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금)부터 7일(월)까지 68동 제1파워플랜트에서는 아마추어천문회 AAA(Amateur Astronomy Association 이하 AAA)가 기획한 암적응(暗適應) 전시가 진행되었다.
“인류가 우주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과정’을 관객에게 전하며 ‘우주’의 공간과 친해지고, 인간이 우주를 바라보는 감정과 시선을 함께 공유”하는 이번 전시는 문화예술원 Student-up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암적응(暗適應)이라는 이름 그대로 관객들에게 어둠 속에서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전시를 관람하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였다. 천장에 매달려 있거나 바닥에 붙어 있는 전시물에 빛을 비추며 새로운 의미를 찾는 전시였다. 빛을 비추면 전시물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거나 반사된 빛이 아름다운 형상을 이루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람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전시
암적응(暗適應) 전시는 관람객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어둠이 집어삼킨 전시회장에서 관람객이 자신의 손전등을 비추며 전시를 비로소 완성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개인의 고유한 맞춤형 전시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관람객들에게 지급되는 손전등은 빛을 집중시키거나 분산시킬 수 있는데, 동일한 전시물도 빛을 비추는 각도와 두께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전시의 놀라운 점은 시각적 효과에 한정되지 않았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배경음악과 주기적으로 작동되는 기계장치 소리가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탐험가가 된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전시에 참여한 신나경(간호학과) 학생은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형 전시로 진행돼 몰입도가 높았다”라며 “처음에는 ‘왜 전시 이름이 암적응일까?’ 궁금했는데, 손전등 하나만 들고 암실에 들어가 우주를 발견하는 듯한 구성이 정말 인상 깊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은 전시물로는 손전등을 비추자 우주배경복사가 나타났던 텔레비전을 꼽으며 “마치 어둠 속에 숨겨진 시간을 조심스레 꺼내 보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빛을 비춰야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들은 단순히 ‘보는’ 행위를 넘어, 온몸으로 ‘경험하는’ 방식으로 관람을 유도했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스타캐쳐(Star Catcher)’는 실제 은하수의 별 배치를 참고해 천장에 수놓은 작품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위로 끌어올렸다. 이어지는 ‘다중우주대폭발원점모뉴먼트’는 겹겹이 겹쳐진 구형 오브제를 통해 관측 불가능한 우주의 기원을 상상력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축광 가루로 만들어져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출 때 비로소 드러나는 ‘흑색 왜성-원시별 역행’은 별의 일생을 거꾸로 되짚는 독특한 체험을 제공했다. 검은 철망들을 엮어 만든 ‘우주 회전초’는 지구에서 바라보는 천체의 제한된 시야를 넘어, 또 다른 우주의 관측 가능성을 암시했다. ‘중력렌즈시뮬레이터’는 도넛 모양의 곡면형태로 거울을 배치해 왜곡된 빛의 흐름을 재현함으로써 영화 ‘인터스텔라’ 속 장면을 현실에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주었다. ‘우주배경 고동’은 브라운관 TV의 노이즈, 초음파 이미지, 철망 구조물이 어우러져 우주 탄생의 흔적이라 불리는 우주배경복사를 감각적으로 구성했다. 생명의 시작을 연상시키는 초음파 이미지와 물결치는 빛의 흔들림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우주의 태동을 직관적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유성 디스플레이’는 손전등을 비추면 북두칠성과 오리온자리를 번갈아 가며 드러내고, 회전하는 거울 장치를 통해 별똥별이 떨어지는 듯한 장면이 연출된다. 거대한 전파망원경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은 찰나의 천체를 포착하려는 예술적 상상력의 집약체다. 전시 첫날 AAA가 준비한 오프닝 케이터링에서는 화성의 붉은 암석을 본뜬 정교한 초콜릿과 석양빛이 어우러지는 음료가 관람객의 오감을 우주로 확장시켰다.
