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미국 파견 근무에서 경험한 벤처캐피털은 송은강 대표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았다. 삼성에 입사할 당시 삼성이 마지막 회사가 되리라 생각했고, 창업은 원래 그의 인생에 전혀 없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경험한 벤처캐피털은 ‘좋은 방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에 힘을 보태는 일’이었다. 이후 과감하게 삼성을 퇴직해 엠브이피창투를 설립하며, 지금의 캡스톤파트너스의 대표가 되기까지 그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스타트업의 키다리 아저씨’라는 별칭을 얻었다. 송은강 대표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엘리트 창업자인 뉴칼라를 발굴하고 투자하는 일에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베팅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뉴칼라(New Collar)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직업 계층
삼성 재직 당시 미국 Cambridge Samsung Partner에 파견 근무를 떠나시면서 처음 벤처캐피털(Venture Capital)을 경험하셨습니다. 벤처캐피털리스트(Venture Capitalist)가 되겠다고 마음먹게 되신 계기를 여쭙습니다.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어요. 미국에서 3년 동안 Cambridge Samsung Partner에서 파견 근무하면서 벤처캐피털 일을 처음 경험했죠.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삼성을 퇴사하겠다니까 아내의 반대가 심하긴 했어요. (웃음) 그래도 한번은 해볼 만한 일이라고 느껴서 엠브이피창투를 설립했고, 이 업계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한번은 해볼 만한 일’이라고 느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미국에서 3년간 벤처캐피털을 경험하면서 어떤 것들을 느끼셨나요?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려고 하는 창업자가 있다면, 창업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그 노력에 힘을 보탰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어요. 후회가 없는 투자죠. 지금도 저희가 100개의 회사를 투자 검토하며 고르고 고른 4~5개 회사에 투자해도 20%의 회사는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요. 좋은 사람들을 모아 최선을 다해 세상을 바꾸려는 협력을 보여주는 회사에 투자하는 일이 여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치 있는 투자의 핵심은 뉴칼라 발굴인 것 같습니다. 뉴칼라 발굴을 지향하는 캡스톤파트너스의 대표님으로서 창업과 뉴칼라에 대한 평소 생각을 들려주세요.
뉴칼라는 IBM의 CEO 지니 로메티가 제시한 개념인데요. 폴인(fol:in)의 임미진 기자가 『새로운 엘리트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뉴칼라가 되기 위한 다섯 가지 조건을 정리해줬어요. 뉴칼라의 개념이 마음에 들어서 저희도 차용하고 있는데요. 저희가 투자한 대부분의 창업자가 뉴칼라 창업자라고 생각해요. 대표적으로 ‘정육각’의 김재연 씨를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퀴즈 온 더 블럭>의 ‘맛있는 녀석들 특집’에도 나오신 분인데요. 돼지고기 유통에 혁명을 일으키면서 창업한 지 3년 만에 월매출 30억을 달성했어요. 소비자에게 신선하고 맛있는 고기를 유통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어서 일찍부터 돼지고기 유통 일을 직접 배우면서 노하우를 쌓은 분이에요. 특히 생산설비의 효율이 좋은데, 생산기계 프로그램을 바꿔서 생산설비 전체의 효율을 높이는 프로세스를 만들었어요. 이런 노력이 뉴칼라가 꾸준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돼지고기와 계란 유통만 하는데, 앞으로는 수산물까지 확장할 예정이에요. 저는 ‘정육각’이 신선식품의 미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주목하는 뉴칼라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특징이 있어요. 한 번에 여러 일을 잘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에 몰입하기 위해 무언가 포기하는 게 있어야죠.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라는 말 많이 하잖아요. 근데 창업자에게는 맞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뉴칼라 창업자가 되기 위해서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한 가지 일에 몰두하고 집중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캡스톤파트너스는 스마트폰 보급이 증가할 때 모바일 게임회사에 투자하고, 빅데이터가 주목받자 인공지능 AI 기업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면서 시대 변화의 논리를 가장 잘 이해하는 벤처캐피털로 꼽히는데요. 시대 변화를 이해하는 대표님만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세상이 정말 빠르게 변하고 시장의 논리도 그에 맞춰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죠. 저는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인 지 제대(Z Generation)를 주목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유행에 민감한 지 세대가 시장 변화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거라고 생각해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안고 자란 지 세대가 느끼는 것을 제가 이해하고 경험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저희가 투자하는 창업자의 관점으로 지 세대의 생각을 읽는 겁니다. 세상의 변화에 대처하는 창업자를 우리가 가진 자본과 네트워크로 후원해주면서 시대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지요.
