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학 및 인문학연구원의 공동 주최로 “2024 인문학 신임교수에게 듣는다 (1)”이 지난 5월 1일(수) 인문대학 7동 국제회의실(308호)에서 진행됐다. 올해로 3년째를 맞은 이 행사는 인문대학 신임교수들의 연구 관심사 공유를 취지로 학기마다 열려, 흥미로운 배움과 교류의 자리로 역할하고 있다. 이번 학기도 학부생, 대학원생부터 교수진까지 다양한 청중이 함께했다. 강연에 앞서 인문대학 강창우 학장(철학과)은 개회사를 통해 “점점 늘어가는 인문대학 식구들과 서로 소통하고, 인문학 연구가 얼마나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알아가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라고 격려했다.
개인과 사회의 이야기를 사유하는 학문
첫 순서로는 백승무 교수(노어노문학과)가 “내면연기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그는 연극을 하거나 관람할 때 사람의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연기의 과정에 동원되는 창의성의 메커니즘은 무엇인지, 훌륭한 극을 만드는 원칙과 비법은 무엇인지 등의 폭넓은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본 발표에서는 한국에서 내면연기*가 잘못된 개념으로 고착화됐다는 지적과 함께,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수업>을 조명했다. 진실한 감정적 체험을 다루는 내적 기술, 신체 행위로써 심리적 충동을 완전하게 표출하는 외적 기술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배우가 몸의 감각을 관객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선 탄탄한 기본기 훈련이 뒷받침돼야 하고, 스타니슬랍스키 저작의 직역본을 비롯한 연기론의 부흥이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됐다. 연극을 매개로 재미와 깊이를 겸비한 인문학 교육이 살아나는 미래를 그려보게 되는 자리였다.
다음으로 이하나 교수(역사학부)의 발표 “사회문화사에서 공공역사로 – 한국사에서 문화의 문제를 사유하기”가 이어졌다. 이 교수는 다큐멘터리, 영화, 드라마 기획자로서 활동한 경험을 거쳐 대중, 감성 등의 키워드로 역사를 탐구하기에 이르렀다. 현재는 대중문화 생산물을 일종의 사료로 이해하고, 문화현장의 의제와 학문적 의제를 서로 교차해 확산시키는 작업을 주된 과제로 삼고 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역사공장 및 공공역사문화연구소 법인을 설립해 운영 중이기도 하다.
개인과 사회의 이야기를 사유하는 학문 강연에 따르면 공공역사(public history)란 학계 밖의 역사, 즉 역사의 활용·재현·실천을 비롯해 대중이 역사와 관계 맺는 모든 양식이다. 최근 공공역사에 대한 수요는 높은 반면, 개인화된 디지털 매체와 반지성주의 풍조가 위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 전공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고 있다. 국내 문화사 연구에 아직 철학과 방법론이 부재한 가운데, 이 교수는 “K-공공역사의 구체성 규명 및 이론화”에 힘쓰고 있다. 역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는 그의 시도는 우리가 시대정신을 한층 뚜렷하게 마주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양한 표현을 세심하게 바라보는 시선
불어불문학과 이선우 교수는 주로 프랑스 영화를 연구하지만, 이날 발표에서는 “경계를 허무는 영화적 상상력 – 아프로퓨처리즘의 예”라는 제목으로 동시대의 아프리카 영화를 다뤘다. 1993년에 처음 언급된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은 아프리카 특유의 문화와 역사를 새로운 기술, 미래적인 스타일과 융합한다는 개념이다. 본래 미국에서 음악으로 시작됐으나 지역적·장르적 확장이 일어나, 아프리카에서는 2000년대부터 SF 영화의 형태로 꾸준히 등장해왔다.
예시로 살펴본 작품 〈모차르트 구역〉의 경우, 주인공의 성별이 바뀌는 비논리적 사건 속에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태도와 정체성이 돋보인다. 3차 세계대전 이후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품지>는 환경주의와 여성주의가 결합된 주제 의식과 더불어, 진보의 가치에 의문을 던지는 아프리카적 관점을 품고 있다. 이처럼 신선한 소재와 메시지를 당당하게 담아내는 젊은 아프리카 영화는 이전보다 넓은 관심을 받고 있고,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제작과 배급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 교수는 “우리도 아프리카 영화를 접할 기회가 점점 많아질 것이다”라며 “10년 뒤면 세계적인 영화제에서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마지막으로는 최윤지 교수(국어국문학과)의 “사용역에 따라 나타나는 한국어 문장의 패턴 찾기” 발표가 있었다. 다양한 한국어 구문을 귀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문법 현상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연구였다. 사용역(register)이란 언어가 쓰이는 상황의 성격에 따른 텍스트나 담화의 종류를 뜻한다. 일상 대화, 신문 기사, 소설과 같이 세부적으로 분류할 수도 있고 구어와 문어의 이분법을 택할 수도 있지만, 최 교수는 ‘사용역의 자질’에 주목했다. 예컨대 통사 융합 현상은 발화의 실시간성이라는 자질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고, 방송 내레이션에 자주 출현하는 명사문은 격식성, 계획성, 비-상호작용성 등의 변인들이 관여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앞으로의 과제는 한국어에서 유의미하게 발견되는 패턴을 다른 언어들과 비교하는 것이다”라며, 외국어 전문가와의 공동 연구 기회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여러 맥락에서 언어 형식과 기능의 대응을 찾으려는 호기심과 열정에 공감할 수 있는 강연이었다.
작년과 올해 본교에서 힘찬 첫걸음을 내딛은 네 명의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요즘 인문학에서 어떤 질문과 탐구가 이어지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이번 강연 또한 하나의 뜻깊은 출발점으로, 각각의 주제를 발전시키고 적용할 향후의 여정에도 많은 응원이 전해졌다. 한편 인문대학 신임교수 강연은 2학기에도 예정돼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새로워지는 인문학 교육 및 연구의 현장을 따라가다 보면, 더욱 밝은 지성으로 우리의 삶과 문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내면연기란 인물 내면의 사고 과정이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연기 기법을 의미한다.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1863~1938)는 러시아의 연극 연출가·배우·이론가로, 생전 독자적인 연기 교육 및 훈련 시스템을 확립해 저술로 남겼다.
***통사 융합은 문장 내 동일한 성분이 중복되는 현상이고, 명사문은 서술어가 아닌 명사구로 마무리되는 문장을 가리킨다.
서울대학교 학생기자
최하영(언어학과)
harongeee@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