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행정대학원(57동) 203호에서 서울대학교 인권헌장에 대한 미래세대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정책포럼이 마련됐다. 서울대학교 인권헌장은 대학이 구성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서로 존중하는 환경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서 지난 2020년 1월, ‘서울대학교 인권규범 제정에 관한 연구’에 의해 제안된 바 있다. 이후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설문조사 및 간담회가 실시되고 자문 회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2020년 팬데믹 상황에서 비대면 학습환경이 되면서 학내 인권문제를 논의할 기회나 학생들의 관심이 줄어들었고 제정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다양성위원회의 주관으로 열린 이번 포럼은 다시금 서울대 내 인권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묻는 자리가 되었다.
차별금지와 평등권 조항 높은 찬성률 보여
인권헌장 제정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앞으로 서울대를 이끌어갈 미래세대의 공통된 인식을 끌어내는 것이다. 고길곤 교수(행정대학원)를 필두로 한 연구진은 지난 10월 18일부터 11월 3일까지 재적 중인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학내 설문조사 프로그램을 활용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으며, 대상자 33,573명 중 5,363명이 응답해 15.97%의 응답률을 보였다. 2019년 조사 당시의 응답자 수에 비해 약 8배 이상 높은 수준이었다.
설문 문항들은 인권헌장의 개별 조항들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찬반을 묻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모든 항목이 95% 이상의 높은 찬성률을 보였으며, 인격권과 차별금지 조항이 인권헌장에 꼭 포함되어야 할 주요 권리로 나타났다. 성별, 국적, 인종, 장애, 출신 지역과 학교, 연령, 종교, 임신과 출산,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사회‧경제적 배경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차별금지와 평등권 조항은 97.2%의 찬성률이 나타났으며, 이를 ‘동의할 수 없는 조항’으로 꼽은 학생은 전체 응답자 중 80명이었다. 인권헌장에 대한 관심도는 ‘매우 관심이 있다’와 ‘다소 관심이 있다’에 52.4%가 응답함으로써 지난 2021년 조사 시의 27%에서 대폭 상승했으나, 학부생의 관심이 여전히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인권헌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76.5%가 동의를 표했다. 한편 학내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한 비중은 24.2%로, 2021년 33.3%이었던 것에 비해서 낮아졌다.
반성과 기대, “이제는 다음으로 가야 할 때”
연구 발표에 이어진 토론에서는 조사 결과에 대한 여러 전문가의 분석과 제언이 이뤄졌다. 김영오 학생처장은 “인권헌장에 관심이 낮거나 동의하지 않는 이유로 실효성이 의문이라는 의견이 있는 것은 학생들의 수요를 반영해야 하는 학생처가 반성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석호 교수(사회학과)는 “이번 조사는 ‘권리를 가질 권리’를 공론화했다는 데서 의의가 있다”며, 인권헌장 제정에 있어 신뢰를 확보할 자료라고 평가했다. 반면 “비교 대상이 되는 2021년 조사는 표본조사이지만 이번 조사는 전수조사”인 점을 지적하며, 그럼에도 “한계라고 할 수 있는 대표성과 문항 신뢰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보인다”고 했다. 이어서 지난 2020년 인권규범 제정에 대한 연구 책임자였던 송지우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인권헌장에 대한 동의율은 높지만 인권헌장에 대한 관심은 낮은 점을 들며, “인권헌장의 각 항목을 학내 규정에 반영하는 실질적 이행의 조건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학생들이 경험한 차별의 가해자로 에브리타임이나 스누라이프 등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가 가장 많이 지목됐다. 이에 송 교수는 “이들 사설 사이트는 대학의 직접 규제가 어렵기 때문에 간접적인 규제와 함께 결과적으로는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인권헌장 내용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도연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대학원총학생회가 대학원생들의 특수한 인권침해 경험에 주의를 기울여온 자취를 언급하며, 인권헌장이 더 다양한 구성원들의 학내 생활을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지은 전 총학생회장은 “인권헌장에 대한 높은 찬성률은 지금까지 인권헌장이 나아가는 데 있었던 논란들이 별로 유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하며, “이제는 의견조사나 합의를 넘어 다음으로 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정 패널 외에도 이날 포럼에는 다양한 학내구성원들이 참석해 발언권을 얻어 의견들을 개진했다.
학내 인권은 대학 구성원들이 동등한 인격적 가치를 가지고 교육‧연구‧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하며, 그 누구도 제도나 타인에 의해 차별받거나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한다는 데서 중요하다. 앞으로 서울대가 구성원들의 인권 의식의 성장에 나서고, 미래에 찾아올 더 다양한 인재들을 포용하는 데에 앞장서기를 바란다.
강도희 시니어기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nico7979@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