벤처캐피털 일은 꾸준히 세상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는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창업자에게 투자하며 인사이트를 얻으니까 좋은 일, 쉬운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벤처캐피털은 돈 모으는 일이 가장 큰 문제이고 늘 어렵습니다. 저에게 돈을 맡겨주신 분들에게 제대로 돈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두려움이 평생 따라다닙니다. 지금까지는 좋은 사람에게 투자했고, 대부분 좋은 성과로 돌려드릴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믿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 항상 두렵습니다.
그런데도 초기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과감하게 투자하면서, ‘마켓컬리’와 ‘직방’과 같이 좋은 성과를 많이 만드셨습니다. 평생에 걸친 두려움을 극복해오신 방법이 궁금합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창업자인 엘리트 창업자를 만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엘리트 창업자가 우리를 찾아오게 하거나 엘리트 창업자가 가는 길목에 저희가 서 있으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1년 팟캐스트 형태에서 현재 유튜브 형태로 변화한 〈쫄지말고 투자하라〉에서 9년째 유망 스타트업을 소개하고 투자를 유도하는 재능기부도 하시는데요. 스타트업에 대한 대표님의 각별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지방에 있거나 어떤 커뮤니티에 속해 있지 않아 정보가 갈급한 창업자를 위해 만들었습니다. 〈쫄지말고 투자하라〉를 만든 2011년에는 지금보다 벤처캐피털의 인식이 안 좋았고, 만나기도 훨씬 어려웠거든요. 벤처캐피털에 대한 편견도 깨면서 벤처캐피털과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쫄지말고 투자하라’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건 순전히 재미 때문인데요. 남다르고 의미 있는 창업을 전개하는 창업자를 만나서 그들을 소개해주는 게 재밌습니다. 지금도 채널 구독자가 7천 명이 안 되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쫄지말고 투자하라〉에 출연한 이후로 많이 성장한 회사를 보면 뿌듯하실 것 같아요.
투자를 했으면 마음이 놓이고 못 했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웃음) ‘배달의 민족’이 그랬는데요. 출연 당시에 투자하려고 했는데 다른 회사가 먼저 투자하는 바람에 놓쳤어요. 그래도 다음 라운드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한번 놓치면 다시 투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동문창업네트워크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동문간의 창업 네트워크와 유대관계 형성이 왜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공식적으로는 서울대 AI위원회의 위원을 맡고 있고, 나머지는 비공식적으로 서울대에서 불러주시면 가고 있습니다. 서울대 동문창업네트워크 토론회에 불러주셔서 사회를 맡았습니다.
확하게 계수할 수는 없지만, 서울대 동문의 창업률이 미국의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나 스탠퍼드(Stanford University)에 비하면 오분의 일도 안 될 거예요. 이렇게 흘러간다면 저는 우리나라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나라의 엘리트 창업자들, 그중에서도 서울대 졸업생과 교원분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분들이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와 그 의지를 비즈니스적으로 풀겠다는 생각이 충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서울대 학생을 엘리트 창업자로 잘 길러낼 수 있는지가 서울대의 고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에 다니며 이미 창업을 경험해보고 익숙해지는 게 필요하죠. 대학 내에서 창업에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는 걸 도우려고 노력하는데요. 특히 제가 몸담은 벤처캐피털협회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통해 협회 사람들과 벤처캐피털, 서울대의 많은 창업자가 연결될 수 있는 고리를 만드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 캡스톤파트너스와 대표님이 가장 도전적으로 느끼는 분야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인공지능과 모빌리티, 이런 분야가 저희 투자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데요. AI+X, AI를 기본으로 X는 무엇이든 치환될 수 있는 거죠. X 분야에 인공지능을 잘하는 사람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동문 중에 공대 전자과 수석 졸업하고 MIT 나와서 3년 전에 자율주행기술 스타트업 ‘라이드플럭스’를 창업하신 박중희 대표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쏘카를 렌트 예약하면 제주공항에 내린 후 쏘카 사무실까지 셔틀을 타야 하는데요. 이때 운이 좋으면 이 회사의 기술로 운행되는 자율주행 차량을 탈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한국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지향점이나 목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세상을 바꿀 엘리트 창업자를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제일 큽니다. 예를 들어 네이버의 이해진 창업자,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 같은 사람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저는 두 분에게 투자하지 못했지만, 인공지능 시대에 나타날 우리나라의 구글, 애플, 페이스북과 같은 선도기업을 만드는 창업자에게 투자하는 걸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뉴칼라의 5가지 조건
1. 기술이 바꿀 미래를 내다보는가
2.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가 있는가
3.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4. 끊임없이 변화하는가
5. 손잡고 일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