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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를 토대로 깊고 넓은 이야기 집을 짓다

2020. 9. 11.

이동진 영화평론가 (종교학과  87학번)
이동진 영화평론가 (종교학과 87학번)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익숙한 이름이 있다. 개봉하는 거의 모든 영화에 관해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운 중립적 언어로 한줄평을 남기고, 다시 책과 기사, 블로그, 라디오, 방송까지 매체를 넘나들며 촘촘한 사유를 전달하는 영화평론가 이동진. 그는 사실 수험생 시절 읽은 한 권의 종교학 책이 이끈 길을 끝까지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흐르지 않는 인생에서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20년째 영화평론가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방대한 독서를 통해 탄탄한 삶의 자세를 구축한 그에게 지성인은 무엇인가 물었다.

1999년부터 2019년까지 208편의 영화 평론을 모은 책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를 지난해 펴내셨죠. 방대한 역사를 집대성하시면서 어떤 마음이셨나요?

영화평론가로 살아온 지난 20년간을 총 정리해보자는 심정이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제가 쓴 영화평들은 제 상황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매체에 실리게 되었는데, 시작은 신문에 게재되는 영화평들이라서 원고 매수가 기껏해야 200자 원고지로 7~8매 안팎인 짧은 분량이었죠. 그러다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나와서 이동진닷컴이란 1인 매체를 만들어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점점 길어져 네이버나 다음에 20~30매가량의 평을 싣게 되었고,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를 위해 추가한 최근 영화평은 60~80매까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글을 쓸 때 그 글이 실리는 매체의 성격에 맞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이런 변화가 세월의 흐름이나 제 활동 무대의 변화에 따라 그대로 담긴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의 특성을 실감하면서 결국 형식이 글의 성격을 좌우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좀 더 적극적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분량에 구애받지 않고 충분히 쓸 수 있으면 글이 좀 더 분석적이고 건조하며 치밀해지죠. 반면 좀 더 다양한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써야 하고 분량에 제한이 많아지면 수사법이 화려해지고 좀 더 감성적인 글이 됩니다. 그러니까 영화를 포함한 예술이 모두 그렇듯, 글 역시 형식과 내용은 구분될 수 없습니다.

긴 글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잘 정리된 치밀한 지식에 대한 시대적 욕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반응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책을 쓰며 예상했던 반응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아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는 지난 20년간 제가 쓴 영화평을 한자리에 모은 책이라 개별 글들 사이에 특성이나 스타일에서 편차가 있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몇몇 평들은 천 페이지 가까운 무지막지한 분량의 책을 읽는 독자들이 쉬어갈 수 있는 쉼표나 일종의 비평적 농담 구실을 하도록 넣은 것까지 있으니까요. 이처럼 어느 정도 불균질하다고 할 수 있는 성격의 책을 냈기에 그다음 책으로 올봄에 출간한 〈이동진이 말하는 봉준호의 세계〉는 그 반대편에서 분량에 구애받지 않은 채 쓰고 싶은 내용을 충분히 쓰면서 균질하고도 통일성이 있는 평문들과 인터뷰로 구성되도록 했어요. 지난 1년 사이에 쓴 이 두 책이 결국 영화평론가로서 저의 현재일 것 같네요.

‘영화’라는 하나의 주제로 20여 년간 글을 쓰셨는데요. 처음 어떻게 영화평론가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저는 13년 전에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면서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라고 적어넣었습니다. 대학 시절까지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서 스스로를 다그치는 방식으로 삶의 거시적인 목표를 이루려고 했어요.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삶에서 태도는 견지할 수 있어도 구체적인 계획은 그나마 짧은 기간에만 적용할 수 있을 뿐이라고 믿게 됐죠. 반면에 인생 전체는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여기게 됐어요.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고 대학 시절 비디오잡지에 글을 썼던 상황까지 포함하면 거의 30년간 평을 쓰고 있음에도 그다지 권태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잘 맞기도 하지만, 이런 저도 제가 어떻게 영화평론가가 되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부족한 능력과 짧은 시야를 지닌 저로서는 그저 하루하루 물밀듯 쏟아지는 일들 속에서 익사하지 않으려고 허덕이며 필사적으로 헤엄쳤을 뿐입니다. 그 결과가 현재의 저입니다. 그게 행인지 불행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영화’라는 하나의 주제를 변주해서 기사를 쓰고, 책을 쓰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공연하고, 라디오와 TV 방송까지 많은 일을 하시는데요. 평론가님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삶에서 잃고 싶지 않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유머와 품위 그리고 호기심인데요, 많은 일을 하고 다양한 일을 하고 또 오래 일을 하려면 특히 호기심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아직도 새로 쏟아지는 책과 영화와 음악이 궁금하고, 세상의 변화가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합니다.

