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in World Program은 학생들이 세계 각지에서 현지 석학들의 강의와 현장학습으로 글로벌 리더로 한 걸음 나아가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신설된 실리콘밸리 프로그램으로 알찬 방학을 보내고 돌아온 화학생물공부 14학번 이윤규 학생의 생생한 체험기를 만나보자.
‘팔로알토’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한민국의 랩퍼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면 당신은 아직 창업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팔로알토는 창업의 허브인 스탠퍼드(stanford, 스탠포드라고 적는 사람이 많지만 스탠퍼드가 올바른 표기라고 함) 대학교를 품은 실리콘밸리의 중심지로, 페이스북과 구글, 휴렛 팩커드(HP)을 비롯한 수많은 스타트업의 사무실이 위치해있다. 얼핏 봐서는 날씨 좋은 것 빼면 별로 매력 없고 재미없는 동네처럼 보이지만 그 알맹이엔 창업, 인수, 합병으로 조용할 날 없는 시끄러운 동네이기도 하다.
이 동네의 분위기는 매우 특이하다. 많은 사람들이 창업 생각에 들떠있으며 스탠퍼드 교수진도 창업 아이템이 생각나면 바로 학교를 뛰쳐나와 스타트업을 차리기 때문에 교수가 별로 없다고 한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밥 같이 먹자는 말 다음으로 흔한 말이 창업 제안이다. 한국의 카페는 의미없는 수다의 장인 성격이 강하지만, 여기는 아이템에 대한 토론 및 구인이 진행되는 곳이다. 나와 같이 팔로알토를 방문한 코딩광 컴퓨터공학부 16학번 후배는 카페에서 코딩하는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백엔드 개발 인턴 제안을 받기도 하였다. 이처럼 서로의 관심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인턴 및 동업을 제안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창업쪽 용어로 네트워킹(Networking)이라고 한다. 실리콘밸리가 창업하기 유리하고, 결정적으로 도움되는 것 중 하나가 네트워킹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활발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학생 30명은 SNU in Silicon Valley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실리콘밸리의 이러한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기업가정신을 키우기 위해 하에 팔로알토로 3주간 파견되었다. 교수님은 한 주당 한분씩 총 세분이 배정되었고(전기정보공학부 서승우, 김수환 교수, 경영학과 오정석 교수) 교수 각각 하나의 과제가 배정되었다. 첫 주는 디자인사고(Design Thinking)을 통한 아이디어 발굴 및 창업 아이템 발표, 두번 째 주는 첫째 주 아이템 발전 및 피벗을 통한 사업계획서 작성, 마지막 주는 방문한 기업 요약 및 정리하기로 진행되었다. 교내에 존재하는 스누인 프로그램 중 유일한 이공계열 스누인 프로그램이자, 처음 생긴 프로그램인 만큼 삐걱대는 부분도 많았지만 이는 피드백을 받으며 점차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첫주 활동은 주로 BootUp ventures라는 Co-working place에서 진행되었다. 창업 초기단계의 팀에게 사무실을 제공해주고 펀딩을 해주는 등 인큐베이팅을 해주는 기관이라고 보면 된다. 서울대학교에서 비슷한 공간을 찾아보자면 서울대학교 연구공원이나 아이디어팩토리쯤이 있겠다. 여기서 오전 오후 총 5시간 정도는 현지 기업가 및 투자자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오후에는 숙소에서 창업 아이템에 대한 팀플이 이루어졌다. 첫날 강연 오신 Patrick Chung이라는 분의 강연 내용이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로스쿨 학생으로서의 유망한 미래를 스스로 포기하고 벤쳐 투자자의 길을 걷고 계셨다. 첫날부터 ‘아, 실리콘밸리는 한국과 뭔가 다르구나’를 느꼈다.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한국의 전문직 계열 학생은 자신 앞에 놓여있는 길에서 잘 벗어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곧 실리콘밸리와 같이 바뀔 것이라 생각되는데, 같이 파견된 학생 중 의예과 16학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면 한국의 스타트업 문화도 더욱 도전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95학번으로 인텔, 구글에서 일하다 스타트업에 뛰어든 하정우 선배님도 뵙게 되었는데 이분의 창업스토리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인텔에서 구글로 이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회사를 나오시고 캘리포니아 밀피타스에 순두부집을 여셨다. 여기서 끝났다면 그냥 그런가보다 했을텐데, 순두부집을 이용하여 창업을 하셨다. 창업 아이템이 자그마치 자율주행인데, 순두부와 자율주행이라니 뭔가 이질적인 조합이 아닌가? 어떤 창업을 하셨는가 하니 자율주행을 이용하여 음식을 종업원 대신 손님에게 서빙하는 로봇을 개발하고 계셨다. 이 얘기를 들으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또 사람이 로봇에게 일자리를 잃었다며 분노할테지만, 사실 이 로봇은 종업원과 상부상조하는 로봇이다. 로봇이 잘 할 수 있는 단순 노동은 로봇에게 맡기되, 종업원이 더 잘할 수 있는, 예를 들면 손님과 교감하고 대화 나누는 것들을 종업원이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로봇이 단순 노동을 해줌으로써 종업원 한명이 응대 가능한 테이블의 수가 더 늘어나고, 그렇게 되면 팁이 늘어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간 노동자의 임금이 늘어나는 효과가 생길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아직 시작단계라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셨지만 개인적으로 몇 년 뒤 성공 사례로 뉴스에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둘째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스탠퍼드에서 강연을 듣기 시작했다. 