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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세계일수록 빛을 발하는 과학적 상상력

2021. 2. 26.

지난 6일(토), 한적한 주말 저녁을 과학적 호기심으로 가득 채운 행사가 개최되었다. 바로 제28회 자연과학 공개강연이다. 1994년에 시작되어 올해 28회를 맞이한 자연과학 공개강연은 서울대의 대표적인 과학 나눔 프로그램으로, 대중에게 자연과학을 쉽게 전달하고 과학으로 소통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번 강연은 ‘불확실한 세계, 그래서 과학’을 주제로 서울대 자연과학대학과 비영리 재단인 카오스 재단이 주관했으며 인터파크가 후원에 참여했다. 본 행사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인해 최소한의 인원으로 진행됐으며, 사전 녹화 영상 송출과 실시간 질의응답을 병행해 진행됐다. 서울대 자연과학대학과 카오스 재단의 유튜브 계정, 그리고 zoom으로 생중계되어 누구나 손쉽게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공개강연 ‘불확실한 세계, 그래서 과학’의 행사 포스터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공개강연 ‘불확실한 세계, 그래서 과학’의 행사 포스터

불확실성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방법

이번 공개강연의 강연자로 나선 4명의 교수는 ‘불확실한 세계, 그래서 과학’이라는 주제에 맞게 불확실성의 세계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각 분야의 연구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선 서인석 교수(수리과학부)는 ‘수학으로 맞서는 불확실한 세계’를 주제로 수학의 보편적 원리를 설명했다. 서 교수는 “여러 복잡한 상황들에서 공통으로 성립하는 원리”로 보편적 원리를 정의하고 수학에서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보편적 원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서 교수는 그 예시로 번식을 통한 성씨의 확산을 나타내는 Galton-Watson 수형도를 코로나19 상황에 대입해 설명했다. 서 교수는 “성씨의 멸종과 확산이 자손의 수에 따라 결정되는 것과 같이 코로나19의 확산 양상도 감염 정도에 따라 좌우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 교수는 “Galton-Watson 수형도를 그려보면 계속해서 1명 이하의 자녀를 낳는 가문은 멸종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이른다”며 “이때 번식에서 중요한 ‘자손의 수’를 코로나19 상황에서는 ‘감염 재생산 지수’로 바꿔 대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 교수는 “한 명의 코로나 환자가 감염시키는 정도인 감염 재생산 지수가 1 이하일 경우 확산세가 멈출 수 있다”고 설명하며 보편적 원리가 현실 세계에서도 적용되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선보였다.

나한나 교수(지구환경과학부)는 ‘미지의 세계, 바다의 탐구’를 주제로 발표를 이어나갔다. 나 교수는 “해류의 움직임마저도 바람, 밀도차, 온도 등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며 오랜 역사에 걸쳐 해양탐사가 진행되었음에도 여전히 해양의 80%는 미지의 세계임을 설명했다. 한편 나 교수는 “해류의 움직임은 생태계와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며 엘니뇨 현상과 참치의 어획량 변화를 그 예로 들었다. 나 교수는 “태평양의 경우 평상시에는 동쪽과 서쪽의 온도 차이가 심한 편인데, 엘니뇨 현상이 발생할 때에는 따뜻한 해수가 동쪽으로 퍼지며 온도 차이가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때 따뜻한 수온에서 서식하는 참치는 엘니뇨 현상이 발생하면 온도 변화를 따라 동태평양까지 서식지를 옮긴다고 한다. 나 교수는 “이로 인해 참치 어획량의 분포와 국가별 어업 수익도 달라진다”며 해류의 변화에 따른 영향을 설명했다. 나 교수는 “엘니뇨는 원래 자연 변동의 일종이긴 하지만, 최근 들어 그 현상이 더욱 불규칙하게 관찰되고 있다”며 “기후 변화로 인해 해양의 움직임에 관한 원인 규명이 더욱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나 교수는 “바다는 늘 불확실했지만, 지구의 이상 현상이 최근 들어 더욱 빈번해진 것이 사실”이라며 안전한 바다를 위해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임을 강조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끄는 직관의 힘

연구 과정에서 과학자가 지녀야 할 끈기와 직관의 중요성도 이번 강연을 통해 강조되었다. 장혜식 교수(생명과학부)는 ‘GATC로 이루어진 세계, 우리 몸의 설계도’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장 교수는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역사를 설명하고, 그 과정에서의 과학자들의 노력을 역설했다. 장 교수는 “1990년대에 시작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는 15년 안에 인간 유전자 지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당시로서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기술은 평면의 유리판 위에서 DNA를 잘게 나누어 해독하는 방식이었기에, 유전체의 연속적인 정보를 빠르게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 교수는 “10년간의 연구 끝에 DNA를 쪼개지 않고도 유전체 정보를 카메라로 신속히 포착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다”며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가 빠르게 마무리될 수 있었음을 설명했다. 장 교수는 인간 DNA의 해독을 과학자들의 끈기가 이뤄낸 결과라 강조하고, “인간 유전체 정보 덕분에 코로나19의 백신 개발도 바이러스가 알려진 지 2주 이내에 착수할 수 있었다”며 인류가 일군 유전자 과학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역설했다.

마지막 발표자인 송윤주 교수(화학부)는 ‘큰 분자 작은 우주, 효소의 세계’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송 교수는 “효소는 복잡한 화학반응을 단시간에 일어나게 도와준다”며 효소의 기능과 역할을 설명했다. 송 교수는 우리 몸의 소화 효소의 작용을 대표적인 예로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체내 음식물 소화는 소화 효소에 의해 1~2시간이 소요되지만, 소화 효소가 없다면 같은 양의 음식물을 소화하기 위해 50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송 교수는 “효소의 가짓수는 20개의 아미노산의 무한한 제곱에 해당한다”며 “이 때문에 효소는 ‘작은 우주’라 불린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아미노산의 서열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효소가 선형으로 바뀌기도 한다”며 효소의 복잡성을 토대로 효소 연구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에 송 교수는 “이처럼 효소의 단백질 서열 조합은 무한하므로 연구의 난이도가 매우 높다”며 “연구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화학자의 지식과 직관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제28회 자연과학 공개강연은 코로나19로 인해 불확실성이 짙어진 현실에 대한 과학적 통찰을 생생히 전달하였다. 온라인을 활용한 실시간 질의응답이 동시에 진행되어, 청중들이 강의 내용에 관한 질문을 자유롭게 논의하며 과학적 호기심을 키울 수도 있었다. 행사는 마무리되었지만 강연 영상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과 ‘카오스 사이언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시청할 수 있으니, 과학의 즐거움을 생생히 체험하고 싶다면 접속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qg3VyX9JKkQ

* GATC: 유전자를 구성하는 염기의 네 종류로, 구아닌(G), 아데닌(A), 티민(T), 시토신(C)의 순서로 되어 있다.

서울대 학생기자
김세민(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