작품 / 김주호 ‘우주 회전초’
작품 / 김태석, 김희서, 신윤도, 윤지용 '유성디스플레이'
화성의 붉은 암석을 본뜬 초콜릿 케이터링
학생들의 손으로 전시를 기획하다
‘암적응(暗適應)’은 어두운 환경에 적응하는 생리 현상인 ‘암순응’에서 착안한 단어이다. 수동적인 의미의 ‘순응’을 넘어 어둠 속에서도 능동적으로 별을 찾아 나서는 주체적인 태도 ‘적응’의 메시지를 담았다. 결과 중심 전시에서 벗어나 별을 바라보는 과정의 의미를 공유하고자 기획된 새로운 전시다. 전시는 천문학에 대한 애정과 예술적 감각을 두루 갖춘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기획됐다. 미술대학, 공과대학, 물리천문학부 등 여러 학과 학생들의 시각을 담은 오브제를 제작했고, 학문 간 경계를 넘는 유기적 협력은 전시에 과학적 깊이와 예술적 감성을 동시에 부여했다.
AAA 내부에서는 내수적으로 진행되던 천체 사진전에서 벗어나, 대외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열망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고 한다. 그러던 중 문화예술원의 ‘Student Up’ 프로그램을 통해 동아리 활동 반경을 넓히고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이번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다. Student Up 프로그램은 전시 준비 지원금뿐 아니라 홍보와 아카이빙 지원도 함께 제공했다. 전시 브로슈어와 현수막 제작을 위한 자금은 물론, 이메일과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홍보, 주요 대상자 메일링 등 실질적인 홍보 활동이 병행됐다. 또한 문화예술원이 제공한 도슨트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들은 작품에 대한 상세 설명을 녹음하고, 전시 도면, 캡션, 제작자 정보를 기록했다. 콘텐츠는 전시 관람객에게 제공됨과 동시에, 추후 참여자들이 공식 아카이빙을 진행할 때 유용한 기록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전시를 담당한 문화예술원 박지호 매니저는 “Student-up 프로그램은 문화예술원에서 진행하는 학생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며 “한 학기에 다섯 팀을 선정해서 공간 대여, 500만 원 상당의 지원금, 멘토링, 홍보, 기타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문화예술원이 전폭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대외적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메타 크리에이터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프로그램의 목표를 밝히며 “실질적으로는 학생들이 재미있는 기획을 직접 실현할 수 있는 좋은 장을 마련하고, 쉽지 않더라도 전시를 완주하는 성취감과 창작하는 재미를 느끼게끔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부 심사와 외부 심사를 거쳐 엄격하게 선발하는 Student-up 프로그램에 이번 전시가 선정된 이유는 “기획이 직관적이면서도 굉장히 흥미로웠다”라고 하면서 “다양한 전공의 학생이 지원한 것도 매력적인 포인트였다. 훨씬 다양한 주체들이 뭔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라고 밝혔다. 암적응(暗適應) 전시는 팀워크가 좋아보였다는 평가를 내리며 “다양성과 서로를 잘 돌보는 끈끈한 모습을 보였다”라고 덧붙였다.
많은 사람이 서울 하늘에서는 별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주의 깊게 바라보면 수많은 별빛으로 수놓은 아름다운 밤을 느낄 수 있다. AAA는 ‘밤하늘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을 전시장 안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직접 별을 보러 멀리 가지 않더라도 ‘어둠’과 ‘빛’의 대비를 통해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음을 전달하고자 했다. 기획에 참여한 장서영(조소과) 학생은 “손전등을 매개로 각자만의 우주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자 했다”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밤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한 번쯤 가져보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라고 말했다. 예술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학생들이 기획하고 진행한 전시를 학내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원의 지원을 통해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펼쳐보는 방법이 있다. 직접 즐기고 또 도전해보며 예술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것은 어떨까.
서울대학교 학생기자단
권의준 기자, 전송배 기자
(gwoneuijoon@snu.ac.kr, thrxprcs@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