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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이 편견없이' 작곡과 임헌정 교수

2014.04.30.

1996년 11월 20일, 아름다운 선율이 서울의 밤을 울렸다.
서울대학교 개교 50주년 기념행사로 열린 연주회에서 임헌정 교수는 음대 학생들로 구성한 120여 명의 오케스트라, 300여 명의 합창단과 함께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했다.

작곡과 임헌정 교수 음악은 마음이다
난곡으로 유명한 말러의 교향곡. 이제는 많은 교향악단에서 연주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 음악계가 기피해온 곡이었다. 성악가와 합창단이 포함되는 엄청난 규모와 완벽에 가까운 관현악기법, 곡에 담긴 심오한 철학적 고민으로 섬세한 해석 없이는 연주가 어렵기 때문이다. 임헌정 교수는 모두가 꺼렸던 곡에 어떻게 도전하게 된 것일까? “제가 학생일 때는 음대생들이 한 캠퍼스에서 가족처럼 지냈는데, 교수로 재직해서 보니 과마다 서로 잘 모르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50주년 기념으로 음대생이 다 함께 출연하는 연주를 해보자고 제안했지요. 당시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많이 연주하곤 했는데, ‘대학생이라면 도전적이어야지.’ 하면서 말러 교향곡 2번을 연주하자고 했어요.“ 그날의 연주는 임 교수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연주로 남았다. “음악은 마음이에요. 마음 없는 음악은 의례적으로 하는 선물과도 같아요.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없습니다. 마지막 악장에서 폭풍 같은 소리가 나왔어요. 그 동안의 시간을 회상하면서 나도 울고, 학생들도 모두 울었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개교 50주년 기념 연주회에서 확신을 얻은 임헌정 교수는 부천 필하모닉 상임지휘자로 활동했던 1999년, 말러 교향곡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세상에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귀할수록 더욱 그렇지요. 언제 이런 곡을 해보겠느냐며 단원들과 예술의 전당 측을 설득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말러 전곡 연주로 음악계는 들썩였고, 곧이어 ‘말러 붐’이 일어났다.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그는 쇤베르크, 버르토크 작품 국내 초연,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 전곡 연주 등으로 국내 음악계의 지평을 넓혔고, 지금까지도 새로운 도전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행복하게 삽시다
지난 1월 25년간의 부천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역할을 마치고, 코리안 심포니 예술 감독으로 취임한 그가 단원들과의 첫 만남에 당부한 말은 다름 아닌 ‘행복’이었다.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음악가라면 연주를 잘 마쳤을 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을 쏟고 전율이 오는 연주를 하자는 일종의 다짐이었지요.”
매번 국내 음악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거침없는 도전은 ‘행복’에 관한 그의 신념에 기인한다.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신이 나는 일이에요. 새로 만난 단원들과 연습하니 얼마나 행복해요.” 그는 음악가로서 ‘오늘, 그리고 항상’ 행복하다고 말한다. “인생 계획대로 되는 거 봤어요? 나는 계획을 세워본 적도 없고, 언제부터 지휘자를 꿈꿔왔는지도 몰라요. 다만 지금에 충실히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예요. 학생들이게도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해요. 대학생활은 인생의 꽃이니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요.” 행복을 위한 삶의 철학은 그를20대의 피가 끓는 거장으로 만들었다. “예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요. 나이는 60대지만, 마음가짐은 항상 20대로 하려고 해요.”

기꺼이 헌신하고 베푸는 삶
“앞으로 2년 후면 개교 70주년인데, 이번엔 무엇을 해볼까요?” 음악대학 학생으로 처음 서울대학교와 인연을 맺은 그는 유학생활을 마친 후 교수로 돌아와 오랜 인연의 끈을 이어갔다. 그는 많은 시간을 함께해온 서울대학교가 자신의 인생 자체라고 이야기하며 학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교수로서, 지휘자로서 학생과 단원 한 명 한 명을 똑같이 대하려고 노력하는 임헌정 교수. 그는 잘하고 있는 이에겐 겸손을 가르치고, 자신감을 잃은 이에겐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균형’이에요. 사람의 몸도 균형이 깨지면 아픈 것처럼, 단원들 서로가 마음이 맞지 않으면 좋은 소리가 날 수 없지요.”
노력으로 얻은 성취, 성공의 달콤함에 취하지 않는 도전, 그리고 베풂. 그의 인생은 쌓고 베풀기를 반복하며 ‘균형’의 중요성을 몸소 가르치고 있다. “새로움에 대한 도전으로 부천 필하모닉과 인연을 맺었다면, 코리안 심포니 예술 감독 제안은 나라에 공헌하는 마음으로 수락했습니다.”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음악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음악가로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길 바라고,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면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서울대학교의 사람들은 일종의 특혜를 받은 것이에요. 베푸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행복을 위한 거침없는 도전 정신과 예술가의 사명감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인생을 걸어온 임헌정 교수. 앞으로도 지금과 똑같이 연주하고 음악과 후학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그의 모습은, 18년 전 학생들과 함께 울었던 열정적인 지휘자, 임헌정의 모습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