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화)부터 서울대 미술관에서 <판데믹의 한 가운데서 예술의 길을 묻다-작업(作業)>과 <권훈칠: 어느 맑은 아침> 전시가 시작되었다. 두 전시는 각각 열네 명의 미술가들이 세상에 남긴 ‘작업’으로서의 미술작품과 권훈칠 작가의 따뜻한 풍경화들을 다룬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여파로 각종 문화행사 및 예술 관련 기관들이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지만, 서울대 미술관은 실내 마스크 필수화와 발열 체크 및 문진표 작성 등 교내 방역 지침을 준수하며 새로운 전시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고요함 속에서 예술을 즐기려는 많은 관람객들에게 미술관이 다시금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한 것이다.
판데믹, 예술가의 ‘작업(作業)’을 조명하다
전시 <판데믹의 한 가운데서 예술의 길을 묻다-작업(作業)>(이하 <작업>)은 “예술가에게 작업(artwork)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뒤샹의 <샘(Fountain)>으로 대표되는 레디메이드(ready-made)* 작품은 비물질 예술, 즉 ‘머릿속’ 예술을 세상에 드러냈다. 세계적인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은 1969년 기획전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Form)>를 통해 뒤샹의 ‘머릿속’ 예술에 가속도를 붙였다. 제만은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예술가의 아이디어 자체, 즉 예술가의 ‘태도’에 주목했다. 미술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제만의 전시 덕분에 예술가는 작품 이전에 그의 ‘태도’만으로도 예술가로서의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예술가의 ‘태도’가 예술의 핵심 가치가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전시 <작업>은 이러한 ‘태도’의 시대 속에서 ‘작업’에 몰두했던 ‘작업가’ 열네 명의 작품을 조명한다. 열네 명의 ‘작업가’들은 ‘작업’이 태도에서 오지만, 태도가 곧 예술인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태도가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작업’이라는 물리적·신체적 구현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전시는 크게 ‘저항(抵抗)’, ‘역류(逆流)’, ‘고독(孤獨)’의 세 테마로 구성되었다. 부조리한 상황에 포기하거나 순응하지 않는 ‘저항’ 테마에서는 이응노·나혜석·장욱진·조성묵·구본주의 작품들을, 시대의 조류 또는 유행에 쉽게 편승하지 않는 ‘역류’ 테마에서는 황재형·안창홍·김창열·최상철·이진우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고통과 고난을 견디며 혼돈 속에서 예술을 홀로 지키는 ‘고독’ 테마는 오귀원·김명숙·홍순명·김승영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이번 기획전의 제목이 암시하듯, ‘작업’을 강조하는 작품들의 의미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더욱 특별해졌다.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물리적·신체적 고통에 대한 공포가 가시화됨에 따라, 물리적·신체적 구현 과정으로서의 예술가의 ‘작업’에 대한 성찰이 예술계에서도 덩달아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작업>은 예술가의 정신적 ‘태도’에 큰 의미를 부여하던 20세기 후반의 미술사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경험을 감내하면서도 꿋꿋하게 ‘작업으로서의 예술’을 해온 작가들을 재조명하며 그 요구에 부응하고자 했다. 전시 <작업>은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다시금 고민되어야 할 예술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사유를 담아내고 있다.
섬세한 재현과 빛으로 가득한 풍경화를 마주하다
권훈칠은 화려한 이력을 쌓기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를 선택한 작가다. 작가 권훈칠은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남겼지만 전시 <권훈칠: 어느 맑은 아침>은 특히 그의 풍경화에 주목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권훈칠은 그의 말년인 2000년대 초반까지도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나갔다. 그 결과 약 90여 점의 풍경화 1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남기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본 전시는 크게 ‘드로잉’, ‘이탈리아에서’, ‘신록’, ‘해안선을 따라’의 네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드로잉’ 섹션에는 섬세한 시선과 치밀한 묘사를 주요한 골자로 하는 권훈칠의 화풍을 잘 드러내는 작품들이 전시되었고, ‘이탈리아에서’ 섹션은 그가 새로운 탐구를 시작했던 이탈리아 유학 시절의 풍경화로 채워졌다. ‘신록’과 ‘해안선을 따라’ 섹션은 한국 각지의 정경을 담은 그의 말년 풍경화를 다루었다. 권훈칠의 풍경화는 자연물에 대한 섬세한 재현은 물론, 빛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화면을 선사해 관람자를 풍경 속으로 끌어들인다. <태종대등대>는 반짝이는 빛을 받은 바다와 돌, 그리고 부산 태종대 등대의 모습을 아름다운 색감의 수채화로 묘사해 관람자에게 부산의 향기를 느끼게 해준다. <로마풍경>은 건물 하나하나와 나무의 이파리 하나하나 섬세하게 표현되어 관람자로 하여금 마치 로마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관람객들이 서울대 미술관을 방문하여 권훈칠 작가의 섬세한 붓터치에 빠져드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길 기대한다.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존의 물건에 어떠한 변형을 가하거나 디자인 요소를 첨가하지 않고, 제목만 새로 붙여 전시하는 것’으로서의 예술 경향을 의미한다. 마르셀 뒤샹이 기성품인 소변기를 <샘>이라는 제목의 예술 작품으로 전시하면서 미술 용어로 자리 잡았다.
소통팀 학생기자
김태주(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