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독일 국적의 안나 예이츠 교수가 서울대 국악과에 임용됐다. 한국의 국악 중에서도 판소리에 매료된 그녀는 전공하던 정치학을 뒤로하고, 판소리 연구를 시작하며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 민혜성 선생을 사사했다. 2003년에 지정된 유네스코 세계 무형 유산이자, 국가 무형 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 안나 예이츠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판소리는 듣는 누구라도 공감 가능한 이야기다. 인류음악학의 관점에서 국악을 연구하는 안나 예이츠 교수에게 현대 사회 속의 국악에 대해 들어본다.
교수님께서 인류음악학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조금 생소한데요. 인류음악학이란 어떤 학문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민족음악학, 종족음악학이라고도 불리는 학문입니다. 제 학습 배경을 살펴보면 음악학보다는 인류학을 더 많이 공부해서 인류음악학보다, 음악인류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연구 주제는 음악인데 연구 방식은 인류학을 배경으로 해요. 인류학의 연구 방법인 ‘현장 연구’나 ‘체험 관찰’과 같은 방법을 가져와서 연구하는 것이지요. 음악 분야에서는 특히 체험 관찰이 중요한 개념입니다. 악기와 소리를 직접 배우는 체험 관찰을 통해 그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가 생기기 때문이지요.
국악을 처음 접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국악을 처음 접하셨을 때 어떤 문화적 체험을 하셨나요?
아시아의 전통 음악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서 이수해야 하는 과목으로 처음 국악을 들었습니다. 판소리도 그때 접하게 되었고요. 당시 런던 한국문화원에서 판소리 공연을 봤는데, 그 공연이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자람 선생님이 공연하시는 ‘적벽가 중 조자룡 활 쏘는 대목’과 송순섭 선생님의 ‘새타령’을 보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자막을 봤는데 나중에는 자막이 필요 없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한국어를 전혀 몰랐는데도 소리와 몸짓만 보고 공연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언어를 초월하는 문화적 경험이었습니다.
판소리에서 현장성이 중요하다는 걸 몸소 느낀 경험이었지요. 많은 사람이 판소리를 지루하다고 이야기하는데,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보면 녹음된 음원이나 녹화된 영상과는 정말 달라요. 그때부터 국악에 관심이 생겼고 석사는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어느 날 보니 판소리에 대한 박사 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웃음)
직접 공연을 본 후로 판소리에 매료되어서 판소리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시고, 유럽 지역의 판소리 대회인 ‘K-VOX Festival’까지 나가게 되신 건가요?
영국에서 1년간 판소리 스토리텔링을 연구했고, 한국에서 1년 동안 판소리를 직접 배워보면서 현장을 연구했습니다. 한국에 가기 전부터 프랑스에서 ‘현의 노래’, ‘수궁가’, ‘숙향전’ 등 한국 문학을 번역하신 부부 번역가 한유미, 에르베 페조디에 부부가 만든 한국소리페스티벌인 ‘K-VOX Festival’을 알고 있었어요. 꼭 한번 참여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판소리 선생님이신 민혜성 선생님께서 매년 프랑스에서 소리 워크숍을 하고 계셨거든요. 상황이 잘 맞아서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됐어요.
우연히 참가한 대회에서 1등을 거머쥐셨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의 소감을 여쭙습니다.
다른 참가자들은 1년에 한 번 진행하는 판소리 워크숍에서 판소리를 배운 후에 혼자 연습해서 나온 대회였습니다. 제가 1등을 해서 기뻤다기보다 오히려 다른 참가자들이 판소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고, 그 마음이 존경스러웠습니다.
한유미, 에르베 페조디에 부부가 정말 대단한 게 프랑스에 판소리를 좋아하는 향유층을 만드셨어요. 파리에서 판소리 공연을 보면 서울에서보다 추임새가 훨씬 더 많이 나와요. 프랑스 사람들이 판소리를 듣는 방법을 제대로 배웠다고 느끼죠.
‘K-vox Festival’ 1등을 하셔서 한국에 다시 오게 되셨는데요. 두 번의 한국 방문이 지금 한국에서의 삶으로 이끌었나요?
이 기회로 한국에 와서 광주에서 직접 공연도 하면서 판소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페스티벌에 참가할 당시 한국에서 연구하고 싶어도 학생이라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지요.
지난 9월 최연소로 서울대 국악과 조교수에 임용되셨습니다. 교수님께서 느끼신 서울대의 첫인상도 궁금합니다.
