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대표작 ‘오감도’ 발표 90주년을 맞이해 ‘시인 이상 화가 이상 건축가 이상’ 전시회가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개최되었다. 그간 ‘작은전시회’ 시리즈를 통해 다양한 전시를 개최한 바 있는 중앙도서관은 소장 문헌의 발표 9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전시를 기획하였다. 중앙도서관 본관 6층 고문헌 자료실에서 12월 9일부터 1월 31일까지 연장 운영되어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전위적이고 독창적인 이상의 예술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시인이자 화가, 건축가였던 이상의 다면적 예술 세계를 담은 전시
이번 전시에서는 이상이 일본어로 발표한 초기 연작시, 건축 잡지의 표지 디자인, 경성고등공업학교 시절의 다양한 기록들이 공개되었다. 이상은 건축, 회화, 시를 넘나들며 실험적인 창조를 통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전시장의 작품들은 그의 예술이 시각적 요소와 공간적인 요소를 아우르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일본어 건축 잡지 『조선과 건축』에서 그는 건축학적 사고와 시적 상상력을 결합한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는 이상이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미술과 건축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예술가였음에 주목한다. 이상의 작품들이 시대순으로 배치되어 매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적 재능을 갖고 있었던 이상의 입체적인 창의성이 관람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전시장을 인상 깊게 둘러본 한 관람객은 “이상이 건축을 전공하고도 시를 썼다는 사실이 놀라웠다”라며 “그만의 독특한 세계가 정말 매력적이다”라고 감상을 전했다. 이처럼 시, 그림, 건축의 경계를 아우르는 이상의 작품들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이상을 잘 모르던 사람들도 이상의 예술세계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오감도」 발표 90주년 기념 전시의 매력이다.
‘오감도’를 중심으로 펼쳐진 전위적 실험
전시의 중심에는 1934년에 발표된 연작시 ‘오감도(烏瞰圖)’가 있다. 기존의 시 형식에서 벗어나 언어와 기호를 실험적으로 배열하면서 새로운 시적 형태를 창조한 ‘오감도’는 독자적인 관점으로 세계를 이해한 이상의 시선을 보여준다. 또한, 전시는 ‘오감도’와 일본어 연작시 ‘조감도’와의 비교를 통해 이상이 만들어낸 시적 세계의 독창성을 보여준다. 특정 사물에 상징적 이미지를 결합한 이상의 작품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봐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전시 기획을 맡은 서울대 중앙도서관의 최민지 연구원은 “이상이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한편, 그의 전공이 건축이었다는 사실 역시 중요하다”라고 강조하며 그가 가진 예술적 전위성의 기초를 설명했다. 그는 “건축 기사로서 이상의 활동은 그가 시에서 기하학적 사고와 물리학 용어를 활용하게 된 배경을 잘 설명해 준다”라며 이상이 건축학에서 얻은 지식이 그의 시적 상상력과 어떻게 결합되었는지를 설명했다. 예컨대 이상의 연작시 ‘선에 관한 각서’는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현대 기하학으로의 발전 과정을 시적 텍스트에 담아내며 고전 역학에 해당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조감도’는 하늘을 나는 새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본 것으로, 이상이 건축 잡지에서 조감도를 자주 접했기 때문에 이러한 시적 상상력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이상이 건축 기사로 일하면서 접한 조감도가 이상이 구축한 시각적 언어의 세계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지적했다.
중앙도서관의 전시 ‘시인 이상, 화가 이상, 건축가 이상’에서는 이상이 문학, 건축,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보여준 예술적 실험을 한 곳에서 접할 수 있다. “이상이 얼마나 다채로운 예술가였는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라는 관람객의 감상처럼, 전시는 이상이 한국 문학뿐만 아니라 한국 예술 전반에 끼친 영향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한다. 초기작인 일본어 시를 비롯해 화가와 건축가로서의 이상의 작업물들, 학생 시절의 습작과 일람 등을 찾아볼 수 있는 전시장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던 이상의 세계로 초대받는다. 이상의 글과 그림을 활용한 기념엽서 역시 관람객에 한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으니 신년을 맞이하여 고문헌 자료실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대학교 학생기자
김진영(작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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