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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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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부 이준호 교수팀, 예쁜꼬마선충으로 염색체 진화의 실마리 풀어

2021.03.11.

생물 종마다 고유한 염색체의 수와 모양을 가지는데, 이는 생물의 진화 과정을 밀접하게 반영하고 있음. 이런 염색체 진화 과정을 자세하게 밝히는 일은 생물이 진화하면서 어떻게 다른 염색체 구조를 가지게 된 것인지 알려주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음.

20년 전 인간 게놈(유전체) 지도 초안이 발표된 후 누구나 인간 게놈 지도를 이용하여 연구할 수 있게 됐고 생물학은 유례없던 혁신과 업적을 이루게 됨. 예컨대 인간은 2개의 염색체가 서로 붙어 하나로 합쳐지는 염색체 진화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나 고릴라보다 염색체 수가 하나 적은데, 이 두 염색체가 합쳐진 정확한 지점을 게놈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음.

그러나 인간과 다른 현존 유인원은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라고 해도 이미 너무 다르고 인간과 더 가까운 친척 유인원들은 이미 멸종했기 때문에 인간 염색체 진화 과정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음. 인간과 현존하는 다른 유인원들을 비교함으로써 염색체 진화 과정을 추정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세 살 때 사진과 스무 살 때 사진 두 장만을 가지고 청소년 시절의 동영상을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할 만큼 어려운 일임.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인간의 염색체 진화가 염색체 끝부분이 손상되고 이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라는 것임. 염색체 끝부분은 손상되고 나면 이 손상을 회복시키려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는데, 그 중 하나가 가까이 있는 다른 염색체와 들러붙어 손상 부위를 감춰버리는 것임. 이러면 2개 염색체가 1개로 합쳐지는 염색체 진화 과정이 발생하는 것.

이제 염색체의 진화 과정 규명을 위해 던질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은 손상된 염색체 끝부분이 어떻게 합쳐지는 것인지, 그리고 손상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염색체의 다른 부분은 손상을 입지 않는 것인지 등임.

본 연구에서는 연구하기 어려운 인간 게놈 대신 예쁜꼬마선충을 모형으로 삼아 새로운 게놈 지도 초안을 4개 더 만드는 데 성공하였고, 이 지도 정보를 바탕으로 이 염색체 진화 과정을 아주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었음.

염색체 끝부분을 일부러 망가뜨리자, 인간의 염색체가 진화한 것처럼 염색체들이 서로 달라붙는 현상이 관찰됨. 대부분은 염색체 끝부분이 마모되고 난 뒤에 서로 달라붙는다는 것을 최초로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음.

일부 염색체는 그냥 붙고 마는 것이 아니라 붙었다가 부러지고, 그 뒤에 다시 붙는 과정을 겪었다는 것도 확인됨. 이를 통해 형성된 통짜 염색체는 접합 부위에 끝부분 자투리가 추가로 끼어들어 있다는 것을 확인함.

흥미로운 추가적 발견은 이렇게 염색체 끝부분이 손상되는 초기 과정에서는 염색체 끝부분 말고는 다른 염색체 부위가 거의 손상을 입지 않았고, 염색체 끝부분이 서로 들러붙은 뒤에야 염색체의 다른 부위가 본격적으로 손상되기 시작했다는 것임. 동영상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시간대의 사진에 해당하는 게놈 지도 정보를 확보한 덕분에 이 정도로 자세한 내용을 최초로 밝혀낼 수 있었음.

본 연구결과는 향후 다양한 생물 종이 진화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염색체 진화 기전 규명의 실마리를 던져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함.

이 연구의 성과는 유전체 연구 분야의 세계적 국제 학술지 Nucleic Acids Research에 게재되었다.