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은 지난 4월 28일(목) 오후 4시부터 사회과학대학 국제회의실(16동 349호)에서 2022년 제1회 고전 강좌 “플라톤의 〈국가〉: 사회과학 고전으로서의 열 가지 테마”를 개최했다. 강좌는 대면과 비대면 줌(Zoom)에서 동시에 진행됐으며, 현장에는 20명의 청중이 참석하고 61명의 참가자가 온라인으로 함께했다. 이번 행사는 김주형 교수(정치외교학부)의 사회 아래 고전정치철학 전공의 박성우 교수(정치외교학부)가 한 시간 가량 플라톤의 〈국가〉에 담긴 열 가지 현대적 메시지에 대해 발표한 후 청중의 질문에 답하는 순서로 이뤄졌다.
고전에서 잊힌 근본의 문제를 찾다
기원전 380년에 작성된 대화록 〈국가〉를 오늘날 사회과학적인 시각에서 다시 읽는 강좌의 의의에 대해 박 교수는 우선 “인간 본성이 구현된 공동체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전이 현대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는 안내서는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고전이 탄생한 당시의 문제의식을 이해하고 당대의 사람들과 현대인이 시대를 뛰어넘어 공유하는 문제의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박 교수는 21세기의 공동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되어줄 플라톤의 〈국가〉 속 열 가지 메시지를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탈진실의 위협이 커지는 21세기에 진리는 어디에 위치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중요하다. 이러한 물음은 오늘날 우리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사실이며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고, 가짜 뉴스, 포퓰리즘 등이 만연한 가운데 정치적 진리 역시 뚜렷하게 정의하기 어렵다는 지적에서 출발한다. 박 교수는 이와 관련해 진리가 정치를 지배할 수 없다는 플라톤의 생각에 주목한다.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 정치 속 정치인으로서의 철학자는 진리에 능통하다기보다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사람이다. 철학과 진리가 정치에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모든 지식과 해결법을 갖지는 않으며, 우리는 철학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태도를 갖고 정치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후 박 교수는 ‘공정한 사회란 무엇인가', ‘세계의 미래, 지구의 미래는 희망적인가’, ’종교는 인류의 구원자인가, 잠재적 파괴자인가’ 등에 대해 플라톤의 〈 국가〉를 토대로 답변을 제시했다. 발표의 마지막에는 ‘기술은 인간성을 지배할 것인가’라는 자연과학과 기술 공학 분야와 관련된 주제도 언급됐다. 이에 관해 박 교수는 대화와 문답을 통해 앎을 끌어냈던 플라톤의 철학에 비추어, 인간만이 지식을 추구하는 철학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련해서 곧바로 이어진 질의응답 세션에서 지구환경과학부의 한 재학생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지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으로 기술이 발달한다면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하도록 프로그래밍이 된 인공지능 챗봇이 철학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인간보다 뛰어난 지혜를 가진 AI를 만들 수는 있어도, 지혜와 진리 자체를 사랑하는 ‘철학적 AI’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융합적 사회과학 연구의 요람, 사회과학연구원
1976년 설립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은 △비교문화연구소 △사회복지연구소 △사회혁신교육연구센터 △세계경제연구소 △심리과학연구소 △중국연구소 △한국정치연구소 △행복연구센터의 8개 분야 연구소로 구성돼있다. 연구원의 핵심 역할은 산하 연구소의 활동에 대한 행정적 지원을 통합적으로 수행하고 개별 연구소가 진행하기 어려운 공동의 학술 활동을 주도하는 데 있다. 특히 연구원에서 발간되는 연구 총서와 정기적으로 열리는 세미나는 연구소 간 교류와 학제적 연구를 돕고 있다. 연구원에서 펴내는 ‘사회과학연구총서‘와 ‘학제간연구총서‘는 간학문적 학술 활동을 도모하고 연구 성과를 학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가장 최근에는 기계와 함께하는 인간의 미래에 대해 다룬 〈 호모마키나〉가 출판됐고 올해 말까지 사회과학연구총서와 학제간연구총서가 각각 1권씩 추가로 발행될 예정이다. 정기 세미나의 경우 달마다 개최되는 ‘연구 방법론 포럼‘에서는 국내외 사회과학 연구진들이, ‘월례 세미나‘에서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의 신임 교원이 강연을 진행한다. 연구원에서는 시기별 학문적 수요를 반영해 시의성 있는 연구 주제를 다루는 특별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한다. 2022년 1학기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5개의 학술회의가 열려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이 밖에 사회과학연구원과 한국정치연구소가 함께 주최하는 ‘한국 정치사 콜로키엄’과 같이 타 연구 기관과의 협업으로 이뤄지는 세미나도 있다.
고전 강좌 세미나는 고전 교육에 대한 연구자와 학생들의 지속적인 수요를 반영해 이번 학기부터 새롭게 운영되고 있다. 사회과학연구원장 안도경 교수(정치외교학부)는 “국내외에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가치문제의 혼란이 일어나는 현시대에 고전은 시대를 포괄하는 근본적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면서 고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담론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고전이 특정 학문 분과를 뛰어넘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보편적인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번 세미나가 자연스러운 학문 융합의 장으로 기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학내 구성원의 수요를 살피기 위해 시범적으로 두 차례의 강연이 계획됐으며, 4월의 강연에 8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한 만큼 2학기부터 고전 강좌 시리즈는 확장된 규모로 더욱 빈번하게 열릴 예정이다.
사회과학연구원에서는 올해 상반기 동안 17개의 세미나를 운영할 계획에 있으며, 현재까지 학술회의는 매번 5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는 등 학내 구성원의 많은 호응을 받으면서 진행되고 있다. 오는 6월 2일에는 신혜란 교수(지리학과)가 ‘이동을 통한 통치와 장소 만들기-코로나 시대의 사회적 항해’를 주제로 두 번째 고전 강좌를 진행한다. 사회과학연구원에서 열리는 다양한 학제적 논의의 장에 관심을 두고 학문의 시각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하길 바란다.
서울대 학생기자
이규림(언론정보학과)
gyu2129@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