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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이들을 기리다 - 민주화열사 7인에 명예졸업증서 수여

2022. 8. 22.

오는 8월 29일, 제76회 후기 학위수여식이 열린다. 학생들에게 졸업이란 대개는 새로운 시작이지만 어떤 이에겐 완전한 마무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민주화운동 당시 미등록 혹은 사망 등의 이유로 제적돼 졸업하지 못했던 서울대생들이 그렇다. 이번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이들 중 일곱 명의 열사(▲경제학과 김태훈 ▲토목공학과 황정하 ▲원예학과 이동수 ▲국어국문학과 박혜정 ▲제약학과 이진래 ▲사회학과 김학묵 ▲서어서문학과 송종호)가 새롭게 명예졸업증서를 받는다.

명예졸업증서 수여 규정에 따르면 명예졸업증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희생하거나 크게 공헌한 자(제2조 제1호)나 본교의 명예를 빛내거나 학교발전에 크게 기여한 자(제2조 제2호)에게 수여한다. 서울대는 지난 2001년 박종철 열사를 시작으로 민주화운동 희생자의 공헌을 인정해 지금까지 총 58명의 졸업생에게 명예졸업증서를 수여했다.

열사라는 이름 뒤에 가려졌던 학생의 삶

독재정권 당시 서울대 관악캠퍼스는 학생들의 뜨거운 피가 스며든 공간이었다. 교정 곳곳에 사복경찰이 포진하고 집회가 모두 금지될 만큼 당시 상황이 삼엄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은 진로·부모님의 기대 등을 뒤로한 채 ‘민주화’라는 대의를 위해 멈추지 않았다. 그 와중엔 ▲김태훈 ▲황정하 ▲이동수 열사와 같은 안타까운 죽음도 있었다.

故 김태훈 열사
故 김태훈 열사

1959년 광주에서 태어나 1978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한 故 김태훈 열사(경제학과·78)는 동아리 MT에서 사고로 후배가 목숨을 잃었을 때 가장 먼저 상황을 알리고 기금을 모아 묘비를 세울 만큼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자발적으로 앞장섰다. 그는 가족들을 생각해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지만 1980년 5월 고향에서 일어난 광주항쟁 등을 겪으며 불의를 외면해야 하는 현실에 고통스러워했다. 1981년 5월 27일,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열사는 5·18 1주년 침묵시위 중 경찰에게 구타당하는 학우들을 창밖으로 목격하고 상체를 창밖으로 내밀어 “전두환은 물러가라!”라고 큰 소리로 세 번 외친 뒤 아크로폴리스 광장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그의 죽음 이후, 아크로폴리스 광장은 서울대인들에게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故 황정하 열사
故 황정하 열사

故 황정하 열사(토목공학과·80)는 금서를 읽고 토론하는 언더써클 ‘국제경제학회’에서 활동하고 야학 교사 활동을 하며 공장에서 일하던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는 유복한 본인의 가정과 한국의 시대 상황 사이의 괴리로 고통스러워하며 한동안 가족과 연락을 끊고 지내기도 할 만큼 학생운동에 반대하는 가족에도 본인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황정하는 1983년 11월 8일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는 시위를 계획했고 시위과정에서 경찰들로부터 피신하는 중 중앙도서관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서울대 내에 세워진 첫 민주열사의 추모비인 황정하의 추모비는 현재 중앙도서관 입구에 위치해 있다.

故 이동수 열사
故 이동수 열사

故 이동수 열사(원예학과·83)는 평소엔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이었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군에서 목격한 여당의 부정투표에 순응하지 않았고, 복학 후에는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다 잡혀가 고문당하기도 했다. 권위적인 상류층 가정과 사회는 그가 ‘비운동권’의 길을 택하게 했을지라도, 결코 그의 진보적인 사회의식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동수는 1986년 5월 20일 오월제 행사 중 학생회관 4층 옥상에서 “파쇼의 선봉 전두환을 처단하자”, “미제국주의 물러가라”, “어용교수 물러가라” 등을 외치며 분신·투신했다. 당시 과대표 이상욱 씨가 열사로부터 받은 편지에는 그의 유서가 있었는데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없을 때 인간은 노예가 된다.’라는 문장을 보아 열사가 민주화에 대해 가졌던 태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 열사는 학생운동에서 주요하게 다루던 주제가 아닌 어용교수나 일본제국주의에도 관심을 쏟으며 사회를 고민했다.

