, 각 아티스트나 연주 단체에서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연주 음원을 확보하려고 하기 때문에 녹음 회사로서는 일거리가 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역시 한 아트홀의 연간 150회 연주를 모두 녹음 중이고, 영화 『장화ㆍ홍련』『스캔들』 OST의 후반부 작업은 물론 『윤도현 밴드』등 대중 음반의 후반기 작업도 종종 맡기 때문에 “당분간은 걱정 없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국악 음반을 제대로 만들어서 그래미상 월드뮤직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수제천’ 같은 곡을 현장에서 들으면 정말 감동적이거든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사업성도 없고, 국악에 대한 인식도 부족해서 최적화된 녹음을 하지 못 했습니다. 서양 대중음악의 원천은 바흐와 베토벤 같은 클래식이잖아요? 진정한 한류 음악을 원한다면 국악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개인적인 소망을 묻자 황병준 동문은 다소 결연한 대망(大望)을 털어 놓았다. 우리도 보스턴, 암스테르담, 빈처럼 훌륭한 콘서트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녹음 엔지니어로서의 희망과 함께… 그래서 그에게 그래미상은 이루어진 꿈이 아니라 또 다른 미망(彌望)인 셈이다.
2008. 4. 4
서울대학교 홍보부
에디터 김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