수업도 수업이지만 캠퍼스가 정말 아름답고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있어서 감동의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공대 건물들은 대부분 서울대 윗공대와 마찬가지로 천장이 유리로 되어있는데, 구름이 없는 팔로알토 특성상 자연채광이 무척 밝았다. 세면대에서 사용한 물은 곧바로 재활용되어 소변기로 보급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교실 벽면이 콘크리트가 아닌 유리여서 개방성이 강조되었고, 천장에서 온 자연채광이 교실까지 밝혀주기 충분했다. 건물 내부는 냉방을 하지 않았음에도 매우 시원했다. 원리는 해가 지면 천장의 문이 열려서 찬 밤공기를 들여보낸 후 낮 동안은 닫아놔서 온도를 서늘하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모든 노력을 통해 에너지 사용량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한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서울대도 이 건물 시스템을 벤치마킹 했으면 좋겠다고 잠시 생각했으나, 등록금부터 스탠퍼드와 15배 차이가 나고 이에 더해 대학 기업화 반대세력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 주에 방문한 스타트업은, 이젠 스타트업이라고 불리기에 너무나 몸집이 커진 구글과 페이스북이다. 두 기업 모두 지인, 혹은 초청인이 없으면 방문이 불가능하기에 학교에서 초청인을 섭외해줬다. 페이스북 내부의 음식은 몽땅 공짜이다. 심지어 방문객에게 조차도 공짜이다! 페이스북을 돌아다니면서 놀랐던 점은 우리 초청인이 97년생, 그러니까 갓 대학교 2학년인 인턴이었다는 사실이다. 대학교 2학년이 대기업 인턴을 한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대학생 인턴을 많이 뽑아주며, 잡일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중요 프로젝트에도 참여시킨다고 한다. 다만 내부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 인턴이나 채용이 쉽다고 하는데, 여기서 Networking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학연, 혈연, 지연을 Networking이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해서 우리나라보다 심하게 적용하는 곳이 실리콘밸리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세 번째 주는 규모가 작은, 진정한 의미의 스타트업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가장 기업에 남는 기업은 SoundHound였다. 사운드하운드는 필자가 아이팟 터치를 산지 얼마 안 된 2010년 경 노래검색을 위해 깔았었던 앱이다. 지금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서비스가 많지만 그때 당시에는 사운드하운드가 노래 찾아주는 유일한 서비스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길거리에서 좋은 노래가 나오면 몇 음절만 듣고 제목을 알려주는 서비스였다. 이제 사운드하운드는 음성인식 AI까지 진출한 기업이 되어있었다. 음성인식 분야는 이미 Siri나 Alexa가 꽉 잡고 있지 않느냐고 한다면, 사운드하운드의 Hound가 훨씬 음성 이해력이 뛰어나다. 특히 exclude 타입의 질문 이해력은 Siri나 Alexa가 따라갈 수 없다. Siri에게 ‘중국 음식점을 제외한 주변 식당을 추천해줘’라고 하면 귀신같이 중국 식당만 추천해주는데, 이는 ‘음성 - 문자 – 뜻’ 세 단계를 거치면서 ‘중국 식당’만 의미를 추출해버리는 실수를 범하기 때문이다. Hound는 음성에서 바로 뜻을 생성하기 때문에 exclude 타입에 강할 수 밖에 없다고 대표님께서 설명하셨다. 대표님도 스탠퍼드 출신인데, 처음에 사운드하운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거대한 컴퓨팅용 프로세서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이케아에서 산 선반에 GPU를 잔뜩 올려놓고 연결해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일단 뭐라도 질러보고 시작하는 스탠퍼드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3주간의 SNU in Silicon Valley는 사실 다른 스누인 프로그램에 비해 매우 힘들게 진행되었다. 매일같이 팀플을 했기 때문에 새벽에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이것이 해커톤인지 스누인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3주간 다같이 밤새며 생활했기에 30명 전원이 전부 친해질 수 있었고, 다른 스누인 프로그램보다 구성원들끼리의 유대가 더 강하게 형성된 것 같다. 그리고 이게 바로 Networking이지. 3주간 많은 것을 배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30명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했다는 점 아닌가 싶다. SNU in Silicon Valley 1기로서 내년 스누인은 조금더 다듬어진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졸업하고 사회 나가서까지 이 네트워크가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이 네트워크 안에서 대단한 스타트업이 하나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이윤규 학생
화학생물공학부 14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