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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벙주초 착시와 인공시각

2020. 9. 11.

심리학과 오성주 교수는 덤벙주초와 관련된 흥미로운 착시를 발견했다. 우리나라 사찰이나 한옥에서 볼 수 있는 덤벙주초는 자연에 놓인 돌멩이에 나무기둥을 받치는 주초로 사용된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돌멩이 주초 속에 나무기둥이 박혀있는 것으로 지각했지만, 이는 착시였음이 밝혀졌다.

전통 한옥에서 정평주초는 네모나 둥그런 모양으로 다듬어진 주춧돌이고, 덤벙주초는 자연 그대로의 모양을 가진 주춧돌이다. 정평주초는 궁궐의 건물이나 사찰의 대웅전처럼 주요 건물에서 주로 볼 수 있고 덤벙주초는 민가나 사찰의 부속 건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아마도 옛날에는 대칭적인 대상을 더 아름답다고 보는 경향과 돌멩이보다 나무기둥을 깎는 게 더 쉽기 때문에 나타난 차이일 것이다. 5년 전쯤 신문에서 그랭이라는 도구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목수는 덤벙주초의 윗면이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나무기둥을 바로 세우지 않는다. 덤벙주초 윗면의 요철을 따라 나무기둥 밑을 끌로 깎아내고 세운다. 이때 쓰이는 도구가 그랭이다. 그랭이는 V자 모양의 도구로 목수는 그랭이 한쪽 끝을 덤벙주초 위에 놓고 다른 쪽 끝은 먹물을 묻혀 기둥 옆면을 따라 한 바퀴 돌리면 주초의 요철이 기둥에 복사된다. 목수는 이 선을 따라 나무기둥을 깎아 주초 위에 세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이 간과되고 있었다. 바로 나무기둥이 돌 주초 위에 그냥 서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동안 나무기둥이 돌멩이 속에 박혀 있는 착시를 보지 않았던가! 이 착시는 그동안 알려진 적이 없었다. 의식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나는 이 주관적 경험을 객관화하기 위해 연구에 돌입하였고, 2년 동안 사찰, 민가, 민속촌, 궁궐 등 덤벙주초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모아온 사진들을 참여자들에게 보여주자 대부분 기둥이 주춧돌에 박혀있다는 착시를 경험하였고, 착시 크기는 주춧돌의 윗면이 울퉁불퉁할수록 더 박혀있다고 보고하였다. 주춧돌 윗면이 불규칙할수록 나무기둥이 접한 부분을 나무기둥의 소유가 아닌 주춧돌 소유로 보는 경향이 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즉, 나무기둥의 측면의 윤곽은 부드럽기 때문에 주춧돌과 맞닿은 부분이 울퉁불퉁하면 나무의 일부분이 아닌 주춧돌의 일부분으로 집단화하여 보게 되는 것이다.

주춧돌

주춧돌 속에 나무기둥이 박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심리학에서 시각적 완성이라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물체들은 일부분이 다른 물체에 가려 우리 눈에 맺히곤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일부분만 보고서도 안 보이는 부분을 자동으로 복원하여 경험한다.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인공시각 연구자들에게도 시각적 완성은 반드시 풀어야 할 시급한 문제이다. 물체를 탐지하기 위해서는 물체와 물체의 경계를 분절하여야 하고 그다음 분절된 대상으로 가려진 부분을 복원하여야 한다. 현재 연구자들은 머신러닝 기법에 집중하고 있다. 아주 다양한 이미지들을 학습하고 이를 기반으로 입력된 이미지의 3차원 형태를 추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최신의 기술도 사람의 경험만큼 빠르고 정확하지는 못하다. 덤벙주초 착시는 학습에 의존하지 않고 단순히 물체 윤곽의 통계적 규칙성만을 보고서도 물체를 분절할 수 있는 새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매우 쉽게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각처리는 사실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하여 일어난다. 착시는 특정 요인의 숨겨진 역할을 드러내곤 하는데, 본 주춧돌 착시는 지금까지 간과되어 온 윤곽의 규칙성을 드러낸다. 덤벙주초 구조에서 나무기둥 밑은 바람, 빗물, 벌레 등에 침식이 쉽게 일어나는 단점이 있다. 또한 기계로 돌멩이를 깎는 일이 나무기둥을 깎는 일보다 더 쉽다. 이런 이유 때문에 최근에 사찰에서 보수되거나 새로 건축되는 기둥에서 덤벙주초가 아닌 정평주초가 자주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덤벙주초는 자연스러운 선을 추구하는 우리나라 건축 특징에 부합하므로 잘 간직되었으면 한다. 이와 함께, 우리만의 연구 스타일이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오성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