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치는 판소리와 대중음악 사이에서 절묘한 지점을 찾은 얼터너티브 팝 밴드다. 그들은 판소리 수궁가의 한 대목을 활용한 〈범 내려온다〉를 통해 누적 조회수 5억 뷰를 돌파하며 전 세계에 국악의 매력을 제대로 각인시켰다. 21세기의 판소리, K-흥으로 불리는 이날치의 목소리에는 누구도 하지 못했던,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했던 국악과 팝의 절묘하고도 아름다운 세계가 담겨 있다. ‘조선의 아이돌’인 이날치가 만들어내는 흥겨운 세계에 절로 어깨가 들썩거렸다.
21세기 조선으로 소환된 명창 이날치
이날치는 2018년 애니메이션 음악극 〈드라곤 킹〉에서 만난 장영규 감독의 제안으로 결성된 밴드다. 베이스에 장영규와 정중엽, 드럼을 치는 이철희와 서울대 국악과 출신 4명의 소리꾼 안이호, 권송희, 이나래, 신유진이 함께하고 있다. 이날치는 19세기에 활동한 이경숙 명창이 줄타기하던 젊은 시절 날치같이 날쌔게 줄을 잘 탄다고 해서 얻은 예명이다. 그의 소리는 나팔소리처럼 또렷했고 새소리와 똑같았다고 전해진다. 밴드를 결성하며 이름이 필요했는데, 싱싱한 날치의 느낌이 좋고 추구하는 음악인 ‘얼터너티브 팝’과도 잘 맞아 ‘이날치’로 정하게 됐다. “팝인데 팝 같지 않은 팝을 말해요. 대안적인 팝이라고 해석을 많이 하는데, 거창하게 대안까지는 아니지만 저희가 잘하는 걸로 팝 시장에서 살아남고 싶다는 거죠.”(안이호)
그들이 잘하는 국악으로 팝 시장에서 살아남고 싶다는 바람이 통했을까.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함께 출연한 한국관광공사의 홍보영상 ‘Feel the Rhythm of Korea’의 누적 조회 수가 5억뷰를 넘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서울 편 홍보 영상에 나온 음악인 〈범 내려온다〉는 ‘1일 1범’ 신드롬을 만들며 한국 사회를 그야말로 국악 열풍으로 만들었다. 열광한 대중은 이날치에게 ‘조선의 아이돌’이라는 별칭을 붙여 그들의 음악에 화답했다. “국악이라는 장르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이날치를 시작했거든요.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관심을 보면 국악의 가능성이 열린 것 같아서 무척 감사해요.”(신유진)
국악의 흥겨움이 차르르르 쏟아지다
이날치는 작년 5월 1집 〈수궁가〉를 발매했다. 수궁가는 이날치와 인연이 깊은 판소리다.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 연출과 장영규 음악감독이 모여 만든 작품인 〈드라곤 킹〉의 모티브가 수궁가였고, 〈드라곤 킹〉에서 만난 멤버들이 지금의 이날치로 모이게 됐다. “현존하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에 동물이 나오면서 풍자가 있고 판타지스러운 게 수궁가라고 생각했어요. 인물에 집중하게 되는 판소리는 아무래도 인물에 갇히게 되는데, 수궁가는 동물 세상에 인간사가 담겨 있잖아요. 그런 부분이 재미있었죠.”(권송희) 이날치는 ‘춤출 수 있는 음악’을 만들자는 음악적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들으면 어깨가 들썩거리는 음악. 간주만 들어도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의도일 터. 이날치는 가히 듣는 사람도 부르는 사람도 춤출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있다. “판소리로 음악을 만들었는데 왜 댄스음악처럼 만들고 싶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 제 생각은 저는 소리할 때 즐겁거든요. 소리꾼이 소리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국악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전달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젊은 소리꾼으로서 안타까운 부분이었죠. 그래서 춤출 수 있는 음악을 만들자고 했던 장영규 음악감독님의 방향성이 반가웠어요.”(이나래) 젊은 소리꾼이 모였기에 국악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에 안타까운 부분이 또 있었다. “국악에 춤을, 국악에 무엇을. 유난히 국악이 인격화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음악이라는 게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사람 없이 음악이 존재할 수 없는데, 애써 음악에 인격을 부여해서 이해하기보다 음악 하는 사람을 보면 문제가 훨씬 간단할 것 같아요.”(안이호)
학교에서 수집한 영감의 조각들
이날치의 젊은 소리꾼들에게는 ‘국악’을 제외하고도 공통된 기억이 있다. 드넓은 서울대 캠퍼스와 그 너머로 펼쳐지는 관악산의 장엄한 능선과 같은 풍경들. 아름다운 학교에서의 추억은 그들의 예술 세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마당극 동아리 ‘마당패 탈’을 했어요. 서울대 재학 시절 제게 가장 영향을 끼친 활동이었는데, 늘 국악 하는 친구들과 생활하다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많이 배운 시간이었어요.”(이나래)
안이호는 재학 시절을 떠올리면 동아리 외에도 돌아가신 오용록 교수님이 떠오른다고 했다. 새벽까지 연습하고 나와도 늘 교수님의 연구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에는 과감하게 모르겠노라며 다음 주까지 공부해오겠다던 교수님, 그에게 오 교수님은 가르침 그 자체였다. “저는 판소리를 가르쳐주는 동아리 ‘추임새’와 기타를 배우는 동아리 ‘기타둥둥’에서 활동하면서 음악 전공자가 아닌데도 열심히 연습하는 사람들을 보며 많이 감동했던 기억이 있어요.”(신유진) 권송희는 서울대 국악과 박사과정을 다니면서 타 전공의 좋은 강의를 들으며 국악 외에도 견문을 넓힐 수 있었던 경험을 꼽았다. “서울대에서 안이호를 만나서 이날치까지 하게 됐는데, 경치도 너무 좋고 사계절이 아름답게 변하는 과정을 보면서 공부하는 게 정말 좋았어요.”(권송희)
항상 깨어 책임을 느껴야 하는 사람들
이날치의 네 명의 소리꾼은 서울대를 다니며 본인이 느끼는 것과 관계없이 많은 혜택을 누렸기에 서울대 학생들이 항상 혜택 안에서 살아왔던 사람들 임을 잊지 않기를 당부했다. “공연하면서 내가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는 사람이 됐다고 느끼면서 이제야 누려왔던 것에 책임을 다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자랑스럽다기보다 나도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죠.”(안이호) 졸업 후 사회에 나와서 동문을 만나면 느끼는 바가 남다르다고 했다. “사회에서 똑똑하고 깊게 생각하는 서울대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들과 동문이라는 데 자부심이 들기도 하고, 저도 저들처럼 바르게 생각하고 깊이 있는 예술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됐어요.”(이나래) 선배로서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을지 궁금했다. 그들은 특히 작년 신입생에 대한 안타까움이 남달랐다. 신입생의 아름답고 소중한 시절을 집 안에서 생활하며 희생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희생으로 자신들이 제한적으로나마 공연하며 생업을 이어갈 수 있었기에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힘든 시간이 언젠가는 지나갈 거니까 우울하지 않게 저희 음악을 스트리밍해주셔도 좋고, 그 안에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면 좋겠어요.”(신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