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학년도부터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 세 학과가 역사학부로 통합됐다. 역사 연구의 폭을 넓히고 전반적인 커리큘럼을 개편해 사회적 필요에 걸맞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다. 역사학부는 새로운 교과목을 개설하고 다양한 학술행사를 기획하며 통합학부로서 첫걸음을 내딛었다. 출범 한 학기가 지난 지금, 역사학부 통합의 배경과 이점, 차후 실행과제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오랜 기간 이어진 논의로 완성된 통합, 시대상에 걸맞은 연구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발판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 세 학과(이하 ‘3사과’)가 전공별로 각각 7명의 신입생을 뽑던 예년과 다르게 올해부터는 학부 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해 28명의 학생이 역사학부에 입학했다. 학과를 정하지 않고 입학한 신입생은 역사학부 세미나, 역사 공부의 기초 등의 공통 교과목을 수강한 이후 2학년에 세 가지 전공 중 하나를 주전공으로 택한다. 3사과 공동체에 큰 변화를 가져온 역사학부의 출범이 단기간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지난 2004년에 정운찬 전 총장의 지지로 발의된 통합 안건은 사학 계열의 발전방안을 연구하는 내부 논의로 이어졌다. 그리고 2016년에 3사과의 모든 교수가 동의하는 통합안이 확정되고, 같은 해에 인문대 14동 건물을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흩어져 있던 3사과 교수들이 한 건물로 모이며 통합의 발판이 마련됐다. 최종적으로는 2020년에 서울대 본부가 제안한 정시 인원 확대안에 사학과가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통합이 승인됐다. 통합안을 확정 지은 이후 역사학부는 교과과정 개편을 위해 이노에듀(Inno-Edu)* 사업을 진행하고 통합시 발생할 문제를 선제적으로 의논하며 통합의 기반을 닦았다.
역사학부의 통합은 역사학을 유기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초기부터 통합 논의에 관여했고, 현재 역사학부 역량강화사업 단장을 맡고 있는 박흥식 교수(서양사학전공)는 “역사학부는 연구와 교육 측면에서 분과로 인한 부작용이 있었다”라며 “역사학 본연의 통합성을 복원해 학문적 역량을 강화하고자 한다”라고 운을 뗐다. 박 교수는 통합을 통해 학문 및 학제 간 교류를 활성화해 사회적 필요도가 높은 비교사 및 관계사의 연구 인력 양성도 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통합은 연구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학업과 진로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 학생들은 타 전공의 학우들과 교류하며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고 1학년에 개설되는 공통 교과목을 통해 역사학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학부 통합의 초기 단계에서 학생들은 학과에 대한 정체성과 소속감이 약화할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역사학부는 다양한 창구를 마련해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했고, 점차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아졌다. 박 교수는 “통합과 관련해 좋은 의견이 있다면 구성원에 상관없이 언제나 편하게 연락 달라”라며 내부의 의견을 반영해 더욱 완성도 높은 통합을 일궈내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한편 박 교수는 역사학부의 통합에서 주의해야 할 점 역시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역사학부의 통합은 보편적인 주제를 연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희망적이지만, 반대로 개별 주제의 전문 연구 인력 양성에 어려움을 겪게 될 우려도 있다. 또, 특정 전공으로의 쏠림 현상과 함께 희소 전공에 대한 관심 부족이나 소수 교과목 폐지 등의 문제가 예상된다. 통합 첫해인 만큼 아직은 큰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역사학부는 기존처럼 학생들이 다양한 전공에 관심을 갖는 것과 각 연구 분야에도 적절하게 인력이 배치되는 것을 목표로 정진하겠다 밝혔다.