故 박혜정 열사
故 박혜정 열사

열사들의 죽음으로 비롯된 불꽃은 집단적 투쟁으로 직결되는 한편, 안타깝게도 개인의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983년 입학한 故 박혜정 열사(국어국문학과·83)는 문학을 사랑했지만, 글을 쓰며 문학을 도피처로 삼는 것을 시대 상황에 반하는 사치이자 허영이라 생각했다. 결국 열사는 1986년 봄, 본인이 쓴 원고를 불태우며 ‘부끄럽지 않은 빚 갚음’이라는 삶을 결심했다. 1984년 9월 권위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가두시위에서 연행돼 구류되기도 했던 그는 이동수의 분신을 목격한 바로 다음 날인 1986년 5월 21일 한강에서 투신했다. 열사의 유서 중 ‘아파하면서 살아갈 용기 없는 자, 부끄럽게 죽을 것…(중략)’이라는 대목에서 그가 죽음을 본인의 무력함을 해결할 유일한 수단이라 생각했다고 짐작된다.

국가 권력의 남용이 낳은 안타까운 죽음

80년대에는 비대한 국가 권력에 의해 물리·정신적 피해를 입는 이가 많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는 사례도 빈번했다. 민주화를 위해 힘썼던 ▲이진래 ▲김학묵 열사는 군 내에서, ▲송종호 열사는 군에서 얻은 후유증으로 인해 죽음을 맞았다.

故 이진래 열사
故 이진래 열사

故 이진래 열사(제약학과·79)는 총장 배 체육대회에서 응원단장으로 활동할 만큼 학교생활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학내 동아리 활동뿐 아니라 고향 광주에서 1980년 5월 민주화운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는 1981년 11월 입대해 카투사 배치 이틀 후에 사망했다. 군은 처음에 그의 죽음을 자살로 발표했지만, 이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군내의 가혹 행위와 입대 과정에서의 위법한 공권력 행사가 있었음을 밝혔고 2018년이 돼서야 국방부가 열사의 죽음을 순직으로 결정했다. 이진래 열사의 열정적인 대학생활과 민주화에 애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1979년 약학대 입학 동기 32명은 그의 한을 풀어달라며 명예졸업증서 수여 추천 서명 명단을 보내오기도 했다.

故 김학묵 열사
故 김학묵 열사

故 김학묵 열사(사회학과·79)는 5.18 1주기 침묵시위 중 김태훈의 투신을 목격하고 민주화운동에 발을 내밀었다. 열사는 1982년 5월, ‘광주 민중봉기 2주년을 맞이하여’라는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관련 유인물 배포하려다 체포돼 1년간 수원교도소에 수감됐다. 당시 집시법에 예비음모라는 죄가 없었음에도 억울하게 수감된 김학묵은 이후 출소해 활발히 노동운동을 했으나 수감생활의 후유증으로 큰 우울 증세를 보였다. 1984년 12월에 행방불명돼 다음 해 3월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그는 2008년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가 그의 죽음의 원인을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적 장애’로 인정함에 따라 이천민주화운동기념공원으로 옮겨졌다.

故 송종호 열사
故 송종호 열사

입학 후 독서토론을 하는 철학학회에 가입해 진보적 사상과 지식을 접했던 故 송종호 열사(서어서문학과·87)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에서 플래카드와 각종 유인물로 시민들을 결집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1988년에 고향 경북 구미로 낙향했으나 1989년 다시 상경해 서문과 내에서 투쟁 조직을 관리하는 조직부장으로서 각종 시위를 주도했다. 이후 열사는 ‘사발사련’이라는 사회과학 학습팀을 만들어 후배를 지도하기도 하고 총학생회 활동에도 힘썼다. 1991년 2월 군 복무 도중 발생한 갑작스런 그의 사망을 군에서는 질식사로 발표했으나 그의 죽음 뒤에 은폐 공작이 있었다는 의혹이 있다.

민주화운동 열사 7인에 대한 명예졸업증서 수여식은 오는 8월 29일 열릴 학위수여식에서 유족들의 대리 수여로 진행된다. 독재정권 시대를 제대로 돌아보고 열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행사가 되는 한편, 열사를 기억하고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위로가 될 것이다.

한편, 서울대 내에는 두레문예관 앞 4ㆍ19 기념탑부터 시작하는 민주화의 길이 조성돼있다. 이 길에는 김태훈, 황정하, 이동수, 박혜정 열사의 추모비도 포함돼있다. 명예졸업증서 수여와 민주화의 길 조성 등 서울대의 관련 사업들을 눈여겨보며 열사들을 기리는 데에 구성원 모두가 동참할 수 있길 바란다.

*가두시위: 길거리에서 하는 시위를 의미한다.

서울대 학생기자
남나리(수학교육과)
narista00@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