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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적 큐레이터를 꿈꾸는 과학자

2013.08.07.

융·복합적 큐레이터를 꿈꾸는 과학자
생명공학공동연구원 신임 원장 김선영 교수

생명공학공동연구원 신임 원장 김선영 교수 지난 6월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김선영 교수가 생명공학공동연구원(BioMAX, 이하 ‘바이오 맥스’)의 신임 원장에 임명됐다. 김 교수는 96년 국내 최초로 학내에 벤처기업 ‘바이로메드’를 설립했고, 이 회사를 10여 년 만에 심혈관질환 유전자치료 분야에서는 세계 Top 리스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연구의 실용화 성공 비결과 그가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바이오맥스의 새로운 리더로서 제시하는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성공을 이끈 것은 30대 젊은 연구자들도 울고 갈 열정과 호기심, 그리고 균형감각이었다. (인터뷰 | 강준호 협력부처장)

처음에 이 분야를 어떤 계기로 선택하게 되었는지.
- 생물과 놀고 채집하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에 입학할 때 자연스럽게 미생물학을 선택했다. 대학 3학년 때 학술지에서 유전자를 자르고 붙이는 유전공학 기술을 접하고 혁신적이라 느꼈다. MIT 유학 시절에 유전학 대가들의 열정적인 강의에도 영향을 받다 보니 앞으로 이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수님의 행보는 최초의 연속이다. 바이로메드는 국내 최초 학내 벤처이고 비상장 바이오 기업 상태에서 대규모 해외 투자 유치와 바이오신약의 미국 임상시험 수행도 최초로 알고 있다. 서울대 강단에 선 초기까지 기초학문을 했는데 벤처를 창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당시 정부에서 기업들의 산·학 협력연구를 독려하기 위해 G7 프로젝트라는 것을 시행 중이었다. 유전자치료 분야에서 특별한 기술을 개발했기에 상대 기업에게 투자를 제안했는데 3년에 20억원이라는 연구비가 너무 크다고 하더라. 그런데 해외 학회에서 개발된 기술을 발표하니 반응이 좋았고, 외국인 동료들이 창업을 권유했다. 5,000만 원이면 회사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벤처를 창업하게 되었다. 그 때는 경영에 대해 아는게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로메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 기업 경영과 연구, 강의까지 병행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 강의는 원래 좋아하는 편이고, 회사 일이라는 것이 연구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신뢰를 중요하게 여기고 일에 대한 집중력이 높은 편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완벽을 추구하려는 욕심이 강하다. 서울대 교수였다는 점도 큰 역할을 했다. 서울대는 교수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이런 성과가 가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연구자의 기업 경영에 대해 오해와 편견도 컸을 것 같다. 힘든 점이 많았을 텐데 긴 시간 경영과연구를 지탱하는 데 작용한 교수님의 철학은 무엇인가.
- 처음에는 ‘기초학문하는 사람이 영리를 추구하는 일을 한다’는 등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다. 일단 옳다고 생각하면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니고, 연구성과가 제품으로 만들어져 사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매료되어 일에 집중했다. 열정을 가지고 좋은 작품을 만들려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래서 나 역시 그러려고 노력해 왔다.

제자와 연구원들에게 강조하는 과학자로서의 덕목도 같은 맥락에 있나.
- 그렇다. 호기심, 도전, 열정, 성취욕이다. 하는 일이 적성에 맞아서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고 열정을 키워가면 가장 좋다. 젊을 때는 능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억지로라도 열정을 갖는 것도 좋다. 그러다 보면 능력도 생기고 자신감이 붙는다.

연구실의 김선영 교수. 이곳에 들어오면 한 순간도 한눈을 팔지 않을 정도로 연구에 몰입한다

김 교수가 발휘하는 열정은 특유의 왕성한 호기심에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궁금한 사람은 직접 만나야 직성이 풀리는 덕에 그는 '의외의' 전문가들과의 교류도 왕성하다. 대표적인 예가 소설 <토지>의 작가인 고(故) 박경리 선생과의 만남. 억척스러운 ‘임이네’ 캐릭터를 어떻게 창조했는지 궁금해 그를 직접 찾아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또한 미술과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 고미술품 수집을 즐기고 은퇴 후 큐레이터를 해보고 싶다는 진담 같은 농담을 던지기도. 융·복합적 궤적을 그리는 김선영 교수의 행보에서 그가 발휘할 리더십의 핵심이 보였다.

한국 생명공학의 가능성과 전망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 한국의 바이오 연구자들이 지닌 잠재력은 매우 높다. 문제는 현대의 바이오는 융·복합적 성격이 큰데 한국에서는 “협업” 혹은 “공동연구”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잠재력이 높은 연구자들을 모아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미 ‘스타’ 과학자는 많다. 그러나 사회적 혹은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려면 팀웤, 인프라, 연구환경 등이 중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정부의 “노벨상 애착”으로 빚어지는 개인 중심의 대규모 연구비 지원 정책은 그다지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니다.

바이오 맥스의 수장으로서 가진 전략과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대해 궁금하다.
- 실험실 성과가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문성은 물론 많은 자금이 필요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연구 성과가 아무리 좋은 학술지에 발표되더라도 시장화에는 대부분 실패하기 때문에 이 단계를 chasm 혹은 ‘죽음의 계곡’ (death valley)이라고까지 부른다. 바이오맥스를 통해 교수들이 이 계곡을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고 싶다. 연구원의 핵심 인력을 잘 구성하고, 연구자들 사이에 공통분모가 있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봤기 때문에 어떻게 지적인 가치에서 유형의 재산을 창출할 수 있을지 알게 되었다. 이런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해서, 내가 16년에 걸려 한 일을 후학들은 5년 만에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창업했던 바이로메드라는 회사를 암젠과 같은 세계적인 바이오기업으로 만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