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로써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총 18건, 그중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하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총 6건이 됐다. 규장각은 이를 기념하여 지난 1월 29일(월)부터 세계기록유산 특별전 “우리의 기록, 인류의 기억”(Archives of Korea, Memories of the World)을 진행하고 있다. 전시는 8월 16일(금)까지 이어지며,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방문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생생한 기억 속으로
전시실에 들어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유산은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 태조부터 철종 시기까지 472년간의 기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으며, 규장각에서는 전기 실록과 후기 실록의 원형을 두루 볼 수 있다. 『중종실록』에는 “이 붓과 먹으로 나의 모든 과실을 숨김없이 쓰도록 하라”라는 명령이 쓰여있는데, 이처럼 국왕을 찬양하기보다 객관적 사실을 기록하고자 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왕조에서 출간된 기록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다. 『선조실록』의 경우 수정실록을 작성했음에도 후대에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원본을 보존했다. 전시를 통해 실록을 햇볕에 말리고 바람을 쐬었던 포쇄(曝曬) 작업에 관한 설명과 시대에 따라 바뀐 실록의 보존처에 대한 정보도 살펴볼 수 있었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 비서기관인 승정원에서 관리했던 문서다. 사관이 속기로 작성한 초책(草冊) 페이지가 눈에 띄는데, 이 기록들은 보완을 거쳐 국정 참고자료로 쓰였다. 일성록은 날마다 스스로를 돌아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국왕이 직접 열람·수정했기 때문에 본문 중 국왕은 모두 1인칭(予)으로 표기돼 있다. 조선왕조의궤에는 각종 의례나 행사에 대한 글과 그림이 상세히 수록돼 있어, 우리 선조들의 투명하고 철저한 기록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12차례 일본에 파견됐던 사절단의 외교 및 여정 기록을 담고 있다. 타국과의 우호적인 공존, 활발한 문화 교류의 모습이 돋보여 인류 보편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김희경 학예연구사는 “이런 자료들이 없었다면 조선시대가 어떤 사회였는지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수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과거에 매일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가치관과 쟁점들이 있었는지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기록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전시 해설로 도움을 준 조용진 도슨트(철학과·20)는 “유네스코가 우리 선조들의 기록들을 높이 평가했지만, 막상 우리는 기록의 수신자로서 그 가치를 잘 알지 못한다”라며 “조상들이 왜 이러한 기록들을 남기고자 했으며, 왜 이것들을 전쟁 중에도 지키려고 했는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함께 만들고 공유하는 기록의 가치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1894년부터 1895년까지 농민들이 자유와 평등을 위해 봉기했던 사건에 관한 자료들이다. 규장각에는 총 56종 137책이 소장돼 있으며, 정부 기록이 주를 이룬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동학의 교리와 가사가 담긴 책, 관리들의 수사 보고 문건, 전투 기록 등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전봉준공초』는 전봉준이 체포된 이후 진행됐던 신문(訊問) 기록으로, 다섯 차례의 문답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의 의도와 전개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신원 미상의 관군이 작성한 『공산초비기』에는 공주 지역에서 일어났던 각 전투의 상황이 지도로 그려져 있다.
박성일 학예연구사는 본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이유에 대해 “규장각이 지배층의 공문서를 많이 가지고 있다면, (정읍에 위치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은 민초들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라며 “근현대의 정치적 상황을 다각도로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큰 기록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송지형 학예연구관도 “최근에 등재되는 유산들은 여러 기관에서 갖고 있던 자료를 모아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조선통신사 기록물 역시 당대에 체계를 갖췄던 문건이 아닌 아카이브에 해당한다. 기록물의 가치를 인정받는 데 있어 후대의 사료 발굴 및 큐레이션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셈이다.
전시실에서는 총 20명의 학생 도슨트가 한국 문화자산의 가치를 나누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반 년마다 전시 해설 봉사자를 선발·교육하고 있는데, 매번 다양한 학과 소속의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한다. 한편 연구원에서는 자료 원문 데이터베이스화, 연구 공개와 교육·출판 등에도 힘쓰고 있다.
단일 기관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이처럼 풍성하게 선보일 수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학예연구부에서는 “쉽지 않은 기회인데, 학내에 위치해 있으며 무료 개방이니만큼 학생들이 전시에 많이 찾아오면 좋겠다”라고 입을 모았다. 역사 기록은 인류가 문명과 공동체 사회를 발전시키는 과정, 다양한 관계 속의 희로애락을 포괄하는 소중한 기억의 증거물이다. 한반도에서 기록된 다채롭고도 특별한 서사를 가까이에서 만나고, 여전히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곱씹어보는 일은 분명 뜻깊은 경험이 될 것이다.
서울대학교 학생기자
최하영(언어학과)
harongeee@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