통합과 함께 시작된 다양한 지원 사업, 통합 역사학부의 출범을 알리는 콜로퀴움
역사학부 통합을 준비하던 2022년, 역사학부 연구·교육 역량 강화 사업단이 꾸려졌다. 기획위원회는 연구책임자 1인과 3사과의 전임교원 각 2인을 포함해 총 7명의 교원으로 구성됐다. 학제 간 공동 연구를 활성화하고 후학 양성을 지원하고자 시작된 연구·교육 역량 강화 사업은 크게 ▲역사연구소 중심의 연구역량 강화 사업 ▲학부생, 대학원생 역량 강화 사업 ▲소통 강화 사업 세 갈래로 나뉜다. 사업단은 역사연구소와 협력하여 연 1회 이상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기획 총서를 집필 및 출간할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학부생 대상으로는 독해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원전 강독 강좌를 개설하고 대학원생과 학부생을 연결해 멘토·멘티 세미나를 진행하는 등의 교육 기회를 확대할 계획이다. 발전적인 통합을 위해 구성원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개최하는 것과 함께 학술 답사지역 계획안을 수립하고 자료를 생산하는 일도 역량 강화 사업단이 맡고 있다. 사업단은 이 밖에도 연구, 교육 정보를 공유하는 통합 자료실을 학부생 주도로 구축하기 위해 관련 학부 교과목을 개설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역사학부의 통합과 함께 학술행사 역시 의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연구·교육 역량 강화 사업단은 국사학과 BK 교육연구단과 함께 역사학부 출범을 기념하며 역사학을 기후와 생태환경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생태 환경사 기획 강연을 준비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총 6차례 진행된 이번 콜로퀴움은 ‘기후·생태환경의 시각으로 역사를 다시 보다’를 대표 주제로 해 인간 중심에서만 바라보는 역사를 벗어나 새로운 역사학을 만들어 가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이번 강연은 서울대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지난 네 차례의 강연은 ▲생태 환경사 ▲생태환경과 질병 ▲기러기, 감귤, 청어: 한 줄 사료로 읽는 동아시아 기후 변동의 역사 ▲역사 속의 동물: 포스트 휴머니즘 역사학의 가능성을 주제로 진행됐다.
지난 7월 27일(목)에는 7동에서 ‘20세기 한국의 경제개발과 환경’을 소주제로 동북아역사재단 소속 양지혜 연구위원의 세미나가 진행됐다. 강연에서는 한국 근대경제사연구를 검토하고 이를 생태 경제사적 관점에서 다시 살피는 작업이 수행됐다. 양지혜 연구위원은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를 주요하게 짚었다. 구체적으로 일제 강점기에 진행된 산미증식사업에서 수리시설 건설로 야기된 자연재해 증가와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져 온 광공업 개발로 인한 공해 문제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환경 파괴에 대한 무지를 꼬집으며 “개발이 환경에 미친 영향을 논의하는 다학제적 연구를 통해 개발지상주의 너머를 바라보는 시각을 정립해야 한다”라고 강연을 정리했다. 역사학부는 앞으로 오프라인 교육 행사 시에 줌을 이용한 하이브리드 방식을 도입해 참여자 수를 높일 계획이다. 2학기 역사학부 콜로퀴움은 ‘현재의 역사적 구성’을 주제로 9월부터 이어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시진핑 시대의 중국, 미‧중 관계와 한반도 등 현대사의 동향을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강연이 개최될 예정이다.
역사학부는 이제 막 새로운 발걸음을 뗐다. 박흥식 교수는 통합에 관해 “모든 구성원이 합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해서 아직은 변화가 더디게 보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구성원의 생각을 존중하는 동시에 역사학부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학문 단위의 역할을 다하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도 덧붙였다. 역사학부의 강연과 발전 방향, 지원 사업 등과 관련한 소식은 메일로 전달되는 역사학부의 뉴스레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노에듀(Inno-Edu): 혁신을 뜻하는 ‘Innovation’과 교육을 뜻하는 ‘Education’의 합성어로, 혁신 인재 양성을 위한 신규 교과목 개설, 교수법 점검 등의 교육과정 개편 사업
서울대학교 학생기자
남나리(수학교육과)
narista00@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