좋은 기회로 서울대 교수로 임용되어 서울대의 좋은 환경 에서 국악을 연구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연구할 수 있는 사람과 공연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연구하기 정말 좋은 환경이지요. 서울대 국악과의 다른 교수님들도 많이 응원해주시고, 친절하게 대해주시는데요. 그 마음이 제가 서울대에서 받은 첫인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독일 의 산 근처에서 자라서 산만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데, 창밖에 산이 보이니까 환경적으로도 굉장히 만족합니다.
코로나19로 강의에 제약이 많아 불편함을 겪으실 것 같습니다. 요즘 강의는 어떻게 하시나요?
비대면으로 강의하다 보니까 많은 학생을 대면할 기회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수업하면서 서울대 학생들이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영어로 수업을 진행해서 어려울 텐데도 질문도 많이 하고, 토론도 열심히 하니까 기특한 마음이 듭니다.
신임 교수이신만큼 교수님만의 특별한 강의 방법도 있을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소통하면서 강의하려고 노력하고, 3시간 연속으로 강의만 들으면 학생들이 너무 힘들 것 같아 영상 매체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계음악개론> 수업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각 나라의 음악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면서 보기 전과 후 그 음악에 대해 느낀 점을 써보라는 과제를 내주기도 합니다. 레포트를 읽으면 학생들이 음악을 깊이 생각하는 게 느껴져서 제가 더 재밌습니다.
교수님께서 서울대에서 가장 기대하시는 바는 무엇인가요?
음악대학 안에 인류음악학적인 접근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제 연구 방식이나 강의 내용이 익숙하지 않은 학생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조금 더 다양한 연구 방식을 경험하고, 자신이 향유하는 음악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서울대에서 국악을 더 깊게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큽니다. 이 기회로 생기는 국악에 대한 다양한 이해로 연구를 더 다양하게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오늘의 판소리: 현대사회에서 전통과 창조성을 조화시키면서”란 논문으로 런던대학교 아프리카 아시아 연구원(SOAS)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현대 국악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전하고 싶 은 이야기가 있으실지요.
많은 사람이 국악을 현대 한국과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국악이 전통과 과거에 갇혀있다고 여기죠. 근데 국악인들이 현대의 사람이잖아요. 국악을 좋아하는 게 현대를 잘 이해하면서도 전통적인 걸 하겠다는 선택인데 인식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국악이 현대와 상관없고 지루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편견이 없어지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이 부분에 집중하면서 강의와 연구도 해나갈 생각입니다.
한국 관광 홍보 영상으로 전 세계 3억 조회 수를 기록하며 연일 화제인 국악 퓨전밴드 이날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 사회에서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전통 음악도 즐길 수 있고, 퓨전의 형태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험이 꼭 다 좋지 않아도 많은 실험이 있어야 결국 이 날치처럼 수준 높고 재미있는 음악이 생기는 것이지요.
교수님께서 바라보시는 한국과 외국에서 국악의 위상에 대해 여쭙습니다. 어떤 차이를 체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상하게 외국에서 국악을 보면 한국 입장에서 자신이 없다는 인상을 받아요. 판소리를 완창으로 보여주기보다는 대부분 케이팝이나 춤 같은 요소를 섞어요. 그러니까 외국인 입장에서는 판소리를 깊이 있게 경험할 기회가 없죠. 물론 많은 케이팝 팬에게 맞춰서 조절하는 건 이해하지만, 프랑스만 봐도 판소리 향유층이 생겼어요. 자신의 문화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는 외국인들이 문화 수준이 높은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데, 국악이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보거든요. 이미 그런 마음을 가진 외국인들도 많고요. 그래서 저는 외국에서 국악 공연을 할 때 조금 더 자신 있게 전통적인 국악 공연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학자로서 교수님께서 갖고 계신 연구 계획과 앞으로의 비전을 들려주세요.
국악인들이 SNS에서 동영상 콘텐츠를 이용해 국악이나 자기 활동을 어떻게 홍보하는지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 연구를 깊고 넓게 확대하고 싶습니다. 그 일환으로 중국에서 전통 음악을 온라인으로 어떻게 보여주는지와 비교하면서 책을 한 권 쓰고 싶다는 계획이 있습니다. 이게 가장 큰 연구고, 발표했던 연구 주제인 국악과 젠더, 국악과 패션에 대해서도 조금 더 연구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