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2025년 상설전이 1월 22일(수)부터 8월 29일(금)까지 열린다. ‘규장각, 별처럼 빛나는 기록의 향연’으로 개최된 전시는 정치사, 경제사, 근대사, 철학, 기록학, 미술사 등 다양한 전공의 큐레이터들이 모여 자주 공개되지 않았던 규장각 소장 기록물들을 선별해 관람객들에게 선보인다.
규장각 상설전 ‘규장각, 별처럼 빛나는 기록의 향연’ 입구
여섯 개의 전시가 모여 이야기하는 기록의 가치
전시는 규장각이 소장한 기록유산의 다채로움을 향유하는 여섯 개의 테마로 구성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희경 규장각 학예연구사는 “전공과 관심사가 각기 다른 큐레이터가 참여하여 규장각을 대표하는 국보와 보물뿐만 아니라 그동안 조명되지 못했지만 널리 알려야 할 기록물을 선별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조선의 통치와 관련된 국정 기록, 나라 살림과 관련된 호적과 양안뿐 아니라 규장각에 소장된 회화 자료, 근대 자료, 종교자료까지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김 학예연구사는 “방대한 기록유산의 세계를 탐험하는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라며 취지를 밝혔다.
전시의 문을 여는 1부 ‘궁궐 깊숙이 자리한 비장의 서고’에서는 규장각 건물에 달렸던 현판의 복제본과 규장각과 관련된 기록물(정조실록, 일성록, 내각선사일록)을 전시하여 규장각의 기능과 역할을 소개했다. 2부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만들어진 기록물들과 정치사, 호적과 양안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통치의 기술, 다스림에 대한 고민들’에서는 믿을 만한 기록을 남기기 위한 조선의 노력이 담긴 기록유산들을 보여준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일성록 등의 국보를 통해 진실하고 상세한 기록을 후대에 전하고자 했던 조선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가례도감의궤와 화성성역의궤 등 다양한 그림과 상세한 정보가 담긴 기록물을 통해 과거의 행사 진행 과정이나 건축 관련 정보를 상세히 얻을 수 있다.
(1부) 규장각의 역할과 기능을 알려주는 규장각 현판, 정조실록, 일성록, 내각선사일록(좌) / (2부) 가례도감의궤, 화성성역의궤 등 규장각 소장 의궤(우)
‘나라 살림’은 *왕토왕민 사상을 바탕으로 호적과 양안 제도를 통해 국가 경제 운영의 기반을 다졌던 조선의 사람과 토지에 관한 기록을 보여준다. 산음장적, 낭천호적, 해남군호적, 강재발 준호구 등 다양한 호구 제도 기록물들과 언양현양안, 세종실록지리지를 비롯한 다양한 지역의 토지 조사 내용을 담은 양안 관련 기록물을 관람할 수 있다. 특히 처음으로 선보이는 호적, 호구, 양안을 통해 조선이 나라 살림을 어떻게 꾸려가고 행정 체계를 정비하고자 했는지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고지도를 소장한 규장각은 ‘고지도에 깃든 땅의 기억’에서 1864년에 간행된 갑자본 대동여지도 판본을 포함한 보물로 지정된 16종의 지도 중 3종을 공개한다. 특히 정조 연간에 제작된 한성부 지도인 도성도를 통해 도성 내부의 인문 정보와 행정구역의 체계를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도의 아름다움과 위엄을 강조하려 했던 옛 선조들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좌) / 대표적인 한국의 고지도인 갑자본 대동여지도(우)
규장각에서는 문자로 이뤄진 기록물들에 더불어 회화로 남겨진 풍부한 시각 자료도 관람할 수 있다. 3부 ‘붓으로 그린 산, 물, 그리고 사람’에서는 **실경산수화와 ***행사기록화라는 두 가지 회화 장르를 선보이는데, 조선시대 사람들이 영원히 간직하고자 했던 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겸재 정선(1676~1759)이 그린 금강산 그림인 ‘불정대’, ‘유점사’는 5년간의 규장각 자체 수리복원 과정을 마친 후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산 불정대와 유점사(좌) / 비단에 석채를 이용해 그려진 동문송별도(우)
근대 자료는 조선(대한제국)이 서구와 접촉하며 최신 근대 문명을 수집하고 이를 익혀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했던 노력이 보이는 기록물이다. 청나라에서 발간되어 조선으로 수입된 중국본 도서들은 당시 근대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고자 했던 노력을 잘 보여준다. 기록물들은 전시의 후반부인 4부 ‘서구학문과의 만남, 서구와의 조우’에서 살펴볼 수 있다. 5부 ‘구도, 지혜를 찾아서’에서는 유교, 불교, 도교 3가지 종교를 중심으로 옛사람들이 어떻게 삶의 방향과 지혜를 얻고 살았는지 흔적들이 보인다.
4부 ‘서구학문과의 만남, 서구와의 조우’ 전시 전경(좌) / 5부 ‘구도, 지혜를 찾아서’ 전시 전경(우)
기록유산들과 깊이 있는 교감을 나누며
규장각 소유 기록물들로 구현한 책가도
전시 포스터에 사용된 이미지이자 전시의 마지막 6부를 장식하고 있는 기록물은 규장각 소유 기록물들로 구현한 책가도(冊架圖)이다. 학문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책가도는 조선시대 민화 중 하나로, 주로 서가 형태를 중심으로 하여 책과 문방구, 도자기 등이 배치된 정물화풍의 그림이다. 책가도의 앞쪽에는 화성성역의궤, 악학궤범, 동의보감, 동문선,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전시된 책의 제목을 표기해두었다. 조선시대의 책은 종이의 특성을 고려한 가로로 눕혀 보관하는 방식이었는데, 관람객들은 책가도를 통해 세로로 배치하는 현재의 서가 배치방식이 아닌 책을 눕혀 놓고 책 아래에 제목과 권수를 기입하여 원하는 책을 찾아보는 과거의 서가 배치를 볼 수 있다.
김희경 규장각 학예연구사는 “규장각 전시실은 우리의 역사와 정신을 담은 수백 년의 기록유산을 직접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라며 “일상에서 벗어나 기록이 간직한 시간의 흔적을 느껴보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 기록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지 전시실에서 직접 만나보시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한 학기 동안 진행되는 상설전이니 여유롭게 규장각을 방문해 과거의 다양한 기록물을 별처럼 수놓은 본 전시를 통해 과거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기록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왕토왕민: ‘나라의 모든 땅은 왕의 소유이며, 그 토지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모두 왕의 신하’라는 옛 동아시아의 사상
**실경산수화: 실제 자연경관이나 명소를 소재로 그린 산수화
***행사기록화: 특정 행사나 의식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그림
서울대학교 학생기자단
우현지(지리학과)
miah01@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