자주 인용하시는 말이죠. “깊게 파려고 넓게 파기 시작했다”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스피노자의 말인데, 저는 넓이와 깊이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입니다. 땅을 파기 위해서 삽질을 해본다고 가정해보세요. 깊게 파려면 일단 넓게 파야 합니다. 지식으로나 직업으로나 세상살이 모두 넓이와 깊이 중 더 필수적인 것은 넓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넓게 파지 못할 때 사람들은 편견이나 무지에 갇히기 쉽죠. 그러면서 작은 우물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 동전만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충분히 깊다고 착각을 합니다. 넓이는 교양이면서 윤리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종교학 전공자’라는 별칭이 있기도 하신데요. 종교학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하시게 된 계기와 종교학이라는 학문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그런가요? 수험생 시절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철학 미학 종교학이 멋져 보였습니다. 그래서 여름방학 때 종교학과 사무실에 찾아갔는데 당시 조교이셨던 분이 그런 제가 기특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신 뒤 책 몇 권을 건네주셨죠. 그중 정진홍 교수의 ‘종교학서설’을 읽고 사로잡힌 게 결정적인 진학 계기가 되었습니다. 학부에서 나름 열심히 전공 공부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이 영화평을 할 때 구체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종교학이라는 귀한 학문을 공부하며 배우게 된 어떤 태도 같은 것이 제 삶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인 것 같네요.

학창 시절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나름대로 다양한 일들을 경험해보았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돈을 번 일들도 포함되는데, 과외를 포함해 이런저런 일들을 해서 학생으로선 꽤 많이 벌었기에, 고생하시던 부모님께 어느 정도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전공과 무관하더라도 관심이 생기는 분야가 있으면 학교에서든 동네에서든 군대에서든 일종의 독서 동아리들을 만들어 집중적으로 책을 읽고 토론을 했던 것도 잘한 일 같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으신가요?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인지요.

악기를 배우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저는 모든 예술이 최상의 단계에서 음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삶도 그럴지도 모르죠. 음악을 참 좋아하고 또 배울 기회도 여러 차례 있었는데, 늘 최우선순위에서 밀려 번번이 포기했던 게 후회가 됩니다. 배우고 싶은 악기가 한둘이 아닌데, 특히 피아노가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도 시도해볼 수도 있을 텐데 바쁘다는 핑계로 여전히 미루고 있네요. 이러다 노인이 되어서 또 후회할 것 같은데.

‘지성인’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회의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지성인 아닐까요? 자신이 믿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릴 수 있다고 전제하는 태도, 자신이 믿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과 충돌하는 뭔가를 목도했을 때 그에 따라 스스로를 수정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 지성인이라고 봅니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하셨는데, 평론가님이 갖고 계신 앞으로의 계획을 소개해주세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미래를 내다보면서 큰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세워봤자 다 어긋나더라고요. 제 계획은 그냥 하루 단위, 끽해야 한 주 단위입니다. 예를 들어 내일 저는 판교에서 강의를 하나 해야 하고, 개봉을 한 달 앞둔 영화 한 편을 보아야 하며, 곧 출간될 제 책의 최종 교정본을 마무리해 넘겨야 하고, 시간이 허락하면 블로그에 글 하나를 추가하려고 합니다. 이 일들을 24시간 안에 조금이라도 더 낫게 해낼 수 있도록 제 나름의 방식으로 시간 운용 계획을 짭니다. 솔직히 다음 주에 할 일들은 어떤 게 있는지 대부분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지금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야 하는지 한 말씀 해주신다면.

좀 과격하게 말씀을 드려본다면, 영화나 책은 닥치는 대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YES24의 베스트셀러 순위를 잠시 찾아보니, 10위 안에 들어 있는 책들이 거의 대부분 돈과 관련된 내용이거나 이른바 자기계발에 관한 것들이네요. 물론 좋은 책들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책들을 읽는 사람들 상당수는 독서를 그 자체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특정 목표를 이루기 위한 즉각적인 수단으로 대한다는 느낌입니다. 막말로, 돈을 더 많이 벌고 싶고 인생을 좀 더 폼나게 살고 싶어서 책을 읽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특정 영화를 보거나 특정 책을 본다고 해서 그 불안감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병원을 찾아가거나 주변 사람들과 상담을 해보는 게 오히려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죠. ‘닥치는 대로’라는 것은 ‘호기심에 이끌리는 대로’라는 뜻일 겁니다. 뭔가를 위해서 영화나 책을 보면 금세 지칩니다. 그냥 보고 싶어서 보아야면 독서나 영화감상이 지속 가능해집니다. 그저 영화는 영화고 책은 책일 뿐입니다. 하지만 어떤 호기심을 습관화하면 삶 자체가 좀 더 견딜만하고 좀 더 풍요로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