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세 전시회 포스터
무기세의 그림자 속 현대미술
끊임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인간은 톱니바퀴를 멈추지 않기 위해 지구를 망가뜨리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나, 군사주의를 통한 부의 추구는 정치, 과학, 교육,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등 사회의 모든 영역을 오염시키고 있다. 이번 서울대 미술관(SNUMoA)의 ‘무기세(The Weaponocene Epoch)’ 전시의 기획 의도에 따르면, 현재의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면 인류세(Anthropocene)에서의 멸종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날 것인가의 문제이다.
현재의 패러다임을 반영하듯, 현대미술 역시 군사력과 무기에 대해 지나치게 수용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무기가 초래하는 폭력과 파괴는 피할 수 없는 비극이 아니라 반드시 막아야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필요악’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무기세’ 전시는 무기 생산, 방위산업, 그리고 전쟁이 환경뿐만 아니라 인간성의 본질과 미래에 미치는 치명적인 영향에 대해 비판적으로 탐구한다.
서울대학교 미술관(SNUMoA)에서 전시되는 이번 작품들은 현대의 무분별한 군사주의 속에서 예술이 취해야 할 태도를 과감하게 재정의하며, 무기가 단순한 전쟁 도구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스며들어 있음을 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무기화된 일상(Weaponized Everyday Life)’, ‘구경거리로 소비되는 무기(Weapon as Spectacle)’, 그리고 ‘무기세, 익숙한 미래(The Weaponocene, A Familiar Future)’ 총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기화된 일상(Weaponized Everyday Life)
전시회에 들어서면 허보리 작가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그녀의 작품들은 얼핏 보면 정교하게 만든 대포나 총기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다. 정장, 넥타이, 와이셔츠 등 전형적인 직장인의 복장에 사용된 천들이 꿰매어져 하나의 무기를 형상화하고 있다. 무기의 공격적 이미지와 부드러운 소재가 대비를 이루며, 현대 사회에서 ‘생존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드러낸다. 이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우리를 옭아매는 방식을 시각화한다. 〈소프트 K9(Soft K9)〉과 〈쓸모없지만 필요한 M2 기관총(Useless but Necessary M2 Machine Gun)〉은 우리가 속한 사회 구조에 내재된 폭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허보리 작가의 〈소프트 K9〉
강홍구 작가는 사진, 회화, 콜라주 등 다양한 매체를 결합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일상적인 풍경 속에 흩뿌려진 전투함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폭력과 전쟁의 위협을 포착한다. 전투기와 전투함이 평화로운 자연경관과 공존하는 그의 작품들은 분단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상기시키며, 전쟁과 군사적 긴장이 우리의 삶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강홍구 작가의 〈무인도〉 시리즈
구경거리로 소비되는 무기(Weapon as Spectacle)
권기동 작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속 장대한 전투 장면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붓터치의 유화 작품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국가의 군사력이 어떻게 하나의 구경거리로서 포장되는지 보여주며, 전쟁의 잔혹함이 미국식 군사 우월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의 영광스러운 서사로 대체되는 현실을 꼬집는다. 특히 〈부산-USS 미드웨이(Busan-USS Midway)〉와 〈부산-USS 칼 빈슨(Busan-USS Carl Vinson)〉은 첨단 군사 기술과 자본에 대한 과도한 문화적 찬사가 인간의 감수성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비판적 질문을 던진다.
권기동 작가의 〈부산-USS 미드웨이〉와 〈부산–USS 칼 빈슨〉
무기세, 익숙한 미래(The Weaponocene, A Familiar Future)’
정전 이후, 미군은 매향리 행정 구역을 미 공군 전용 사격장으로 점령했다. 수십 년간, 전투기와 총격 소리는 지역 주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이로 인해 생계와 안전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강용석 작가는 흑백 사진을 통해 군사적 점령이 지역에 남긴 폐허를 기록한다. 그의 작품들은 군사 활동 이후 황폐해진 상태로 남겨진 대지를 세밀하게 포착하며, 빈 탄피와 잔해만이 뒹구는 풍경을 담아낸다.
강홍석 작가의 〈매향리〉
이번 ‘무기세’ 전시는 2025년 5월 4일까지 진행된다. 세계적으로 만연한 군사주의와 그 영향에 대한 다양한 예술적 반응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이니 직접 체험해볼 것을 추천한다.
원문: 이희서 (영문 학생기자단, heeseolee@snu.ac.kr) 영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